[TF화제의 판결] '카톡방'에서 욕설·험담, 학교폭력이 아닌 이유는?
입력: 2017.09.19 04:00 / 수정: 2017.09.21 10:09
채팅방에서 당사자 몰래 험담을 해도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판결이 나왔다. /pixabay
채팅방에서 당사자 몰래 험담을 해도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판결이 나왔다. /pixabay

법은 상식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려워할 필요도, 거부감을 가질 이유도 없습니다. <더팩트>는 법조계에서 이슈로 떠오른 '특별한' 판결을 소개하는 [TF화제의 판결]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해당 판결이 화제가 된 사연을 비롯해 판결문을 알기 쉽게 설명해드립니다. 법치국가에서 '법을 모르는' 것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경우라고 합니다. 이 코너를 통해 '법을 아는 사람'이 되길 기대합니다.<편집자 주>

[더팩트 | 서울중앙지법=김소희 기자] # A양은 지난해 10월부터 11월까지 B양이 친구들과 채팅방에서 자신에 대해 험담과 비난을 하면서 '병신', '개ㅇㅇ' 등과 같은 욕설을 한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채팅방에 속해 있지 않았지만, 이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A양은 자신이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학교장에게 B양에 대한 징계를 내릴 것을 요청했다. 교장은 이를 받아들여 B양에게 징계조치를 내렸다. 그러나 B양은 억울했다. B양은 결국 자신은 A양에게 사이버 따돌림을 한 사실이 없다며 "징계처분을 무효로 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재판장 김정만 민사제1수석부장판사)는 B양이 학교법인 서울현대학원을 상대로 낸 '학교폭력예방법' 징계처분 효력정지신청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피해학생에 대한 명예훼손·모욕적 발언이 있었더라도 처음부터 피해학생이 이를 인식할 수 없어 어떠한 피해나 고통을 입을 가능성이 없었다면 학교폭력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B양이 한 대부분의 욕설은 자조적으로 내뱉은 것이고, 직접적으로 A양과 관련된 부분은 당사자에게 도달하지 않을 것을 전제로 단체 채팅방 구성원 사이에서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A양에게 신체·정신·재산적 피해를 가하기 위한 행위가 아니어서 학교폭력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해당 판결에 따르면 단체 채팅방에서 한 사람을 두고 여러 명이 집단적으로 험담이나 비난을 해도 당사자가 그 채팅방에 속해있지 않으면 '사이버 따돌림'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무죄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확장해석하고 유추해석하면 죄형법정주의 정신에 위배된다. /더팩트 DB
'확장해석'하고 '유추해석'하면 죄형법정주의 정신에 위배된다. /더팩트 DB

법무법인 건우 이돈필 변호사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이번 판결에 대해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구성요건 해당성을 엄격하게 적용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죄형법정주의는 '범죄와 형벌을 미리 법률로 정해야 처벌할 수 있음'을 원칙으로 한다. 아무리 도덕적으로 비난을 할 수 있는 행위라도 법률로 정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다는 의미다.

B양은 자신에게 적용된 '학교폭력예방법 제17조'에 대해 가처분 신청을 냈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제 14839호)은 '사이버 따돌림'에 대해 인터넷, 휴대전화 등 정보통신 기기를 이용해 학생들이 특정 학생을 대상으로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심리적 공격을 가하거나, 특정 학생과 관련된 개인 정보 또는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상대방이 고통을 느끼도록 하는 일체의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B양이 '학교폭력예방법'에 저촉이 됐는지 여부가 범죄 성립을 결정하는 핵심적 요소다. 일반적으로 범죄가 성립하려면 ▲구성요건 해당성 ▲위법성 ▲책임이 모두 해당돼야 한다.

B양은 A양이 없는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A양에 대해 험담을 했지만, 피해자가 없는 상태로 험담을 했기 때문에 사실상 피해자는 누군가의 입을 통하지 않으면 이러한 사실에 대해 알 수 없다. 따라서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자신에 대한 심리적 공격을 접하기란 불가능하다.

종합하면, '학교폭력예방법'은 전파돼서 알게 된 사이버 공격을 처벌하는 법률이 아니다. 이에 B양은 당사자에게 직접적 사이버 공격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구성요건부터 해당되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B양이 '학교폭력예방법'이 아닌 '사이버 모욕죄 정보통신', '형법상 모욕죄'로 기소됐으면 판결은 달라질 수 있다.

이 변호사는 "무죄추정원칙상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해야 된다"며 "이것이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위 판결은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적용한 타당한 판결"이라고 했다.

ks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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