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서울중앙지법=변동진 기자] 30년 지기 친구의 운명이 법정에서 갈라지는 현장을 지켜보니 실소를 참을 수 없다. 김형준(47·사법연수원 25기) 전 부장검사와 그의 '스폰서'이자 고교동창 김모 씨 이야기다.
김 씨로부터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은 김 전 부장검사는 지난달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받고 석방됐다. 반면 돈을 건넨 친구는 지난 14일 서울고법 형사3부(부장판사 조영철) 심리로 열린 2심에서 징역 6년이 선고됐다.
물론 두 사람의 혐의는 다르다. 김 전 부장검사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혐의고, 김 씨가 징역을 받은 사건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등이다. 김 씨는 스폰서 관련 사건으로 벌금 1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이처럼 혐의는 다르지만 시계를 1년여 전으로 돌리면 완전 별개의 사건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이들의 운명이 갈라지게 된 결정적 계기가 김 씨의 사기죄 때문이어서다.

김 전 부장검사는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에 해외 명문대 유학(옥스퍼드대학 법과대학 국제지적재산권과정 수료)까지 다녀왔다. 뿐만 아니라 UN법무협력관 파견 경력도 있으며, 2015년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수단장을 맡아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리기도 했다. 게다가 6선 국회의원에, 국회의장을 거친 박희태 전 새누리당 상임고문의 사위이기도 하다.
김 씨는 고교시절, 김 전 부장검사가 학생회장을 할 당시 반장을 했다고 한다. 성인이 돼서는 전자기기 유통업체를 운영했다. 이들이 '잘 나가는 검사'와 '사업가'로 다시 만난 것은 사회에 진출해서다. 하지만 이들의 엇나간 우정은 김 씨가 지난해 횡령과 사기 혐의로 고발을 당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사건의 얼개는 이렇다. 김 씨는 '중국 샤오미 제품을 저렴하게 수입해 공급하겠다'며 10여 곳의 거래업체로부터 130여억 원을 받았지만 일부 제품만 남품하고 나머지 약 70억 원을 빼돌렸다. 결국 거래업체 등으로부터 고소를 당했고, 사건이 검찰로 넘어가자 평소 '스폰서' 관계였던 김 전 부장검사에게 "구속수사를 받지 않도록 손을 좀 써 달라"며 도움을 요청했다.
스폰서 관계와 사건 청탁 등으로 불안감을 느낀 김 전 부장검사는 그의 손길을 외면했고, 또 다른 친구 박모 변호사를 통해 김 씨에게 제공받은 1500만 원을 갚았다. 김 씨가 웃돈을 요구하자, 1000만 원을 추가로 주기도 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녹취록에서 김 씨는 "(열심히 손을 쓰고 있다면서) 정작 (조사를 받으러) 가보면 왜 이리 추궁하냐" "왜 검사실 옆방에서 따로 더 물어보느냐"는 불만을 토로했다. "언론에 폭로하겠다"고 압박하기도 했다.
김 전 부장검사는 "(검사들을 만나) 식사하며 노력하고 있다"고 대응했지만, 김 씨는 그간 제공한 스폰서 비용이 7억 원(최종요구 1억 원)에 달한다고 협박했다. 이에 김 전 부장검사는 '분할 상환'을 조건으로 지난해 9월 2일 2000만 원을 주는 등 사건을 막아보려고 했지만, 이미 모든 내용은 언론사에 넘어간 뒤였다.

그렇다면 김 전 부장검사는 김 씨의 청탁을 뿌리치지 못한 걸까. 우습게도 자신이 수시로 드나든 강남 학동사거리 인근 주점에서 일하는 20대 내연녀 때문이었다. 특히 이 업소는 두 사람이 종종 가던 곳이었다. 게다가 김 전 부장검사는 김 씨를 통해 이 여성의 오피스텔을 구해주려 한 정황도 카카오톡 대화에서 드러났다.
김 전 부장검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검찰권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자 막판에는 (여자 문제라는) 약점을 쥐고 돈을 요구했다"면서 "고교 동창이던 김 씨를 사회에서 다시 만났고, 그의 사기 전력도 잘 알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저에게 로비한 돈이 수억 원이 될 거라는 김 씨의 문자메시지를 받았을 때 그가 악마처럼 느껴졌다"고 덧붙였다.
결과적으로 그가 감추려고 했던 비밀은 언론과 검찰조사를 통해 만천하에 드러났고, '부장검사'라는 사회적 지위도 한 줌의 재가 됐다.
이제 이번 사건의 '공'은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김 전 부장검사가 지난달 16일 서울고법에 변호인을 통해 상고장을 제출했기 때문이다. 같은 학교를 다니고, 한 공간에서 술을 마시며 웃고 떠들었을 두 사람은 현재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이들의 운명을 최종적으로 결정할 대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