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한 전술핵 재배치 논의와 관련해 "검토한 바 없다"고 못 박았다.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지난 6월 2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간 상견례를 갖고 있다./게티 이미지 제공 |
[더팩트 | 청와대=오경희 기자] "전술핵 재배치, 검토한 바 없다."
청와대는 12일 이 같이 못 박았다. 북한의 6차 핵실험(9월 3일) 이후 정치권을 중심으로 전술핵 재배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이날 대정부질문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핵심 쟁점으로 삼았다. 문제는 정부와 주무 장관 간 엇박자를 노출하면서였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불가한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한 반면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전술핵 배치를 포함한) 모든 방법은 검토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전술핵 재배치' 관련 송 장관의 발언 논란은 이전에도 있었다. 지난 2일 미국 워싱턴에서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과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전술핵 재배치를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3일 귀국 후 "논의한 적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4일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 긴급 현안질의에서 "전술핵 재배치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때마다 청와대는 '송 장관이 대안 중 하나'로 언급한 수준이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그런데도 또다시 전술핵은 도마에 올랐다. 청와대는 곧바로 "한반도 비핵화 원칙에 변함이 없다"며 입장 정리에 나섰다. 사실 보수야당은 물론 여당 일부에서도 '전술핵 재배치'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북한 핵 위협에 대응하려면 '전술핵 재배치' 이외에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전술핵 재배치 지지 응답이 70%대에 달했다. 북한의 6차 핵실험에 따른 불안감이 표출된 결과란 해석이다.
북한은 지난 3일 6차 핵실험을 강행했다./YTN 방송 캡처 |
하지만 정부로서도 전술핵 재배치 카드를 쓰기엔 적잖은 난관이 놓여 있다. 미국은 1957년 1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결정에 따라 이듬해 1월 한반도에 전술핵을 배치한 뒤, 노태우 정부시절인 1991년 12월 전술핵을 철수시켰다. 26년 만의 전술핵 재배치 가능성을 청와대가 부인한 배경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 '한반도 비핵화' 명분 상실과 동북아 핵무장 확산에 대한 우려다. 전술핵 배치는 한·미가 북한의 핵 능력을 기정사실로 인정한 뒤 선택할 수 있는 방안으로, 그동안 기울였던 비핵화 노력을 포기하고 대북전략의 틀을 크게 바꿔야하는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정부가 전술핵을 선택하려면, 1991년 "핵무기의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 사용을 하지 아니한다"는 내용을 담은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폐기해야 한다.
이상철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은 12일 오후 "정치권이나 언론에서는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처하는 방안의 하나로서 전술핵 재배치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많은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며 "전술핵 재배치는 1991년 이후 우리 정부가 유지해온 한반도 비핵화 기본 원칙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추구하는 북한 핵 폐기 통한 한반도 비핵화 명분이 약화되거나 상실되며 동북한 핵무장 확산 등의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비핵화'를 주도하며 ② 한국과 군사적 동맹관계인 미국 역시 원하지 않는다는 시각도 있다. 이병철 평화협력원 핵비확산센터 소장은 13일 <프레시안> 기고문에서 "세계를 관리해야 하는 미국으로서는 당장 전술핵을 한반도에 배치함으로써 얻을 이익이 현상유지를 통해 얻는 이익보다 크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에 전술핵을 배치하는 방안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이는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전술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고 밝혔다.
자유한국당은 전술핵 재배치 필요성을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다. 국회 로텐더홀에서 피켓 시위 중인 홍준표(왼쪽) 대표와 한국당 의원들./더팩트DB |
이 소장은 "전술핵 재배치 문제는 고도의 정치·경제·군사적 전략을 필요로 한다"며 "주한미군분담금 협상, 자유무역협정 협상, 전시작전권 환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한미원자력협력협정 등 외에도 중국, 러시아, 북한 그리고 일본과의 관계 설정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어 단칼에 해결할 수가 없는 구조다"라고 분석했다.
결국은 ③ '돈' 문제란 견해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월 26일 사드 2기 기습배치 이틀 뒤 "사드 비용 1조원을 한국이 부담해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했고, 지난 3일 북한의 6차 핵실험 직후 우리의 '전략자산 전개' 요청에도 "항공모함이나 핵잠수함 전개에는 막대한 비용과 인력이 투입된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비싼 전술핵을 한반도에 반입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 12일 <중앙일보>는 "현재 한반도에 적용 가능한 건 B-61 전술 핵탄두. 680기 중 180기가 유럽에, 500기는 미 본토에 있다. 2019년까지 최신형 'mod-12'로 개량하는 데 예산 110억 달러(약 12조5000억원)가 소요된다. 이 비싼 전술핵을 한반도에 놓게 되면 방호·관리에 수천 명의 추가 병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한국당은 국회에서 전술핵 예산 증액에 나설 방침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13일 <더팩트>에 "미국의 전술핵무기가 한국에 재배치되면 한국 국민이 더욱 더 안전하다고 느낄 수는 있지만 북·미 간의 대립구도가 그대로 유지돼 북한은 계속 미국을 ICBM으로 위협하고 한국은 무시하려 할 것이다. 그러므로 전술핵 재배치는 장기적으로 미국과 한국 모두에게 바람직한 선택은 아니다"라고 전망했다. 정 실장은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 쪽에 무게를 실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12일 "미국은 공식적으로 전술핵 재배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며 "중국의 경제·군사적 반발 등을 감안하면 파장이 큰 사안인 만큼 전술핵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확실히 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