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분석] 'CVID' 언급한 文대통령, '베를린 구상' 수정할까
입력: 2017.09.05 04:00 / 수정: 2017.09.05 04:00

최근 북한이 미사일 도발과 6차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이 시험대에 올랐다.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청와대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통화하고 있다./청와대 제공
최근 북한이 미사일 도발과 6차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이 시험대에 올랐다.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청와대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통화하고 있다./청와대 제공

[더팩트 | 청와대=오경희 기자] "북한이 핵미사일 계획을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비가역적인 방법으로 포기하도록…."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강행한 직후 문재인 대통령은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를 언급하며 외교·안보 부처에 "모든 외교적 방법을 강구해 나갈 것"을 지시했다. 지난 3일 북한이 역대급인 5.7 규모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 장착용 소폭탄 시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데 따른 조치다.

'CVID'는 완전하고(Complete), 검증가능하며(Verifiable), 돌이킬 수 없는(Irreversible), 파괴(Dismantlement)를 의미하는 영문의 앞 글자를 딴 것으로, '완전한 핵 폐기'를 뜻한다. 지난 6월 말 한·미 정상회담에서 채택된 공동성명에서도 이 같은 방침에 동조했으나, '베를린 구상'을 내건 문 대통령은 '핵 동결 후 해체, 대화 및 지원'의 투트랙 전략을 고수해왔다. 문 대통령의 핵심 대북정책인 '베를린 구상'은 북한과의 지속적인 접촉 및 대화를 통한 한반도 평화 구축을 골자로 한다.

문 대통령이 'CVID'를 언급하며 강경한 태도를 보이면서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수정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북한은 문재인 정부 들어 9번의 미사일 도발과 1번의 핵실험을 감행했다. 6차 핵실험은 지난해 9월 5차에 이어 1년여 만에 이뤄졌다. 특히 이번 도발은 문 대통령이 인내의 한계점으로 제시한 '레드라인(Red line)'의 턱밑까지 다다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3일 북한의 핵실험 직후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3일 북한의 핵실험 직후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청와대 제공

북한은 6차 핵실험에 대해 "ICBM 탄두에 탑재할 용도의 수소탄의 기술 검증을 위해 감행됐고, 성공적이었다"고 주장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8월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ICBM을 완성하고 거기에 핵탄두를 탑재해서 무기화하게 되는 것이 레드라인"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그러나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북한의 6차 핵실험과 '레드라인' 판단 여부와 관련해 "북한이 '완성단계 진입을 위해서'라고 얘기를 계속하는 것으로 미뤄볼 때 아직 ICBM을 완성하지 못했다는 것"이라며 "아직도 (레드라인까지) 길은 남아있다고 본다"고 판단의 여지를 남겼다.

하지만 일각에선 북한의 6차 핵실험을 계기로 문 대통령의 '핵동결 입구론(핵동결이 대화의 시작)'이 무색해지면서 '대화론→강경론'으로의 선회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전술핵 재배치와 한국 미국·일본 정부와 중국과 러시아 등 국제사회가 새로운 대북해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CVID' 추진은 지난 2000년대 초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북핵 문제에 대한 미국의 목표를 천명할 때부터 나온 얘기다. 북한이 초보적인 핵무기를 만들려고 시작할 때 세웠던 협상 기준선으로, 10년 넘은 해법이다. 그러나 현재 북한 핵개발이 완성된 상태에서 '핵동결을 대가로 제재를 푸는' 해법은 한반도에서 적용할 수 없게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제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 능력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폐기가 아닌 개발(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evelopment)'을 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월 29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게티이미지 제공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월 29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게티이미지 제공

그런데도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확고하다. 북한을 'CVID'의 테이블로 나오도록 김정은 정권의 숨통을 조이는 '고강도 제재와 압박'이다. 문 대통령은 한·미·일 등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와 압박 국면에 동참하며 강경한 입장을 피력했지만 '북한 스스로 대화 테이블로 나와야 한다'고 일관된 메시지를 내고 있다.

그러나 남북관계 복원과 '선(先)북핵폐기론'은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선북핵폐기론에서 '선 북핵고도화 차단 후 폐기'로 북핵 해법의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한다. 국제정치학자 스인훙(時殷弘·56) 중국런민대 교수는 지난 3일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 포기 가능성에 대해 "외부의 압력으로 북한이 핵을 포기하게 만들 수 있는 타이밍은 이미 지났다. 북한의 핵 기술은 이미 실전용 핵 배치 직전 단계다. 미사일 역시 중거리까지는 유효성을 갖췄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전망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지난 3일 <더팩트>에 "북한이 또다시 핵실험을 강행하면 한국정부는 '대한민국 비핵화 선언'으로 전락한 '한반도 비핵화 선언'의 폐기를 먼저 선언할 필요가 있다"며 "한국정부가 이 선언을 폐기하지 않으면 미국의 전술핵무기 재배치나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뿐만 아니라 핵재처리시설의 보유도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국정부는 김정은의 핵과 ICBM 능력 고도화 의지를 꺾기 위해 국제사회와 협력해 무엇보다도 중국의 대북 원유 공급 및 석유 수출 중단을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면서 "또한 북한 비핵화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남북 핵균형을 위한 한국의 독자적 핵보유 방안까지 비공개리에 본격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오후 청와대 여민1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오후 청와대 여민1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청와대 제공

전술핵이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SLBM에 장착된 핵탄두, 중거리폭격기에 운용되는 투하탄 등 적국의 기반시설을 궤멸시키는 전략핵을 제외하고 전장에서 사용되는 전술 핵폭탄, 핵포탄, 핵지뢰, 핵어뢰, 핵배낭 등 모든 소형 핵무기를 지칭한다.

현재 문재인 정부는 전술핵 배치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무엇보다 전술핵 배치는 한·미가 북한의 핵 능력을 기정사실로 인정한 뒤 선택할 수 있는 방안으로 그동안 기울였던 비핵화 노력을 포기하고 대북전략의 틀을 크게 바꿔야하는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이런 가운데 문 대통령은 4일 오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전화통화를 갖고 북한의 6차 핵실험에 대한 공조 방안을 논의하며 "국제사회와 협력해 지금까지와 다른 차원의 실질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양 정상 간 전화통화는 지난 8월 30일 이후 닷새 만으로, 새 정부 들어 여섯 번째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실질적인 조치'는 대북 원유공급 중단이 첫손에 꼽히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대북 원유공급 중단, 석유수출 금지, 북한 노동자 송출 금지 등을 포함하는 강력한 유엔 안보리 새 결의안 추진을 의미한다"며 "이런 내용이 합의되면 우리는 당연히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국방부는 같은 날 오후 북한이 "탄도미사일 발사 관련 준비활동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탄도미사일을 추가로 발사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 관계자는 또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 변화 가능성에 대해 "문 대통령은 대화의 필요성을 수단으로 먼저 제시한 적 없다"며 "일관되게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을 견지해왔고, 지금 상황에서도 제재와 압박이 먼저"라고 선을 그었다.

한편 문 대통령은 오는 6일부터 7일까지 1박2일간 러시아를 찾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난다.

ar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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