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점] 판례로 본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 사법 개혁 의지 뚜렷?
입력: 2017.08.23 05:34 / 수정: 2017.08.23 08:25
문재인 대통령은 21일 대법원장 후보자에 김명수 춘천지방법원장을 지명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은 21일 대법원장 후보자에 김명수 춘천지방법원장을 지명했다./ 청와대 제공

[더팩트ㅣ변동진 기자] 법조계는 문재인 대통령이 김명수(58·사법연수원 15기) 춘천지방법원장을 대법원장 후보에 지명한 데 대해 "파격적인 인사"라고 입을 모은다. 49년간 이어진 관행을 깨고 '비(非)대법관' 출신이 지명된 점과 양승태 대법원장(69·2기)보다 기수 무려 13기 아래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간 맡아온 재판에서 '사회적 약자' 손을 들어줘 향후 대법원 등 각급 법원의 판결 흐름에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부산 출신인 김 후보자는 부산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와 1983년 사법시험 25회에 합격한 뒤 판사가 됐다. 대법원 재판연구관과 특허법원 수석부장, 서울고법 부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특히 김 후보자는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와 함께 성소수자 인권에 관한 첫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등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인권법 분야 법률문화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21일 김 후보자에 대해 "재판 업무만 담당한 민사법 전문 정통 법관"이라며 "사회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를 배려하는 등 인권을 구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주장은 그간 맡았던 재판을 들여다보면 보다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는 2015년 서울고법 부장 재직 당시 대법원의 결정을 뒤집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더팩트DB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는 2015년 서울고법 부장 재직 당시 대법원의 결정을 뒤집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더팩트DB

◆김명수, 사회 약자·인권 보호에 앞장…판결 들여다보니

예를 들어 지난해 춘천지방법 사건 중 상급자인 여성 대위 B 씨에게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언행을 한 주임원사 A 씨에게 김 후보자는 "1심 재판부가 처분한 근신 3일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A 씨는 2015년 B 대위에게 '손을 잡자'는 행동을 취했으며, 간부식당에서는 "결혼할 남자친구가 있다고 치면 이왕이면 비싼 모텔이 좋지 않나요"라는 성적 수치심을 줄 수 있는 발언을 했다.

그러나 A 씨는 "손을 잡자는 제스처는 악수를 청한 것이고, 모텔 발언은 부대 인근 숙박시설에 대한 견해를 물어본 것"이라고 주장하며 1심 판결에 불복, 항소심을 제기했다.

김 후보자는 "악수라고 주장하는 행위는 상사에게 하는 일반적인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상사가 아닌 여성으로 대하는 행동으로 볼 소지가 있다"며 "모텔 발언은 성관계를 연상시킬 수 있어 성적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부적절한 행위이다. 징계처분이 적법하다고 판단한 1심 판결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김 후보자는 또 후임병 앞에서 바지를 내렸다가 영창 15일 처분을 받은 A 씨가 지난해 소속 중대장을 상대로 낸 항소심에서 "국가 안보와 국민의 생명·재산의 수호라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는 군대에서 성군기 위반은 군의 기강 및 결속력을 해치는 행위로 엄중한 처분이 불가피하다. 후임에게 성기를 보여준 행위는 비행의 정도가 절대 가볍지 않다. 징계기준의 중대한 위반에 해당한다"면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뿐만 아니라 2002년 수원지법 부장판사 시절 교통사고로 피해자가 식물인간이 된 사건에서 가해자인 주한미군이 혐의 부인 및 피해배상을 지체하자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며 '징역 8개 월'을 선고했다. 당시 주한미군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처벌을 해 왔던 종전 판례를 감안하면 엄격한 책임을 지운 판결이라는 게 법조계 분석이다.

앞서 2015년 서울고법 부장 재직 당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낸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정지 신청'을 받아들여 주목받았다. 당시 대법원은 '전교조는 노조가 아니다'라는 정부의 통보처분 효력을 사실상 인정하고 파기 환송했지만 김 후보자는 대법원의 결정을 뒤집었다.

이밖에 △대법원이 '전교조는 노조가 아니다'라는 정부의 통보처분 효력을 사실상 인정한 사건을 뒤집고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정지 신청'을 인정한 점 △삼성그룹 노조 탄압 사건에서 1심 재판부의 '노조 간부 부당 해고' '삼성이 문건 직접 작성·실행' 판결을 인정한 점 △축구부원으로서 훈련을 받던 중 장애를 얻은 10대 남학생에게 학교가 치료비 2억900여만 원을 지급하게 한 판결 △'오송회 사건' 당시 "피해자와 가족 등 33명에게 위자료와 이자 등 150억여 원을 배상하라"고 한 판결 등 사회 약자 인권 보호에 앞장섰다.

김 후보자의 이 같은 판례 때문일까. 법조계에선 대법원 판례를 변경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김명수 후보자의 진보적 성향을 고려하면 취임 이후 본격적인 사법 개혁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전망한다. /더팩트DB
법조계 관계자들은 김명수 후보자의 진보적 성향을 고려하면 취임 이후 본격적인 사법 개혁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전망한다. /더팩트DB

◆김명수,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 '사법 개혁'에 어울리는 사람?

게다가 김 후보자가 진보 성향이라는 점과 양 대법원장보다 연수원 기사가 13기 아래라는 점 등을 고려하면 문재인 정부의 사법 개혁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김 후보자는 법원 내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회장과 '유엔 국제인권법 매뉴얼' 한국어판을 첫 발간한 학술단체인 국제인권법연구회의 초대회장을 지냈다. 그가 진보적인 인물로 평가받는 이유다.

또한 김 후보자는 지난 3월 발생한 대법원 행정처의 '국제인권법 연구회의 학술행사 축소 지시'와 관련해 법관 독립을 위한 제도적 정비를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등 개혁의 목소리를 냈다. 이 때문에 같은 시기 불거진 '법관 블래릭스트' 재수사에 대한 기대도 크다.

아울러 현재 대법관(13명) 중 9명(고영한·박상옥·조재연·김신·김용덕·김창석·조희대·권순일·이기택)이 김 후보자보다 연수원 선배다. 만약 대법원장될 경우 내년 7월까지 교체되는 9명의 대법관 인사에 관여하게 돼 대법원 구성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에 정통한 한 변호사는 "현재 법원 행정처는 양 대법원장 체제 이후 극도로 보수화됐다"며 "사실상 관료화, 고압적, 줄 세우기 등 제왕적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블랙리스트 문제도 이 때문에 발생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어 "대한변호사협회가 이른바 '독수리 5남매(김영란·이홍훈·박시환·김지형·전수안)' 중 2명을 대법원장으로 추천한 이유도 법원의 민주화를 되찾기 위한 취지라고 들었다"며 "다만 이들도 대법관 출신이라 기존 관습을 깨기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제3의 인물이 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또 다른 변호사는 "개인적인 평을 한다면 이번 인사는 파격에 가까운 대단한 인사"라며 "김 후보자는 대법원 관료화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냈던 분이다. 그가 어떤 형식든 대법원 민주화를 실현다면 하급인 고등법원, 지방법원 등도 개혁이 될 것이다"고 했다.

그러면서 "더 넓게 보자면 청와대의 사법 개혁 메시지가 이번 인사를 통해 드러났다고 본다"며 "대법원의 최후의 분쟁해결기관이다. 이런 막강한 곳이 정치·관료화됐다면 사회 발전에 장애가 된다. 진보적인 사람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진보라는 것이 꼭 사회의 틀을 깨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악습을 따르는 것이 사회를 정체시킨다"며 "김 후보자처럼 불합리한 대법원 판결을 뒤집는 사례 등이 모여야 사회가 변화하는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bdj@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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