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 영화 <택시운전사> 관람 열풍이 풀고 있다.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 |
[더팩트ㅣ윤소희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영화 <택시운전사>를 관람했다. 문 대통령뿐만 아니라 정치권에서는 각 당 지도부가 단체로 해당 영화를 관람하는 등 열풍이 불고 있다. 대통령과 정치인들의 영화 관람은 단순한 문화생활이 아니라 대개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3일 장훈 감독과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의 부인 에델트라우트 브람슈테르 씨, 배우 송강호, 유해진과 함께 영화를 즐긴 뒤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견해를 드러냈다.
앞서 호남 기반의 국민의당 지도부는 지난 3일 개봉과 동시에 가장 먼저 <택시운전사>를 단체 관람했고 전남지사 출신인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 6일 지지자 20여 명과 영화를 봤다.
보수정당인 바른정당도 해당 영화를 단체로 감상했고, 집권당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추미애 대표가 광주에서 유족과 함께 영화를 볼 계획을, 우원식 원내대표는 오는 18일 당 지도부와 함께 관람할 계획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서는 이 같은 대통령과 정치인들의 '영화 관람'에 대해 국민에게 정치적 메시지를 건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문재인 대통령(왼쪽)은 지난 13일 서울 용산 CGV 아이파크몰에서 장훈 감독과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의 부인 에델트라우트 브람슈테르 여사(오른쪽), 배우 송강호, 유해진과 영화 <택시운전사>를 관람했다. /청와대 제공 |
◆ "5·18 정신을 헌법 전문으로…" 문재인, 취임 후 첫 영화 관람은 '택시운전사'
문 대통령은 지난 13일 서울 용산 CGV 아이파크몰에서 장훈 감독과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의 부인 에델트라우트 브람슈테르 여사, 배우 송강호, 유해진과 <택시운전사>를 관람했다.
문 대통령은 영화 관람 후 "아직 광주의 진실이 다 규명되지 못했다. 우리에게 남은 과제인데, 이 영화가 그 과제를 푸는 데 큰 힘을 줄 것 같다"며 "민주화운동이 늘 광주에 갇혀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제는 국민 속으로 확산되는 것 같다. 이게 영화의 큰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슈람슈테르 여사에게 "광주에서 민주화운동이 벌어지던 당시 다른 지역 사람들은 그 진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 사실을 보도한 기자들이 모두 해직당하거나 처벌을 받았기 때문"이라며 "남편인 위르겐 힌츠페터 씨 덕분에 우리가 그 진실을 알게 됐다"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택시운전사>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참상을 취재해 전 세계에 알린 독일 특파원 위르겐 힌츠페터를 태우고 서울에서 광주까지 택시를 운전했던 실제 택시운전사(송강호 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개헌을 통해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고 헬기 사격 등 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상규명을 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바 있다.
정치권에는 영화 <택시운전사> 관람 열풍이 불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를 비롯해 국민의당(사진)과 바른정당 지도부 등이 단체 관람을 마쳤으며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도 관람을 계획하고 있다. /이새롬 기자 |
◆ 정치권에 부는 '택시운전사' 관람 열풍
문 대통령뿐만 아니라 정치권에선 <택시운전사> 관람 열풍이 불고 있다. 이낙연 총리가 지지자들과 영화를 봤고, 호남을 기반으로 한 국민의당부터 보수정당인 바른정당까지 당 지도부가 단체관람을 하는 등 영화의 흥행에 한몫 거들고 있는 실정이다.
가장 먼저 <택시운전사>를 관람한 건 국민의당 지도부였다. 이들은 지난 3일 영화 개봉과 동시에 단체 관람을 했다. 당시 박주선 비상대책위원장은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이후 비대위 회의에서도 수차례 <택시운전사>를 언급하며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 특별법(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의 조속 통과에 당력을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8·27 국민의당 전당대회에 출마한 정동영 의원과 안철수 전 대표 등 대표 후보들도 관람 대열에 합류했다. 정 의원은 지난 8일 청년 당원들과 영화를 관람한 뒤 당시 취재기자로서 5·18 민주화운동을 취재했던 경험을 밝혔다. 안 전 대표는 이튿날 당 출입기자들과 함께 <택시운전사>를 봤다.
이 총리는 지난 6일 페이스북을 통해 '페친 번개(페이스북 친구 즉흥적 만남)'로 영화관람을 추진했다. 그는 선착순으로 지역과 연령, 성별 등을 고려해 지지자 20여 명을 선발해 함께 영화를 관람했다. 이 총리는 "37년 전 광주뿐 아니라 2017년의 대한민국 자체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감상평을 남겼다.
바른정당 지도부는 지난 12일 여의도의 한 영화관에서 단체관람에 나섰다. 이혜훈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 다수가 영화를 볼 예정이었으나 한반도 안보위기 고조되는 분위기를 고려해 일부 의원 관람으로 규모를 축소했다. 하태경 최고위원은 관람 후 페이스북에 "우리 사회를 한 단계 도약시킨 촛불의 어머니가 바로 5·18"이라며 바른정당은 '5·18 종북몰이'와 단호히 맞서 싸울 것이며 그러한 음해가 얼마나 허위사실에 기초해 있는지 밝혀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도 <택시운전사> 관람 예정이다. 추 대표는 이달 중으로 광주에서 민주화운동 유족과 함께 영화를 볼 계획을 세우고 있다. 우 원내대표 역시 오는 18일 원내지도부와 단체관람 일정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과 정치인의 영화 관람은 단순 문화생활이 아니라 국민에게 정치적 메시지를 건네는 것으로 해석된다. /청와대, 노무현 사료관 제공 |
◆ 대통령·정치인, 그냥 영화 보는 게 아니다?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영화를 관람하는 행위는 단순한 문화생활이 아니라 이벤트로 국민에게 정치적 메시지를 건네는 것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택시운전사> 이전 지난 2월에는 <재심>을 보고 "약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지를 다졌다"고 강조했다. 2012년 대선 당시에는 <광해, 왕의 된 남자>를 보고 노 전 대통령을 떠올렸다고 밝혔으며 <변호인>을 통해 정계 복귀를 암시한 바 있다. 이외에도 문 대통령은 진보 성향의 영화뿐만 아니라 보수 성향으로 평 받는 <국제시장>과 <연평해전> 등도 관람했다. 이는 영화를 통해 정치적 스펙트럼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해석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명량>과 <국제시장> <인천상륙작전> 등 애국심을 강조한 영화를 주로 관람했다. <국제시장> 관람 당시에는 "영화에서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애국가가 퍼지니까 경례를 하더라. 그렇게 해야 나라라는 소중한 공동체가 건전하게 역경 속에서도 발전해나갈 수 있는 게 아니겠냐"고 밝혔다. <인천상륙작전>을 본 뒤에는 "북한의 도발에 어떠한 주저함도 없이 단호하고 강력하게 응징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또 그는 <뽀로로 극장판 슈퍼썰매 대모험>과 <넛잡> 등 애니메이션도 공개 관람하며 창조경제와 문화융성 등 정책적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핸드볼 여자국가대표 선수를 소재로 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과 특수학교 성폭력 사건을 다룬 <도가니>를 통해 사회적 관심을 촉구해냈고, 독립영화 <워낭소리>를 관람해 국민적 관심을 끌어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에 가장 영화를 많이 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왕의 남자> <길> <맨발의 기봉이> <밀양> <화려한 휴가> 등을 공개적으로 관람했다. 특히 <화려한 휴가>는 <택시운전사>와 마찬가지로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로 정치적 방향을 드러냈다는 평을 받았다.
정치인들의 영화 관람 역시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 분석된다. 이번 <택시운전사> 관람 열풍 역시 정권 교체와 함께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관심, 사회적 분위기에 따른 움직임이라는 정치권의 분석이 따른다.
호남 기반의 국민의당이 <택시운전사> 단체 관람한 데는 오는 27일 열릴 전당대회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호남 민심에 지지를 간접적으로 호소하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개혁보수'를 내세우는 바른정당의 관람 역시 민주화 역사에 대한 존중을 드러내고 자유한국당과 차별화를 시도하는 행보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당은 지도부 차원에서 공식적인 관람 계획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