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흔의 법과 세상] 가습기살균제 '선고', 법과 국민의 괴리는 왜?
입력: 2017.08.14 10:12 / 수정: 2017.08.14 10:12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자들에 대한 법원의 선고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8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과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사실상 무혐의 판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 장면. /남용희 기자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자들에 대한 법원의 선고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8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과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사실상 무혐의' 판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 장면. /남용희 기자

임신한 아내를 위해, 뱃속의 사랑스런 아기의 건강을 위해 '인체에 무해' '아이에게도 안심'이라는 광고를 보고 그 가습기 살균제를 사 와서 가습기에 매일 매일 넣었다. 사랑스런 아기가 마침내 태어났다. 아내와 아이를 위해 더욱 열심히 가습기를 켜고 살균을 위해 가습기 살균제를 넣었다. 그런데 아내는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이 병원, 저 병원으로 전전하며 고통을 당했고, 아기도 중환자실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으나 안타깝게도 아기도 아내도 먼저 하늘 나라로 갔다.

갓 태어난 아기를 위해, 엄마로서 아기의 건강을 위해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는데 나의 사랑하는 아기가 이름 모름 병에 걸려 사망했다. 다른 한편에선, 아기를 위해 열심히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는데 아기는 이름 모를 불치병으로 고통을 당하며 힘겹게 살고 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난 후 아내와 아기의 사망 원인이 내가 아내와 아기를 위해 열심히 넣어 준 그 가습기 살균제였음을 알게 됐다. 나의 잘못으로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사랑하는 자식을 잃게 된 나는 아내와 아기에 대한 이 엄청난 죄책감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아이를 잃은 엄마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나의 잘못으로 인해 불치병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이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심정은 어떨까? 사망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치명적 신체 기능손상을 입고 평생 고통을 당하면서 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이들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오후 청와대 인왕실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오후 청와대 인왕실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청와대 제공

지난 8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면담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대통령으로서 정부를 대표해 가슴 깊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책임져야 할 기업이 있는 사고이지만 정부도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할 수 있는 지원을 충실히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아직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사건은 끝난 것이 아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은 8월 9일부터 시행되기 시작했다. 지난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피해가 발생하기 시작한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총 5117명(2016년 11월 8일 기준)이 정부기관에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폐질환 등 피해를 신고했다. 이 중 사망자는 1064명에 이르렀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렴 사망자가 2만여 명에 가깝다는 연구결과와 우리 국민 20%가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을 것이라는 여론조사 추정치 등을 더하면 피해규모는 가늠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006년부터 폐섬유화 증상으로 인한 사망사건이 보고되기 시작했고, 2011년에 가습기 살균제가 그 원인임이 밝혀졌다. 그 이후에도 질병관리본부는 역학조사를 늦게 실시했고 피해자 실태조사와 사건 수사는 진행이 더뎠다.

옥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유가족들의 피눈물은 마를 날이 없다. 사진은 유가족인 김미란 씨가 2016년 10월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당사 앞에서 가습기살균제 특위 연장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남용희 기자
옥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유가족들의 피눈물은 마를 날이 없다. 사진은 유가족인 김미란 씨가 2016년 10월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당사 앞에서 가습기살균제 특위 연장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남용희 기자

공정위가 2012년 2월 옥시 등을 검찰에 고발했지만 본격적인 수사는 2016년에 시작됐다. 마침내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자들이 기소됐다. 이렇게 큰 피해를 준 사람들에게 1심 법원이 내린 가장 중한 형은 징역 7년이었다. 피해자들은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반발했다. 항소심은 형량을 줄여 6년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에 대한 배상에 적극 노력해 공소 제기된 피해자 중 92%와 합의했고, 특별법 제정으로 피해자들이 구제급여 등을 지급받을 수 있게 됐다"고 감형 이유를 설명했다. 피해자들은 위 판결에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고 언론도 비판적이다.

이 판결은 일반인의 '법 감정'에 맞지 않다고 보인다. 왜 법률가 시각과 국민의 법감정에는 괴리가 있을까?

우리 법은 과실범의 경우는 원칙적으로 처벌하지 않고 예외적으로 처벌한다. 예외적으로 처벌하기 때문에 그 형량도 낮다. 10억 짜리 도자기(문화재)를 옮기고 있는데 장난으로 던진 돌에 그 도자기가 맞아 깨어져도 형사상 처벌할 수 없다. 과실손괴죄에는 처벌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과실로 사람을 죽게 한 경우 형법 제267조는 2년 이하의 금고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람을 죽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벌금형이 선고될 수도 있고 최대 형량이 금고 2년이다. 과실범이기 때문이다. 업무상과실·중과실치사의 경우는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 산업보건법상 안전조치의무 또는 보건조치의무를 위반해 근로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사업주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한다.

결국 과실로 사람 죽게 한 경우 최대 형량이 7년이다. 근로자를 죽게 한 경우가 아니면 5년이다. 양형위원회 양형기준에 따르면 업무상과실·중과실치사의 기본 형량은 8월~2년이다. 통상의 경우 과실로 사람을 사망하게 하면 8월~2년의 금고형을 선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합범(여러 개 범죄 행위가 있는 경우, 이 사건의 경우 사망자가 여러 명)의 경우 장기의 1/2을 가중한다. 결국 업무상과실·중과실치사의 경우 경합범 가중하면 7년6월이 최대 형량이 된다.

이 기준에 따르면 1심에서 7년을 선고한 것은 어느 정도 납득이 된다. 법원 입장에서는 중한 형을 선고하고 싶어도 기준(법정형)이 있으므로 그 기준을 벗어날 수 없다. 한편, 양형 기준보다는 훨씬 높은 형이 선고된 것이다.

결국 기준과 이번 사건에 대한 국민의 법감정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이다.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이런 과실범은 한명의 생명을 죽인 고의범보다 더 중하게 처벌해야 하지 않을까? 국민의 공감대를 거쳐 입법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자들은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도 기소되었는데 거짓·과장의 표시·광고, 기만적인 표시·광고를 한 경우 2년이하의 징역 또는 1억5천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pjh@swlaw.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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