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8일 여의도 국민의당 당사 브리핑룸에서 국민의당 의원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문준용 씨의 취업특혜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더팩트DB |
[더팩트 | 서민지 기자] "뭐야? 조작? 동생이랑 녹음을 했단 말이야?"
믿기 힘든 소식에 말문이 막혔다. 지난달 26일 박주선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의 "국민의당의 '문재인 대통령 아들 문준용 씨의 취업특혜는 조작된 것으로 확인됐다"는 대국민사과는 리히터 규모 9의 지진 소식만큼이나 사건의 황당한 내용과 전혀 예상을 하지 못한 '의외의 일격'이었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안겼다.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 마크맨'으로 활동하면서 '문준용 씨 취업특혜 의혹'에 대한 크고 작은 보도를 수차례 했다. 문준용 씨 파슨스 동료의 증언 외에도 고용정보원 직원의 증언,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 친척의 고용정보원 취업 특혜 의혹 등과 관련한 국민의당 논평들이 나올 때마다 기사로 작성했다.
당시 국민의당은 문준용 씨 관련 각종 의혹을 연이어 쏟아냈는데, '진짜일까'하는 의구심이 가는 정황도 몇 군데 있었다. 발표 때마다 기자들이 "어떻게 특혜를 받았다는 것이냐. 증거를 달라"고 따져 묻기 일쑤였다. 의구심을 풀지 못한 것은 '거짓'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당시 공명선거추진단장이던 이용주 의원은 "권 여사의 친척 문제는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 밝혀졌다.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조작된 제보'에는 취재기자들도 속수무책으로 속았다. 그동안 국민의당이 제시했던 증언들은 하나같이 연결고리가 부실했지만, 제보 건에 대해서는 파슨스 동료의 '녹취파일'까지 공개했기에 조작 의혹은 생각지도 못 했고, 그래서 더 파장이 더 컸다. 게다가 (결국 성사되지 않았지만) 한 언론사와 대표적으로 인터뷰까지 할 수 있다고 제보에 자신감을 보여 더 검증 과정을 소홀히 하고 말았다.
김관영 국민의당 진상조사단장이 수집한 자료를 취재진에게 공개하며 이번 문준용 씨 취업특혜 제보조작 파문은 "이유미 씨의 단독범행"이라고 발표하고 있다. /이새롬 기자 |
당시에는 일단 '의혹 제기' 수준으로 처리했다.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분명히 있었지만 지지율 1위 대선주자에 대한 상대 후보의 결정적 발표 내용을 보도하지 않을 순 없었다. 남들 다 앞다퉈 하는 보도를 필자만 안 하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대선을 5일 앞두고 '팩트체크'에 시간을 쏟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아니 그걸 왜 못 걸러냈어요? 그때 이용주 공명선거추진단장이 다른 건으로도 두 번 사과했고. 그럼 조심을 했어야 하잖아요. 더군다나 검사이신데, 단순 음성 조작에 속았다는 게 말이 되나요? 시점도 대선 5일 앞두고…." 국민의당 한 당직자에게 '나도 속았다'는 분한 마음에 따져물었다. 입으로는 상대에게 말을 했지만 내용은 내 자신의 실책을 탓하는 독백에 다름없었다.
대선 패배에 이어 후폭풍을 온전히 받아낸 당직자는 풀죽은 목소리로 "저도 속아서 당황스러워요. 조작…. 하, 누가 하리라고 생각이나 했겠어요? 정말 할 말이 없네요"라고 말했다. 그는 곧이어 억울한 마음도 함께 표했다. "그런데 당시에 더불어민주당에서도 가짜뉴스 엄청 만들어서 뿌렸어요. 우리의 몇 십 배가 되는 인원이. 갑철수, MB아바타부터 시작해서 기자님들도 알 만큼 아시잖아요. 그래서 우리도 가짜뉴스 검증하는 태스크포스(TF)도 만들었던 거고."
그러고 보니 무분별한 '발표 받아쓰기'가 낸 상처들이 비단 문준용 씨 한 사람에게만 국한됐을까. 갑자기 대선 때 썼던 의혹 보도들에 대한 자신감이 곤두박질쳤다. 사실과 거짓을 가리지 않고 공당의 발표라고 무조건 받아쓰는 행태가 부끄러워지며 기자 자신을 향한 신뢰 게이지까지 끝없이 끌어내린다. 지난 29일 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나도 '가짜뉴스' 때문에 힘들었어요"라고 한 말에 제 발이 저리기도 했다. 진영논리의 스피커 노릇을 하고자 한 건 아니었지만, 결론적으로 돌이켜 보면 '가짜뉴스' 배포에 일조한 것 같아 마음이 더 무겁다.
대선 당시 공명선거단장을 맡았던 이용주 국민의당 의원이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준용 씨의 미국 파슨스스쿨 동기라고 주장하는 인물의 녹취록을 조작한 이유미 당원과 이준서 전 최고위원간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공개하고 있다. /이새롬 기자 |
"아니 그걸 왜 못 걸러냈어?" 자신에게도 되물었고, 고민했다. 가짜뉴스는 전세계적으로 핫이슈였고, '진실의 문제'가 전세계적으로 큰 의제로 떠올랐다는 사실은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서 뽑은 2016년 올해의 단어는 '탈진실(post-truth)'이라며, 현대경제연구원은 가짜뉴스가 초래하는 경제적 비용이 연간 약 30조 원이 넘는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최근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가짜뉴스' 근절 대책 관련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가짜뉴스를 가려내는 인공지능(AI) 기술을 개발할 연구진을 뽑는 '2017년 인공지능 연구개발(R&D) 챌린지 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법률적 제재와 AI의 능력을 빌리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미국의 신경과학자이자 인지심리학자인 저자 대니얼J. 레비틴은 개개인에게 비판과 겸손의 자세를 요구했다. 최근 '무기화된 거짓말(Weaponized Lies)'이라는 신간을 낸 저자는 왜곡된 진실을 다루는 법을 세 가지로 나눠 밝혔고, 시의적절한 출판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다.
저자는 사람들을 오도하는 가짜뉴스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최선의 방어책은 '비판적인 사고법'을 배우고 가르치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진실보다 감정에 이끌리는 탈진실의 시대에 증거가 있는 주장과 증거가 없는 주장을 분간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비판적 사고를 갖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겸손'을 꼽았다. "비판적 사고법은 자신이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하다.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비판과 겸손의 자세는 이번 대선에서 '가짜뉴스'와 싸우는 법이란 큰 숙제를 안게된 언론인도 해당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