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민의당이 "평당원이었던 이유미 씨가 지난 대선 기간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준용 씨 취업 특혜 의혹 제보를 조작했다"고 시인하면서 '단독 범행'과 윗선 개입 여부 등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더팩트DB |
[더팩트 | 오경희 기자] "이게 강아지 새끼요?" 서울시장 3선을 노리는 변종구(최민식 분)는 박경(심은경 분)에게 묻는다. "네"라고 답한 박경에게 변종구는 재차 "아니, 늑대 새끼지. 내가 그렇다 하면 모든 사람들이 다 늑대 새끼라고 믿게 만드는 것, 그게 박 선생 일이요"라고 세뇌시킨다. 영화 <특별시민>의 한 장면이다.
극 중 변종구는 권력(목적)을 쟁취하기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라이벌인 양진주(라미란 분) 후보를 이기기 위한 변종구의 선거 캠프는 심혁수(곽도원 분)를 주축으로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사건'을 조작하며, 때로 이 과정에서 꼬리가 밟히면 측근과 심복(전략적 파트너), 심지어 가족까지 잘라 낸다. 거짓을 진실로 만들며 유권자들을 농락한다. 관객들은 '추악한 선거의 민낯'과 마주한다.
공교롭게도 영화는 19대 대선 기간인 4월 말 개봉해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두 달 뒤, 많은 사람들의 입에 또다시 오르내리고 있다. 바로 지난달 26일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준용 씨의 특혜 취업 의혹 조작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난 5월 5일 선거일을 나흘 앞둔 시점에서 '문준용 의혹'을 폭로한 국민의당은 이날 뒤늦게 '평당원 이유미 씨의 조작'을 '셀프 고백'했다. 그러나 이를 두고 '윗선(조직적) 개입'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SNS(사회관계망 서비스) 상에선 '조작'이라는 이유만으로 '특별시민'을 반추하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는 글들이 이어지고 있다.
영화 <특별시민>에서 변종구(최민식 분)는 권력을 위해 불법적인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영화 <특별시민> 스틸 |
우선 인물 관계도가 흡사하다. 선거 캠프를 진두지휘하는 중년의 '선거 베테랑' 심혁수는 20대 광고 전문가 박경의 재능을 알아보고 스카우트한다. 호텔 내 꾸려진 비밀캠프에 발을 들인 박경은 일거수일투족을 감시 당할 휴대전화를 건네받았고, 이후 일상을 심혁수로부터 통제 당한다.
캠프로부터 영상을 전달받은 박경은 성(性) 문제 논란을 일으킬 장면을 악의적으로 편집해 상대 후보 측에 건넸고, 이를 유포한 상대 후보 측은 변종구 후보 측의 원본 공개로 역풍을 맞는다. 심지어 상대 후보 아들의 (확인되지 않은) 대마초 의혹을 SNS 상에 유포했다. 이 모든 일의 '윗선'엔 변종구가 있었다. 그는 음주운전 후 사고 책임을 딸의 잘못으로 덮어씌웠고, 이를 약점으로 잡은 심혁수를 자살로 위장해 살해하기까지 했다. 권력에 눈 먼 변종구에게 정의와 인권, 인류애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 대목에서 일부 유권자들은 허구 속에 현실을 투영한다. '(2008년 9월부터 문준용 씨와 함께 파슨스 디자인스쿨 대학원을 다녔다는 A씨의 제보를 조작하도록) 당으로부터 지시를 받았다'는 이유미 씨와 '이 씨로부터 제보를 건네 받았으나 조작 사실을 몰랐으며, 박지원 전 대표에게 조언을 구했다'는 이준서 전 최고위원, '이 모든 일은 이 씨 단독범행이라고 주장하는 당시 캠프 핵심 인사와 이를 몰랐다는 당 지도부' 등의 진실공방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19대 대선 당시 안철수 후보 캠프 공명선거단장을 맡았던 이용주 국민의당 의원은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유미 당원과 이준서 전 최고위원 간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이새롬 기자 |
물론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국민의당은 이번 '문준용 제보 조작' 사건으로 '존폐 기로'에 섰다는 점이다. 지난해 2월 닻을 올린 뒤 20대 총선에서 호남 민심을 얻으며 제3 정당으로 도약했던 국민의당 창당 명분은 안철수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깨끗한 정치, 새로운 정치"였다. 국민의당에 한 표를 행사했던 유권자와 지지를 보냈던 당원들로부터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물론 재창당 수준의 혁신을 요구받는 이유다.
"유권자가 돼서 당신을 심판할 것입니다."
영화 속 박경은 (자신이 유권자로서 선택해 도왔지만) 타락한 변종구의 모든 실체를 알게된 후 분노한다. 그러나 오히려 변종구는 "네 말을 믿어줄까?"라며 비웃는다. 이는 곧 현실의 우리에게 '앞으로 선거에서 무엇을 믿어야 할까? 어떤 당과 후보에게 투표해야 할까?'란 뼈아픈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