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헌정사상 첫 '일자리추가경정예산(추경)'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이새롬 기자 |
[더팩트 | 오경희 기자] 문재인 정부의 11조 2000억원 하반기 '일자리 추가경정예산안'이 국회로 넘어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12일 국회를 찾아 현직 대통령으로서 첫 '추경 시정연설'에 나서 여야의 협조를 구했다. 국회가 추경에 동의하지 않으면 정부는 추경을 집행할 수 없다.
문 대통령은 이날 시정연설에서 일자리 추경의 필요성과 추경 예산의 쓰임을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단 1원의 예산도 일자리와 연결되게 만들겠다는 각오"라며 문 대통령은 국회와 정부, 여와 야, 공공과 민간이 힘을 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선 후보 시절 '일자리 81만개 창출'을 약속했고, 이는 취임 후 '업무지시 1호'였다.
이와 관련해 여당은 ' 6월 임시국회에서 추경안 통과'를 목표로 세웠다. 하지만 야3당(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이 법적 편성요건에 해당하지 않을뿐더러, 내용에도 문제를 제기하며 반대해 난항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 추경 내역…청년·여성·노인 등 취약계층 일자리 확충·개선 중점
추경 예산의 필요성과 쓰임을 설명하는 문 대통령./이새롬 기자 |
정부가 지난 5일 국무회의에서 의결안 '2017년도 추경안'의 재원은 국채 발행없이 △지난해 세계잉여금 잔액 1조1000억 원 △국세 예상 증가분 8조8000억 원 △기금여유재원 1조3000억 원 등으로 짜여졌다. 이를 통해 정부는 직접고용창출 효과 8만6000명(공공 7만1000명·민간 1만5000명), 민간 간접고용창출 효과 2만4000명 등 총 11만명 이상의 일자리 창출을 추산했다(자세한 내용은 기획재정부 홈페이지 http://www.mosf.go.kr 참조).
문 대통령은 "다행히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세수실적이 좋아 증세나 국채발행 없이도 추경예산 편성이 가능하다"며 "추경 목적에 맞게 일자리와 서민생활 안정에 집중했고, 항구적이고 지속가능한 일자리 창출을 위해 대규모 SOC사업은 배제했다. 대신 육아휴직급여, 국공립어린이집 확대 등 지난 대선에서 각 당이 내놓은 공통공약을 최대한 반영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공공부문에서 소방·경찰·근로감독관·사회복지전담공무원 등 국민안전·민생 공무원 1만2000명을 추가로 채용하고, 보육교사와 대체교사를 5000명 확충하는 등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2만4000명 확대하기로 했다. 노인 일자리 3만명 확대와 함께 일자리 수당을 (현행 22만원→27만 원) 인상하기로 했다.
민간부문에선 중소기업청년고용지원제도를 신설해 청년 3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면 세 번째 근로자의 임금을 연간 2000만 원 한도에서 3년 간 지원하기로 했다. 지원규모는 올 하반기에만 5000명이다.
11조 2000억 원의 추경예산안 배정 내역./기획재정부 제공 |
또 첫 3개월 간 육아휴직 급여도 통상임금 40%에서 80%로 두 배 확대(현행 상한선 100만 원→150만 원, 하한도 50만 원→70만 원)하고, 250억원 예산을 투입해 국공립 어린이집도 180개에서 360개로 당초 계획보다 두 배 늘리기로 했다. 경력단절 여성의 취업지원을 위해 컨설팅 인력도 확충한다.
이와 함께 문 대통령이 약속한 '치매 국가책임제'의 첫발로, 올해 중에 2000억 원을 넘게 투입해 전국 모든 시·군·구에 치매안심센터를 기존 47개소에서 252개소 확대 설치하고, 치매안심병원도 45개소에서 79개소로 확대한다. 지방에 교부되는 3조5000억 원의 재원은 필요한 일자리 사업 창출에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다.
문 대통령은 "마음 놓고 일하고 싶다는 국민들의 절박한 호소에 응답합시다. 일자리에서부터 국회와 정부가 협력하고, 야당과 여당이 협력하는 정치를 한다면 국민들께도 큰 위안이 될 것이다"며 추경의 조속한 국회 통과를 위한 여야의 "적극적인 협력"을 호소했다.
◆ 추경 험로…정부여당 "조속한 통과" vs 野 "불필요한 추경 편성"
정우택 자유한국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의 첫 추경안 시정 연설에 참석해 노트북에 '인사실패 협치포기 문재인 정부 각성하라!'는 문구의 푯말을 붙이고 있다./이새롬 기자 |
국무회의 의결 후, 추경안은 지난 7일 국회에 제출됐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이날 1차 전체회의를 열어 각 당 간사 선임을 의결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추경안은 기획재정위원회, 보건복지위원회 등 추경 관련 상임위원회의 심사와 예결위 의결을 거쳐 본회의 표결(상정·처리) 과정을 거친다. 12일 문 대통령의 시정연설에 앞서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원내대표는 추경안 심사에는 합의했다.
그러나 추경안 처리 과정은 험로가 예상된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여당은 6월 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열리는 오는 27일 추경안을 통과시켜 연내 집행한다는 방침이지만, 야당이 일제히 추경안에 부정적인 뜻을 밝혀 본회의 통과에 '빨간 불'이 켜졌다. 여당인 민주당 국회 의석 수는 재적 299석의 과반을 밑도는 120석으로, 자유한국당(107석), 국민의당(40석), 바른정당(20석) 등 일부라도 야당의 협조를 구하지 못하면 추경안 처리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
야당은 국가재정법상 정부의 일자리 창출 추경 편성은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현행 국가재정법(89조) 상 추경 편성 요건은 ▲전쟁이나 대규모 재해가 발생한 경우 ▲경기 침체, 대량 실업, 남북관계 변화 등 대내·외 여건에 중대한 변화가 생겼거나 생길 우려가 있는 경우 ▲법에 따라 국가가 지급해야 할 지출이 생겼거나 증가하는 경우 등이다. 즉, 일자리 창출을 위한 추경 예산을 편성해야 할 만큼 급박한 경제위기 상황은 아니라는 게 야당 측의 반박이다.
야3당 가운데 가장 강하게 반대하는 자유한국당은 문 대통령이 공약으로 약속했던 1만2000명 공무원 하반기 추가 채용에는 추경 예산이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지난 7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김광림 한국당 의원은 "본예산이 부족할 경우 예비비로 사용하는 게 우선"이라며 "현재 예비비가 3조원 가량이 있는데 공공일자리 증가는 당연히 예비비를 먼저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관련 예비비가 인건비에만 써야 하는 '목적 예비비'라서 채용 절차 예산으로는 쓸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헌정사상 첫 '일자리추가경정예산(추경)' 시정연설을 마친 뒤 퇴장하며 의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이새롬 기자 |
여기에 자유한국당은 12일 자당을 제외한 여야 추경심사 합의에 반발하며 '협조 불가'를 못 박았다. 정용기 원내수석대변인은 "기습적 추경심사 합의는 처음부터 협치 의사가 없었음이 드러났다"며 "우리당은 법과 원칙을 무시한 추경 심사 의사일정에 합의해 줄 수 없음을 분명하게 밝힌다"고 밝혔다.
정부여당의 추경 통과 마지노선은 6월 임시국회의 마지막 날인 오는 27일이다. 만약 이번 일자리 추경 국회통과가 지연될 경우 9월 초 국회에 제출되는 내년도 본예산 편성에도 지장이 있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무엇보다 임기 초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반면 추경안이 순조롭게 국회 문턱을 넘는다면, 정부는 임시 국무회의를 소집해 추경예산 공고안 및 배정계획안을 상정·의결해 조속히 집행할 방침이다.
한편 역대 추경안 처리 최장 기록은 2000년 저소득층 생계안정을 위한 추경으로 국회에서 106일 동안 처리가 안 됐고, 최단 기록은 2002년 태풍 루사 피해 복구를 위한 추경안으로 불과 3일 만에 처리됐다. 지난해 11조원 규모의 추경안 처리인 경우 여야의 극한 대립으로 사상 초유의 무산 가능성까지도 제기됐지만, 결국 38일 만에 통과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