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열린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강 후보자가 청문회 준비를 하고 있다. /이효균 기자 |
[더팩트ㅣ명재곤 기자]미국 애리조나 사막에서 사는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고 합니다. 신기하지만 당연한 결과입니다. '인디언 기우제'는 비가 올 때 까지 기우제를 계속 지냅니다. 비가 내려야만 기우제를 멈춥니다. 인디언 기우제는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을 그릴 때 종종 인용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무모함을 비꼬는 조롱의 의미로도 사용되기도 합니다.
최근 문재인 정부의 장관 등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를 보면서 문득 인디언 기우제가 생각났습니다. 여야 인사청문위원들이 흡사 인디언 기우제와 같은 '인디언 청문회'를 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신들이 얻고자 하는 게 손에 들어올 때까지 외통수 주장만 펴는 청문회인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비유가 적절하지 않았다면 양해바랍니다.
여야와 청와대가 각각의 신념체계를 현실정치에서 구현하기 위한 청문회인지라 그럴 수 있다고 이해도 듭니다. 하지만 기우제의 목적이 비를 부르는 것이고, 청문회의 책무가 국민의 여론을 십분 반영하는 데에 있다면 인디언 청문회의 결말도 생산적으로 도출해야겠습니다.
국민의당 정동영 의원의 주장은 이런 차원에서 눈여겨볼만 합니다. 정 의원은 8일 SNS상에서 "청문회에서는 현미경과 망원경이 둘 다 필요하다. '국가 개혁을 위해서 저 사람이 적임자인가'라는 기준을 분명하게 세우면 된다"며 후보자를 평가하는 척도를 피력했습니다. 그렀습니다. 국가 개혁 적임자론이 새 정부 고위 공직자를 선임하는 기준이 돼야 합니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혹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구태적 편가르기 정치를 하는 것은 아닌지, 뒤돌아 봐야 할 때입니다. 새 정부 탄생의 시대적 소명은 '개혁'임을 누구도 부정하기는 힘들겁니다.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과 자문위원들이 지난달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출범식을 갖고 현판을 제막하고 있다. 국정기획위는 최장 70일간 국정과제를 구체화 한뒤 위원회 종료시기에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한다./더팩트DB |
문재인 정부 조각작업에 있어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의 청문보고서 채택여부가 최대 관심사입니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김동연 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도 이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강 후보자의 경우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야 3당이 모두 반대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결과가 주목됩니다.
야 3당은 강 후보자의 위장전입 등 몇몇 하자를 들춰내면서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도덕적 흠결을 만회할 만한 업무 능력이 발견되지 못했다"며 한 목소리로 지명철회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승적 차원에서 국정안정에 협력을 요청한다"는 낮은 자세를 보입니다.
문재인 정부 탄생 한 달을 맞은 오늘까지 국무총리 임명외에 정부 조각은 엄두도 못내고 있습니니다. 적폐청산과 민생챙기기의 출발선인 새 국무위원 발탁이 의외로 시간이 걸릴 듯 합니다. 청와대측은 다소 지연되더라도 야당의 협력을 구하겠다는 노력을 보이고 있으나 만만치가 않습니다.
여야가 '협치'를 이야기하지만 그 속에서 쥐고자 하는 전리품이 다른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협치가 난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아니라 난국으로 몰아넣는 역설적인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정치권 안팎에서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는 이유입니다.
결국 '페미니스트' 문재인 대통령이 강 후보자를 지킬 것인지, 아니면 읍참마속(泣斬馬謖)의 불가피한 선택을 할 것인지가 향후 정국의 큰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말해 문재인 정부가 개혁의 길로 당당히 나갈 것인지, 아니면 개혁의 강도를 조절해야 하는지를 말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문 대통령은 오는 12일 일자리 추가경정 에산안과 관련해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할 예정입니다. 일부 야당은 강 후보자 임명을 강행 시에 추경반대에 나설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습니다. 문 대통령은 국회방문 과정에서 강 후보자 청문 보고서 채택도 요청할 요량인 것 같지만 한국당 등 야당의 입장을 볼 때 무위에 그칠 공산이 큽니다.
때문에 청와대와 여당은 분명한 자세를 취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강 후보자의 청문 보고서가 미채택된다면 채택 재요청을 할 것인지, 아니면 지명철회를 할 것인지를 일도양단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설득과 협치가 며칠 시간을 더 번다고 해서 될 상황이 아니라는 겁니다.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기에는 여야가 서로 강을 건넌 지가 오래됐다는 일각의 의견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청와대는 국민여론을 판단의 중심에 놓아야 합니다. 강 후보자의 임명에 국민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지를 우선 묻고 정권의 정치적 선택을 하는 게 마땅합니다. 최근 강 후보자 임명에 대한 쿠키뉴스 여론 조사를 보면, "'5대 인사원칙'에 위배되도 능력이 있으면 임명해야 한다" 와 "위배되면 임명해서는 안된다"는 응답이 각각 48.5%, 45.5%로 엇비슷하게 나왔습니다. 한국일보 창간여론조사에서는 강 후보자가 '자질이나 도덕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부정적 응답은 38.9%, '자질이나 도덕성을 갖췄다'는 긍정적 답변은 32.9%로 나왔습니다. 여론도 오차범위등을 감안하면 강 후보자 임명 찬성, 반대에 일방적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비(非)고시출신의 첫 여성 외교부 장관'의 탄생은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여성계와 외교부 공무원 노조, 그리고 위안부 피해 할머니 등 강 후보자가 국제 무대에서 쌓은 경험과 인적 네트워크를 외교부 개혁에 활용하기를 바라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70년만에 외교부 유리천장를 깨트려주기를 응원하는 지지층도 있습니다. 물론 직무 적합성이 부족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없지는 않습니다.
" '강경화 후보가 외교부 개혁의 적임자이냐라?'고 질문해서 부적격이면 '낙마'시키고, 적합이면 '인준'해주면 된다"는 정동영 의원의 일침이 문 대통령의 고민을 덜어줄 수 있을련지 모르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도식 행사가 지난달 23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에서 열렸다.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노 전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 아들 노건호씨 등이 1004마리 나비를 날리고 있다. /사지공동취재단 |
결국 문재인 정부의 통치 철학에 해법이 담겨 있습니다.
최근 가뭄 양상이 심상치 않습니다. 올해 전국 평균 누적 강수량이 평년의 절반을 겨우 웃돌면서 가뭄 피해 발생면적이 이달 초 기준으로 5450헥타르(ha)에 이른다고 합니다. 여의도 면적의 18배에 달하는 규모입니다. 가뭄 피해 지역을 중심으로 농업용수 부족 현상도 심화되고 있습니다.
가뭄이 심한 충남 일부에서는 생활·공업용수 공급에도 차질을 빚을 지경이라고 합니다. 입체적 가뭄대책 마련이 속도를 내야할 것으로 보입니다. 현대판 인디언 기우제의 묘책을 지방·중앙정부가 강구해야 합니다. 청문회에서 입심을 자랑한 선량들이 기우제 제주가 되면 좋을 듯 합니다.
논밭에도 정치판에도 농심(農心)을 어루만지는 큰 비가 한번 내렸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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