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영의 정사신] 바른정당 탈당파,'가짜 보수'인가 '진짜 보수'인가
입력: 2017.05.03 00:05 / 수정: 2017.05.04 10:19

바른정당을 탈당한 김성태 황영철 장제원 의원 등 13명은 2일 탈당하고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황영철 장제원 의원이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탈당신고서를 제출하던 당시. /이새롬 기자
바른정당을 탈당한 김성태 황영철 장제원 의원 등 13명은 2일 탈당하고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황영철 장제원 의원이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탈당신고서를 제출하던 당시. /이새롬 기자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가짜 보수와 결별하고 진정한 보수의 정신을 세우고자 새로운 길을 간다. 대한민국 정치를 후퇴시킨 친박 패권주의 극복, 진정한 보수 정권 재창출을 위해 새 출발을 다짐한다."

지난해 12월 21일 김무성 유승민 김성태 김영우 박인숙 이종구 김학용 김재경 김현아 유의동 이진복 이군현 황영철 오신환 정운천 나경원 이학재 정양석 홍문표 강석호 송석준 장제원 강길부 권성동 김세연 정병국 이은재 하태경 박성중 윤한홍 이혜훈 주호영 의원 등 총 33명은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을 떠나며 이런 명분을 국민에게 밝혔다.

이들은 이후 지난 1월 24일 바른정당을 창당하며 국민 앞에 무릎을 꿇었다. 박근혜 정부 탄생을 함께했지만, 최순실(61·구속 기소) 씨의 국정농단 등을 막지 못한 데 대한 사과이자 반성의 의미였다.

"저희 동지들은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을 바로잡는 데 애를 썼지만, 후안무치한 패권세력의 발흥을 막는 데 역부족이었다. 새누리당의 침몰이 보수 정치의 궤멸로 이어지는 상황을 그냥 바라볼 수 없었다."

바른정당을 탈당한 의원들은 지난 1월 창당 과정에서 저희 동지들은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을 바로잡는 데 애를 썼지만, 후안무치한 패권세력의 발흥을 막는 데 역부족이었다. 새누리당의 침몰이 보수 정치의 궤멸로 이어지는 상황을 그냥 바라볼 수 없었다고 했지만 다시 유턴했다. 사진은 지난 1월 바른정당 창당 당시 무릎 꿇고 국민에 사죄하는 모습. /이새롬 기자
바른정당을 탈당한 의원들은 지난 1월 창당 과정에서 "저희 동지들은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을 바로잡는 데 애를 썼지만, 후안무치한 패권세력의 발흥을 막는 데 역부족이었다. 새누리당의 침몰이 보수 정치의 궤멸로 이어지는 상황을 그냥 바라볼 수 없었다"고 했지만 다시 유턴했다. 사진은 지난 1월 바른정당 창당 당시 무릎 꿇고 국민에 사죄하는 모습. /이새롬 기자

바른정당은 이후 조기대선에 맞춰 유승민 의원을 당의 대선후보로 선출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지지율이 오르지 않으면서 내분을 겪었고, 2일 급기야 13명의 의원이 집단 탈당했다. 이들이 돌아갈(간) 곳은 "가짜 보수" "패권세력" 이라던 자유한국당이다. 창당 98일 만이다.

이들이 내세운 탈당의 이유는 "보수의 대통합을 요구하는 국민적 여망" "친박계 청산이나 개혁은 상당히 해소"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탈당은 결국 권력을 향한 발걸음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실제 탈당 의원이 "지금은 대선 승리를 위해 이 모든 것을 뒤로 하고, 결집해야 한다"고 말한 내용에서도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다. 즉, 친박 패권 청산보다 집권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누구는 탈당파의 정치적 행위는 궁극적으로 자기 안위를 위한 몸부림으로 풀이한다.

탈당에 이름을 올린 이들 중 김성태 황영철 장제원 의원 등은 지난해 국회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위원으로 국민적 지지를 받은 바 있다. 당시 이들은 친박계를 강도 높게 비판하며 보수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들은 바른정당을 떠나면서 결국 '대국민 사기극'이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바른정당을 탈당한 의원들은 유 후보가 단일화에 미온적이면서 자기주장만을 내세운다고 한다. 아마도 유 후보의 강직함이 이런 오해를 부른 이유일 것으로 보인다.

사실 바른정당은 개혁보수,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를 기치로 내걸었다. 한국당이나 바른정당이나 보수를 지향한다. 이런 이유로 두 보수정당 모두 영남을 정치적 근원으로 삼고 있다. 이런 보수 텃밭에서 유 후보는 홍준표 한국당 후보에 밀린다. 홍 후보는 '유 후보는 배신자'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는 대구 등 영남지역 유세에서 유 후보를 배신자로 낙인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4일 대구 서문시장을 찾은 홍 후보. /남윤호 기자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는 대구 등 영남지역 유세에서 유 후보를 '배신자'로 낙인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4일 대구 서문시장을 찾은 홍 후보. /남윤호 기자

유 후보는 영남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그런데 홍 후보나 친박계는 유 후보가 박 전 대통령을 향해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지적한 것을 배신이라고 했다. 유 후보가 영남에서 홍 후보에게 밀리는 이유도 '배신자' 프레임이 한 몫 한다고 본다.

영남은 역사적으로 제왕이나 권력자들에게 직언했던 선비들을 다수 배출했다. 권력의 정점에 있어도 부도덕한 것을 지켜보지 않았다. '영남사림'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남사림을 대표하는 학자는 1501년 같은 해 태어난 영남우도 '남명학파'의 남명 조식 선생과 영남좌도 '퇴계학파' 퇴계 이황 선생이다.

조식 선생은 '실천궁행(實踐躬行: 모든 일을 함에 있어 자기 몸으로 직접 앞장서서 실제로 행함)'을 중하게 여겼다. 조식 선생은 또, 정치의 잘못과 부조리가 있을 때 직언했다. 영남사림의 거목 조식 선생은 1555년(명종 10년) '을묘사직소'라는 상소를 통해 "벼슬아치들은 백성을 멋대로 벗겨 먹기를 마치 여우가 들판에서 날뛰는 것 같습니다"라고 비판했다. 이 상소에는 벼슬아치는 물론, 명종의 통치, 문정왕후의 잘못까지도 가감없이 직언했다.

유 후보의 "증세없는 복지는 허구" "영남사림은 나라가 가야 할 방향이나 옳은 주장, 정의, 이런 데 대한 분별력과 애정, 애착이 분명히 있다" "영남사림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는 정신이 있었다" 등의 발언에서 조식 선생의 체취를 느끼는 이도 있다.

유 후보는 2일 13명 의원의 집단 탈당에도 대선 중도 사퇴는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유 후보가 2일 영등포경찰서 중앙지구대를 방문하는 가운데 시민에게 꽃다발을 선물받고 있다. /남윤호 기자
유 후보는 2일 13명 의원의 집단 탈당에도 대선 중도 사퇴는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유 후보가 2일 영등포경찰서 중앙지구대를 방문하는 가운데 시민에게 꽃다발을 선물받고 있다. /남윤호 기자

영남사림을 대표하는 조식 선생의 정신에 비춰볼 때 유 후보의 박 전 대통령을 향한 발언은 '배신자'로 보기 어렵다. 오히려 영남 정치인으로서 당연한 말을 한 것이 오해를 받는 입장이 아닌가 싶다.

유 후보는 지난해 '배신의 정치'로 겪었던 고초를 집단 탈당으로 또다시 겪게 됐다. 유 후보는 집단 탈당에도 불구하고 대선을 끝까지 완주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지지율 꼴찌 유 후보의 무모한 도전으로 보는 시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보수, 그것도 영남을 지지기반으로 둔 이들은 왜, 정치를 하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박 전 대통령 논란이 불거졌을 때는 같은 세력으로 비칠까 발을 뺐다가 이제 됐다 싶으니 다시 돌아간 꼴이다.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식일까. 이들이 내건 명분이 건전 보수들의 이해를 구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흔히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정치인을 '철새'라 부른다. 당사자들은 듣기 싫은 말이겠지만 감수해야할 부분이다.

조선 후기 대학자 순암 안정복 선생은 '풍속이 흐르고 변한다 해도 군자의 몸에 석 자의 법은 변하지 않고, 천지가 뒤집히고 엎어진다 해도 대장부 마음 속 한 치의 쇠는 녹지 않는다'고 했다. 안정복 선생의 나이 71세에 지은 주련(柱聯)이라는 글이다. 나이가 들어 자신의 지기(志氣)가 꺾여 초지일관이 흔들릴 것을 경계하기 위함이었다.

바른정당을 탈당해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간 의원들의 모습은 안정복 선생의 초지일관의 역설이 아닐까. 탈당파들은 '가짜 보수'인가, '진짜 보수'인가. 그들의 민낯과 보수의 가치는 무엇인가.

cuba2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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