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29일 오후 전남 목포에서 호남의 지지을 호소했다. 사진은 목포 유세 차량 앞에 선 지지자의 자녀. /목포=윤소희 기자 |
[더팩트ㅣ목포=윤소희 기자] "저기요, 누나. 이거 몇 시에 끝나요? 아빠랑 엄마가 제 말을 듣지도 않아요."
이제껏 유세 현장을 취재하며 수많은 아이를 만났다. 갓난아기부터 교복을 입은, 필자보다 더 키가 큰 학생들까지. 어린 친구들은 엄마 손을 잡고 현장을 찾아 후보들의 품에 안기기도 했고, 그보다 조금 큰 아이들은 미래의 유권자다운 우렁찬 목소리로 후보의 이름을 부르기도 했다.
29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취재를 위해 찾은 전남 목포에서도 많은 어린이를 만났다. 그 가운데에는 처음으로 필자에게 말을 건 '초딩(초등학생)'도 있었다.
문 후보의 목포 유세 시간은 오후 8시였다. 기자단 버스는 광주에서 출발해 문 후보보다 늦게 목포에 도착했다. 허겁지겁 달려갔으나 어마어마한 인파에 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앉아서 노트북을 펼칠 수 있는 장소는 유세 차량 아래의 틈뿐이었다. 유독 유세 차량 아래와 인연이 있다.(지난 18일 문 후보의 전북 전주 유세 당시에도 차량 아래에 있었다.)
아무도 없어야 할 유세 차량 아래에는 이미 자리 잡은 이들이 있었다. 성인들보다 체구가 작아 이동하기 좋고, 호기심이 많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초딩'들이었다. 이들은 노트북을 들고 우르르 들어오는 기자들을 보고 호기심 가득한 눈을 반짝였다.
신경 쓰이는 '초딩'들의 눈빛을 외면하고 바닥에 앉아 문 후보의 말을 받아적기 시작했다. 문 후보는 시민들을 향해 "저 문재인, 5.18 광주정신을 헌법 전문에 새기겠습니다. 오월 영령들이 헌법 속에서 영원히 살아 숨 쉬도록 할 것입니다. 앞으로 이십일 뒤, 5.18민주항쟁 기념식에 19대 대통령의 자격으로 참석하겠습니다"고 호소했다.
이어 "목포시민 여러분, 전남도민 여러분! 노령산맥의 큰 줄기가 무안반도 남단, 여기 목포에 이르러 마지막으로 용솟은 곳 목포 유달산, 그 앞바다 하의도, 섬 소년 김대중. 김대중 대통령은 여기 목포에서 시작해 서울로, 평양으로, 마침내 세계로 고난과 역경을 뚫고 거슬러 올라가서 승리했습니다. 최초의 정권교체 대통령,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 대통령, 최초의 노벨상 대통령이 되셨습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때, 애써 눈길을 외면했던 것이 무색하게 '초딩'들이 슬금슬금 필자의 옆에 다가와 힐끔힐끔 노트북을 보는 게 아닌가.
문재인 후보는 29일 전북 익산을 시작으로 전남 순천, 광주, 목포를 돌며 호남 민심을 만났다. /익산=문병희 기자 |
이미 늦게 도착해 문 후보의 말을 받아적기는 늦은 듯했다. 호기심을 보이는 '초딩'들 만큼, 필자 역시 '초딩'을 향한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서 가장 가까이 있는 친구에게 말을 걸었다. "부모님 따라 왔어?"
'초딩'은 조금 놀란 듯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초딩'은 "네"라고 답했고, 문 후보의 연설을 듣는 것보다 이 어린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게 더 재미있을 것 같단 생각에 인터뷰 아닌 인터뷰를 이어갔다.
- 이 위에 사람 누군지 알아?
- 네. 문재인이요.
- 부모님이 좋아하셔서 따라왔어?
- 네.
- 어때? 좋은 사람 같아?
- 네!
필자와 이야기를 나눈 '초딩' 주변에 다른 '초딩'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조그만 강아지를 품에 안은 '초딩'부터 그 '초딩'의 친동생으로 추정되는 '초딩'까지.
일이 커질 것 같은 느낌에 다시 문 후보의 말에 집중하는 척했다. 그때 필자와 이야기를 나눈 '초딩'이 "저기요, 누나"라고 말을 걸었다. 당황하지 않은 척 바라보니 "근데 누나 어느 방송국이에요?"라고 묻는 게 아닌가. "누나는 방송국이 아니라 온라인 매체 <더팩트>라는 곳의 기자야"라고 설명하고 싶었으나, 알아들을 것 같지 않아 "비밀이야"라고 새침하게 답했다.
'초딩'은 한숨을 내쉬더니 "근데 이거 몇 시에 끝나요?"라고 다시 한 번 물었다. 이 친구의 하소연에 따르면 '초딩'은 주말을 맞아 부모님과 함께 시내에 나왔다. 그런데 부모의 발길은 문 후보의 유세 차량 앞으로 향했고, 문 후보가 오기 한 시간 반 전부터 이곳에 있었던 거였다. 수많은 인파 사이에서 가장 앞줄을 사수할 수 있던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초딩'은 "엄마와 아빠가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며 투덜거렸다.
문재인 후보의 목포 유세 현장에는 유독 초등학생이 많았다. 사진은 강아지를 안고 있는 어린이와 까치발을 들고 문 후보를 보고 있는 어린이. /목포=윤소희 기자 |
잠시 후 '초딩'은 부모님의 부름에 사라졌다. 강아지를 안고 있던 친구도, 그의 친동생도 모두 아빠와 엄마의 품에 안긴 듯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린 친구들은 더 많았다. 높은 유세 차량에 문 후보를 조금이라도 더 잘 보기 위해 까치발로 선 아이도 있었고, 비록 부모님이 쥐여준 듯했지만 응원봉을 들고 큰 소리로 호응하는 아이도 있었다.
필자는 문득 대선과 관련된 지나간 시절이 떠올랐다. 텔레비전으로 보던 개표 방송에서 시시각각 바뀌는 숫자에 눈을 반짝였고, 살던 지역의 수치를 보고 흥미로워했으며, 유권자가 된 후 첫 대선에서 한 표를 보낸 후보가 당선되지 않아 아쉬워하던 때도 기억났다.
십여 년이 지나면 이 어린 '초딩'들도 투표권이 생겨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유권자가 된다. 이들이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게, 유권자가 됐을 때 좀 더 수월한 선택을 할 수 있게끔 지금의 어른들이, 유권자들이 현명한 선택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