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취재기] '동성애 반대' 논란이 휩쓴 자리, 문재인의 '표정'
입력: 2017.04.27 04:00 / 수정: 2017.04.27 04:00

성소수자 단체가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공식 행사에 급습해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문 후보는 갑작스러운 시위에 일정을 마치자마자 차를 타고 이동했다. /윤소희 기자
성소수자 단체가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공식 행사에 급습해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문 후보는 갑작스러운 시위에 일정을 마치자마자 차를 타고 이동했다. /윤소희 기자

[더팩트ㅣ국회=윤소희 기자] '아닌 밤중에 날벼락'이었다.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화로웠지만, 일순간 '폭풍'이 휘몰아쳤다.

이날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공식 일정(천군만마 국방안보 1000인 지지선언 기자회견)이 본청 앞 계단에서 진행될 예정이라 해당 장소에는 리허설을 하는 행사 관계자와 취재진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평소와 다를 것 없이 무난한 대선주자의 공식 일정 분위기였다.

문 후보는 방송연설 녹화가 지연되면서 행사 예정 시각인 11시 30분보다 20분 늦게 국회에 도착했다. 발언을 받아적기 위해 바닥에 앉은 취재진이 뜨거운 햇볕에 고통을 호소할 때쯤 도착한 문 후보는 국방 안보 전문가들의 지지에 감사한 마음을 드러내며 "이제 우리 민주당은 안보 최고당"이라고 자부했다. 문 후보는 지지자들을 향한 "대한민국의 평화를 함께 만들자"라는 말로 연설을 마무리 지었다. 피부가 따끔거리는 것 외에는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그 평화로운 분위기는 순식간에 깨졌다.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색 깃발을 든 몇 사람이 연설이 끝남과 동시에 문 후보에게 달려들었고, 성소수자 단체의 일원인 이들은 '동성애 반대 발언에 대한 공개 사과'를 요구하며 큰소리를 냈다. 문 후보 측 경호원들은 제지에 나섰고, 취재진 역시 갑작스러운 상황을 살피기 위해 다급하게 현장에 파고들었다. 그야말로 난장판이 된 현장에 필자 역시 노트북을 품에 안고 달려들었다.

성소수자 단체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향한 기습 시위로 경찰에 연행됐다. 사진은 성소수자 단체의 시위(위)와 이들을 연행한 버스. /오경희 기자
성소수자 단체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향한 기습 시위로 경찰에 연행됐다. 사진은 성소수자 단체의 시위(위)와 이들을 연행한 버스. /오경희 기자

소란의 원인은 전날 진행된 'JTBC 대선 TV토론회'에서 나온 문 후보의 발언 때문이다. 문 후보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로부터 "동성애를 반대하냐"는 질문을 받고 "좋아하지 않는다. 동성애의 합법화를 찬성하지 않는다"고 답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에 성소수자 단체에서는 긴급 성명을 내고 사과를 촉구한 바 있다.

많은 사람이 엉켜 소란스러운 가운데 성소수자들은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건 우리의 존재를 반대하는 거냐. 우리도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며 차별금지법 제정과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그 가운데 누군가는 "인권 변호사였다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겠다는 후보가 국민 앞에서 공공연하게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느냐"고 울음 섞인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경호원들은 성소수자 단체를 끌어냈고, 이들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릴 때쯤에 행사는 다시 진행됐다. 문 후보는 잠시 놀란 기색을 보이다 이내 평온한 표정을 유지했다.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평화로운 행사 분위기와 보지 않아도 느껴지는 울분에 찬 성소수자들의 목소리가 대조됐다.

한차례 소란이 지나간 국회는 다시 평화로워졌다. /윤소희 기자
한차례 소란이 지나간 국회는 다시 평화로워졌다. /윤소희 기자

행사가 마무리되고 문 후보는 지지를 선언해준 국방안보 전문가들에게 인사하며 미소를 지었다. 이어 특별한 입장 발표 없이 몰려드는 취재진을 뒤로하고 차에 올랐다. 문 후보의 표정은 어떨까. 경호원과 플래시 세례 틈새로 본, 찰나 그의 얼굴엔 그늘이 드리웠다. 성소수자 단체는 문 후보가 떠난 뒤에도 한참을 울부짖으며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현장이 정리되고 성소수자들은 경찰에 연행됐다. 이들은 연행되는 버스에 갇혀 창문을 두드리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쾅쾅' 소리와 함께 버스는 곧 사라졌다. 언뜻 경찰 관계자로 보이는 이는 "다 집어넣었다"며 이들이 영등포경찰서로 연행될 거라는 이야기를 했다.

문 후보도, 성소수자들도, 취재진도 금세 각자 다른 곳으로 흩어졌다. 모두가 떠난 국회 본청 앞 정원은 평소와 다를 것 없이 평화로워졌다. 누군가 그랬다. 민주주의는 다름을 인정하는 거라고. 소란이 일어나 잠시 어수선해진 국회 본청 앞의 분위기도, 성소수자들도 틀린 게 아니다. 그저 조금 다를 뿐이다.

heeee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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