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17일 대구를 찾은 가운데 지지자들이 비날씨에도 우산을 접고 문 후보의 연설을 듣고 있다./대구=오경희 기자 |
'장미 대선'이 시작됐습니다. 5월 9일 국민은 대한민국의 새 대통령을 선출합니다. 이번 선거는 기간도 짧을 뿐만 아니라 후보도 많습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물론 정운찬 전 국무총리 등이 주요 대권주자입니다. 대선 레이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취재 기자들도 바빠집니다. 후보들과 함께 일정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후보들과 일정을 함께하는 기자를 '마크맨'이라고합니다. <더팩트> 기자들도 각 후보별 마크맨들이 낮밤없이 취재 중입니다. '마크맨 25시'는 취재 현장에서 보고 느꼈던 것들을 가감없이 풀어쓰는 코너입니다. 각 후보 일정을 취재하며 마크맨들은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취재를 했을까요? <편집자 주>
[더팩트 | 대구=오경희 기자] 새벽 4시 50분, 텅 빈 도로 위에 어슴푸레 어둠이 깔려 있다. 그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택시 한 대가 보인다. 행여 손님을 못 알아볼까 힘차게 손짓한다. 다행히 택시는 멈춰 섰다. "서울역이요." 무심하게 내뱉는 말에 운전기사는 "출장가세요?"라고 경쾌하게 묻는다. "네. 그냥 지방이요. 취재하러 가요"라고 답하자 그는 "힘드시겠네요"라며 부활절 달걀 하나를 건넨다. "행운이 올 것 같아요." 종교를 믿지 않지만, 낯선 이와 우연한 만남 그리고 뜻밖의 선물에 왠지 오늘 하루가 기대됐다.
어둠 속을 달려 서울역에 10분 만에 도착했다. KTX열차 출발 예정시각은 오전 6시. 행선지는 동대구역이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17일 첫 유세지로 '대구'를 선택했다. 민주당 역사상 처음이다. 문 후보는 '보수의 심장'에서 '통합 대통령'이란 승부를 걸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자 지난 30년 보수 정당을 밀어준 대구 민심을 파고들 수 있을까?' 가 보면 알겠지.
대구와 대전, 경기 수원과 용산을 오가는 빡빡한 스케줄에 마크맨들은 이동하는 KTX열차 안에서 짬을 내 기사를 쓴다. |
열차에 몸을 싣는다. '쪽잠'으로 피곤을 달래는 사람, 햄버거로 허기를 채우는 사람, 노트북 키보드를 열심히 두드리는 사람 …. 마크맨의 하루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순간이다. 머리 속으로 취재 동선과 속칭 '야마(내부 용어로 취재 과정에서 미리 짜는 주제와 스토리, 즉 골자)'를 그려본다. 복잡한 생각도 잠시, '에라 모르겠다' 그냥 좀 자자.
'동대구역입니다.' 안내 음성에 눈을 떴다. 오전 7시 50분. 드디어 대구다. 달서구 두류동 '2·28 민주의거 기념탑'까지는 차로 30분 거리다. 역을 나서자 기다렸다는 듯 또 한 택시가 반갑게 손짓한다. 이게 웬일이지? 이동하는 동안 대구 민심을 들어보기로 했다. "문재인 후보 어떠세요?" 운전기사는 머뭇거린다. "대구 사는 호남사람들은 지지하겠지"라고 답할 뿐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요?"라고 묻자 그는 "뭐 문 안 되게 하려면 안을 찍을 수도 있지.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후보)는 배신자고,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은 지지율이 떨어지니까. 그나마 될 사람 뽑아야지"라며 줄줄이 말을 이어갔다.
문 후보의 첫 일정인 '2·28 민주의거 기념탑' 참배 취재를 위해 동대구역에서 이동 중인 택시 안에서 만난 한 운전기사가 '보수 정당'을 지지해온 대구 민심을 대변이라도 하듯 각 정당 후보별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다. |
'아, 여기가 대구였지.' 운전기사의 '일장 연설'이 계속되던 중 '쿵'하고 몸통이 휘청였다. 뒤에 오던 차가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택시 후미를 박았다. 이때부터다. 일이 잘 풀리지 않기 시작한 것은. 목덜미가 욱신했지만, 취재가 급했기에 가해차량 운전자의 연락처만 건네받고 택시는 다시 달렸다. 현장에 도착하자 30~40여명의 지지자와 시민들이 굵은 빗방울도 아랑곳않고 문 후보를 기다리고 있다. 지원유세에 나선 김부겸 의원(대구 수성구갑)은 "봄비도 문 후보를 반긴다"며 분위기를 띄웠다.
오전 9시, 지지자들이 애타게 기다리던 문 후보가 이동차량에서 굳은 표정으로 내린다. '우르르.' 문 후보를 에워싼 경호원과 지지자들, 취재진이 뒤엉켰다. 우산 때문에 도통 문 후보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후보의 말 한마디라도 들어야하는데 머릿속에서 '빨간 불'이 켜졌다. 현장에선 후보 바로 곁 '명당 차지'가 취재 성공의 팔할이다.
'이 비를 맞아야 하나.' 순간 멈칫했다. 하지만 곧장 우산을 접고 '틈'을 파고 든다. 문 후보의 얼굴이 보이고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머리 위로 빗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온몸이 젖었다. '개고생'을 감수한 게 무색할 만큼 문 후보는 5분 남짓 기념탑을 참배한 뒤 다음 일정 장소로 이동했다. '빡빡한 일정'때문이다. 오전 10시 대구성서공단 내 삼보모터스에서 '일자리 100일 플랜'을 발표한 뒤 다시 경북대학교로 이동했다.
문 후보의 일정마다 얼굴을 보기 위해 몰려든 지지자들과 취재진이 뒤엉켜 우산 틈을 파고들고자 애쓰고 있다. |
경북대에서 문 후보는 공식 거리유세를 시작했다. 지지자들의 규모는 더 많아졌다. 2040세대부터 몇몇 60대 노인까지 "문재인" "사랑합니다"를 외치며 응원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대구 민심의 변화인가? 오전 11시, 유세 차량에 오른 문 후보는 '동서남북' 방향으로 몸을 돌려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든다. 열렬한 지지 덕에 미소가 가득하다. 몇 분 지났을까. 지지자들 사이에선 "앞쪽은 우산을 접자"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문 후보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서다. 또, 비를 맞아야 하는구나. "가짜안보와 정면으로 붙겠다"는 문 후보의 발언에 함성은 더 커졌다. 그러나 필자의 마음은 타들어갔다. 대전행 KTX 열차 출발 시간이 20분밖에 남지 않았다. 빗길을 부랴부랴 뛴다.
KTX열차로 이동하기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탄 문 후보가 한 지지자와 악수를 하고 있다. |
가까스로 열차에 올랐다. 짬을 내 오전 내 일정을 정리하고 기사를 작성한다. 속이 울렁거린다. 낮 12시 40분, 대전 일정 장소는 문화의 거리. 촉박한 시간과 좋지 않은 컨디션으로 점심도 걸렀다. 빗줄기는 더 굵어졌고, 인파도 배가 됐다. 이때 한 지지자는 어깨를 툭 치며 우산을 접으라고 했다. 결국, 이리저리 치인 우산은 대전에서 실종됐다.
후배가 생일선물로 사준 우산이었는데. '망이다, 망.' 얄궂게도 우산을 잃어버리고 나니 오후 3시 대전에서 수원으로 이동하던 중 비는 그쳤다. 그러나 문 후보를 차지하기(?) 위한 '자리 싸움'은 계속됐다. 오후 5시 수원역, 6시 광화문광장 유세에서도 말이다. 그리고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올수록 더 치열해지겠지. 내일(18일)은 비만 오지 말아라. '제~에~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