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SBS프리즘타워 공개홀에서 열린 대선후보 첫 합동토론회에서 주요정당 대선후보인 자유한국당 홍준표·국민의당 안철수·바른정당 유승민·정의당 심상정·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토론회 준비를 하고 있다. 후보 뒤로는 각 후보의 참모진들이 후보를 보좌하고 있다. /상암동=서민지 기자 |
[더팩트 | 서민지 기자] 13일 대선후보 첫 토론회 현장. 생각보다 훨씬 치열했다. 녹화시작 1시간 전인 오전 9시 상암동 SBS프리즘센터에 도착했다. 기자실은 2층, 후보들이 토론하는 스튜디오는 3층에 마련됐다. 현장 분위기를 스케치하기 위해 스튜디오에 가봤다.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법칙이 적용되는 정치판. 그 끝판왕이 대통령 후보 선출이라는 게 실감 났다.
◆ '으르렁' 참모들의 기싸움…각자 스타일은 달라요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후보의 대변인단장인 지상욱 바른정당 의원이 유 후보를 살뜰히 챙기고 있다. 다각도에서 유 후보를 바라보고, 뛰어다니며 옷매무새를 다듬어준다. 이를 바라보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스스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있다. /상암동=서민지 기자 |
천적 무리의 기 싸움은 녹화 전부터 활발했다. 오전 9시 30분. 스튜디오의 스텝들은 분주하게 움직인다. 밝게 켜진 조명 아래, 다섯 개의 의자가 마련돼 있다. 의자 앞엔 각 당을 상징하는 '빨강(자유한국당)-초록(국민의당)-하늘(바른정당)-노랑(정의당)-더불어민주당(파랑)' 불이 켜져 있다. 메인 무대 앞으론 김성준 SBS 앵커가 방송 준비에 한창이다.
오전 9시 43분.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노란색 재킷을 입고 가장 먼저 도착해 자리를 잡았다. 심 후보는 별도의 보좌진 없이 우두커니 앉아 정면을 응시한다. 평소 '사이다' 발언을 시원하게 뿜어내는 '심블리'지만, '첫 토론'인 만큼은 다소 긴장돼 보였다.
오전 9시 50분. 각 당의 후보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이들은 심 후보와 다르게 참모진을 대거 데리고 들어왔고, 참모진들은 '누가 더 잘 모시나' 경쟁을 벌였다. 문 후보는 일단 '수'로 밀어붙였다. 7명의 참모진은 문 후보 주변을 에워쌌고, 각자 맡은 파트를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문 후보의 입'인 김경수 의원은 대본은 물론 펜까지 살뜰하게 챙겼다. 바로 옆에서 홀로 심호흡을 하는 심 후보와 유독 비교됐다.
'보수끼리 경쟁'도 볼만 했다. 두 진영은 마지막 순간까지 눈치싸움을 벌였다. 앵커 출신이자 청와대 대변인을 역임한 민경욱 한국당 의원은 홍 후보에게 밀착해 설명을 이어갔다. 화면을 여기저기 가리키는 것 보니, 비법을 전수하는 듯했다.
이에 질세라 유 후보 대변인단장을 맡은 지상욱 바른정당 의원이 나섰다. 지 의원은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다각도에서 유 후보를 관찰하고, 수차례 유 의원의 넥타이 매무새를 다듬었다. 그리고도 떨어질 줄을 몰랐다. 민 의원도 지 의원도 녹화 시작 직전까지 홍 후보와 유 의원 곁에 딱 달라붙어 있었다.
이들의 가운데에 위치한 안 후보는 홍 후보와 유 후보 참모진들의 동향을 '쓱' 본 뒤, 홀로 자신의 녹색 넥타이를 매만졌다. 그리고선 대본 수정에 몰두했다. 안 후보의 사람들은 어디서 무얼 하나 둘러봤다. 곧 무대 아래서 흩어져 있는 안 후보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비서실장인 최경환 의원은 그저 먼 발치에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용호 의원과 김영환 최고위원도 바라만 보며 우려했다. 미간을 찌푸린 두 사람은 말했다. "아휴, 안 후보 너무 피곤해 보이지 않나요?"
◆ '날 것'을 보는 각 마크맨들의 반응 "와, 헐, 푸하하"
"아~ 리모컨, 이렇게?" 토론회 녹화에 앞서 PPT 발표를 준비하는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각자 자리에 앉아 있는 각당 후보들. /국회사진취재단 |
각 후보의 마크맨들이 한방에 모였다. 후보들이 각자 다른 일정을 소화하기 때문에, 같은 시간 한 자리에서 장시간 모든 후보를 취재하는 일은 드문 일이다. 매일 마주치는 담당 후보가 타당 후보와 맞붙는 순간, 정적이 흐른다. 곧이어 괄목할만한 대사가 나올 때마다 곳곳에선 탄식과 웃음이 터져 나온다. 특히 토론 때 정제된 모습을 보였지만, 준비과정에선 '생(生)모습'을 드러내 웃음은 배가 됐다.
이번 토론회엔 정책 관련 PPT발표 코너가 있었다. 때문에 후보들은 동선을 미리 파악해야 했다. 방송에 익숙지 않은 후보들은 동선을 익혔고, 준비하는 과정은 여과 없이 기자실의 영상으로 송출됐다. 김 앵커가 "PPT가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니 그거 한번 해보고 시작하겠습니다. 자, 가보겠습니다!"라고 하자, 유 후보부터 나섰다.
"안녕하십니까. 보수의 새 희망 유승민입니다." 진지하게 임하는 유 후보의 자세에 순간 '진짜 녹화'인줄 알았던 취재진은 "뭐야? 시작이야?"라며 화들짝 놀랐다. 그러나 곧 유 후보는 개구쟁이 미소를 지으며 "여긴 왜 글씨가 안 나오죠? 이거 보다가, 저거 보다가 뭐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라고 경상도 사투리를 쓰며 말했고, 기자실은 웃음바다가 됐다.
다음 차례는 문 후보다. 문 후보는 긴장했던 유 후보와 달리 살짝 미소를 머금고, "동방성장~"이라는 멘트에 손동작까지 추가하며 열심이었다. 김 앵커가 "예, 됐습니다! 그만!"이라고 말했지만, 열중한 문 후보는 "준비된 대통령~"이라며 계속 이어갔다. 리모컨 사용법도 숙지했다. "혹시 뒤로 되돌리려면 (리모컨을) 요렇게, 아! 요렇게"라고 손짓하자 기자실 곳곳에선 "귀여워!"라는 반응이 터져 나왔다.
홍 후보는 등장부터 취재진을 '빵' 터지게 만들었다. 그는 몹시 불만인 듯 '뚱한 표정'이었다. 스텝이 "제가 아까 설명한 대로"라며 설명을 하려 하자, "뭘 설명해?"라고 쏘아붙였다. 스텝이 조곤조곤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자, 그제서야 "아 저거? 저거 보고 읽는다고. (리모컨 잡으며) 이게 넘어가는 거고, 이게 '백(back)'이고. 오케이! 알았음"이라며 '쿨'한 표정을 지었다. 동료 기자는 "아, 알 수 없는 매력이 존재해. 저분은"이라며 크게 웃었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안 후보. 그는 매우 진지했다. "반갑습니다. 안철숩니다" 다른 후보에 비해 지나치게 몰입한 데다 이른바 '루이 안스트롱' 발성이 살짝 묻어나자, 역시나 다들 웃음이 터졌다. 그러나 안 후보는 연출되지 않은 평상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는 리모컨을 흔들며 "발표하고 이거 다시 드립니까, 들고 있습니까"라고 물었고, 스텝이 "들고 있으라"고 답하자 "예, 예"라고 말했다. 특유의 "예, 예" 화법(안 후보는 평소 경청의 의미로 상대방의 말에 "예, 예"라고 두 번 대답하는 특성이 있다)을 구사하자 또 한 번 웃음바다가 됐다.
◆ '스탠바이 큐!' 직전, 이건 마치 '예고편 꽁트?'
10시 방송 녹화 전 2층에 위치한 기자실. 화면 속엔 김성준 SBS 앵커가 방송녹화에 앞서 준비를 하고 있다. /상암동=서민지 기자 |
어느새 오전 10시 16분. 정말 녹화 직전에 다다르자, 후보들의 마이크가 켜졌다. 화면엔 후보들이 안 보이지만, 서로 대화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토론회 시작 전 서로를 향한 '견제구'를 날리는, 마치 예고편 성격의 '꽁트' 같았다.
가운데 세 사람인 안 후보, 유 후보, 심 후보(왼쪽부터)는 도란도란 격려의 말을 나눴다. 심 후보가 "토론, 익숙하시겠어요. 많이 해봤잖아요"라고 말했다. 안 후보는 심 후보 말에 맞장구를 치며 유 후보에게 "TV토론 몇 번 해봤어요?"라고 물었고, 유 후보는 "4번 나갔다"고 답했다. 안 후보는 "보기 좋았습니다"라며 덕담을 건넸고, 유 후보도 말을 이어가려던 찰나에.
문 후보의 목소리가 들렸다. "홍준표 후보님, 질문 한 번 해보십쇼. 끝에 있으면 잘 안 들리는 수가 있어서." 곧바로 홍 후보의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기자실은 웃음으로 초토화됐다. "문재인 후보, 신수가 훤~합니다. 불편하지 않은 질문 하겠습니다. 하하하." 홍 후보의 마지막 멘트로 토론회는 본격 시작됐다. 홍 후보의 말과 달리, '불편한 질문'은 토론회 내내 계속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