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재곤의 세상토크] 피의자 박근혜의 '한 점'은 무엇인가
입력: 2017.03.31 05:59 / 수정: 2017.03.31 08:39

뇌물죄 등 13개 혐의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이 확정된 31일 새벽 박 전 대통령이 경기도 의왕시 서울 구치소로 들어가고 있다./남용희 기자
뇌물죄 등 13개 혐의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이 확정된 31일 새벽 박 전 대통령이 경기도 의왕시 서울 구치소로 들어가고 있다./남용희 기자

[더팩트ㅣ명재곤 기자] "어떻게 살아도 결국 '한 줌'으로 되고, 긴 역사에서 볼 때 그냥 조그만 '점 하나'찍고 가는 겁니다."(2012년1월 sbs ‘힐링캠프’에서)

"아무리 100세 이상을 산다고 하더라도 긴 역사의 흐름에서 본다면 딱 점 하나도 안 될 것이다. 그러나 그 한 점이 어떻게 남느냐에 따라서 두고두고 욕을 먹기도 하고, 또 두고두고 인류에 공헌하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참 바르게 살아야 된다. 진실 되게 살아야 된다는 생각도 했다."(2013년6월 중국 국빈방문 때 학생들과 대화 중)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인 시절일 때, 대통령 신분일 때, 박근혜 전 대통령은 '한 줌, 한 점'이란 극명한 단어로 자신의 인생관을 나름 인상 깊게 주변에 전했다.

정치권에 입문한 다음 해에 출간한 자전적 에세이 '결국 한 줌, 결국 한 점'(1998년)에서 그는 "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보면 한 인간이 살다가는 기간은 작은 한 점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한 점이 영원히 남는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고 삶의 사회성을 강조했다.

인생사의 이런 저런 일을 겪으면서 살다 가면 한 줌의 흙이 될 뿐이기에 역사가 평가하고 기록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으로 그는 '한 줌, 한 점'을 종종 얘기했다. 말의 의미만 두고보면 법구경의 한 대목 같다.

정치인 박근혜의 '한 줌, 한 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지지자들은 '사심없이 대한민국과 결혼한' 그에게 열광하고 특정인들은 신도(信徒)에 가까운 언행으로 맹목적으로 곁을 지켰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31일 새벽  경기도 의왕시 서울 구치소로 들어가는 길목에 지지자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31일 새벽 경기도 의왕시 서울 구치소로 들어가는 길목에 지지자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탄핵으로 대통령직에 파면 당해서 서울 삼성동 자택으로 물러나던 날도, 법원에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가던 날도 일단의 친박 정치인과 시민들은 그를 옹호하면서 헌법질서를 무시하는 극단적인 모습마저 적지 않게 보였다.

헌정 사상 전직 대통령 신분으로는 처음으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은 어떤 '한 점'을 찍고 싶었을까.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에 당선되던 날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앞에서 "국민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삶을 돌보는 민생 대통령이 되겠다"고 일성을 던졌다. 앞서 대선 운동기간에는 "대학생들은 학자금 때문에, 결혼 준비세대는 보육과 집 걱정때문에, 가정에서는 가계 부채걱정, 실버세대엔 노후대책 때문에, 농어촌 도시소외지역은 생명력이 없기 때문에, 비정규직은 차별 때문에 꿈과 희망을 잃고 있다"며 그늘진 계층의 주름살을 펴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목소리를 높혔다.

당시 대선결과를 받아들인 야권과 시민사회는 그래도 박 전 대통령의 사심없는 순수성만은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돌봤던 이는 국민 한 분 한 분이 아니고 단적으로 '최순실'뿐이었다는 게 부인할 수 없는 참담한 현실로 드러났고 결과적으로 이로인해 박 전 대통령은 민심과 헌법의 탄핵을 받아 청와대에서 쫓겨났다.

피의자 박근혜 전 대통령은 31일 오전 3시께 결국 뇌물수수,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에 이어 수의를 입는 세 번째 전직 대통령이라는 '한 점'을 찍었다.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전 대통령으로 추락했다. 그의 한때 트레이드 마크인 '사심없는 정치인'이미지는 상당부분 구겨졌다.

조원진 자유한국당 의원이 30일 오전 박근혜 전 대통령이 법원에 영장실질심사를 받기위해 서울 삼성동 자택에서 출발한 뒤 친박단체 등 지지자들에게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변동진 기자
조원진 자유한국당 의원이 30일 오전 박근혜 전 대통령이 법원에 영장실질심사를 받기위해 서울 삼성동 자택에서 출발한 뒤 친박단체 등 지지자들에게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변동진 기자

검찰이 박 전 대통령에게 433억원 상당 뇌물 수수 혐의 등을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을때에는 '차고 넘치는'증거와 정황들이 있어서였다고 한다. "모른다. 기업으로부터 돈 한푼 안받았다"는 박 전 대통령측의 변명은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박근혜·최순실 경제적 공동체'라는 검찰측 주장을 법원은 공감했다.

법원측은 "주요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이 인정된다"고 영장 발부 이유를 설명했다. 박 전 대통령의 신병을 확보한 검찰은 보강수사를 진행한 후 4월17일 제19대 대선 선거운동 시작 전에 구속 기소할 것으로 관측된다. 박 전 대통령은 이제 법정에서 자신을 둘러싼 혐의의 유·무죄를 두고 공방을 벌여야 하는 '외 길'에 놓였다.

국회의 탄핵소추 자체를 부정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법정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일까. 박근혜 전 대통령은 31일 오전 4시45분께 경기 의왕시 소재 서울구치소로 들어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에서 국회의원, 첫 여성(부녀) 대통령, 첫 파면 대통령의 영욕의 길을 걸어 영어의 몸이 됐다.

이제 자신의 '한 점'에 대해 자문자답하는 많은 시간을 갖게 됐다.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으로서 어떤 '한 점'을 남길 지를 무겁게 고민하기를 국민들은 바란다.

sunmoon41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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