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바른정당 고문은 최근 제3지대 인사들과 만남 가지며 '분권형대통령제' 개헌을 추진하고 있다. /이새롬 기자 |
[더팩트ㅣ변동진 기자] 김무성 바른정당 고문이 '분권형 대통령제'라는 개헌 카드를 꺼내 들고,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다. 분권형 대통령제는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의 절충적인 정부 형태로, 대통령은 통일·외교·국방 등 안정적 국정수행이 요구되는 분야를 맡고, 경제를 비롯한 복지·행정·입법 등 내정에 관한 행정권은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한 국회가 맡아 수행토록 하는 제도이다.
김 고문은 개헌과 관련, "박근혜 전 대통령의 불행은 제왕적 권력구조에서 비롯됐다. 제왕적 권력형인 5년 단임제 대통령 권력 구조를 이제 '권력 분산형' 구조로 바꿔야만 다시 이런 불행이 오지 않는다"고 어젠다를 던졌다. 개헌시기는 '대선 전'이고,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정운찬 전 국무총리 등 '개헌'에 동의하는 이른바 제3지대 인사들과 만남을 갖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 안팎에선 김 고문의 '개헌 행보'에 따가운 눈총을 보내고 있다. 분권형 대통령제의 경우, 여소야대 구도에서 야권이 국무총리를 가져갈 수밖에 없는데 '국무총리 욕심' 때문에 개헌 카드를 내세우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김무성 고문은 '무성 대장'과 '30시간의 법칙'이란 별칭을 갖고 있다. /이새롬 기자 |
이같은 부정적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김 고문의 빛과 그림자인 '무대(무성 대장)'와 '30시간의 법칙' 때문으로 풀이된다.
'무대'란 그가 가진 카리스마와 당을 장악하는 리더십, 보수의 구심점 등을 상징하는 별칭이다. 반면 '30시간의 법칙'은 자신의 주장에 대해 30시간을 채 버텨내지 못하고 항복 선언을 한다는 비아냥이다. 즉, 두 별칭으로 김 고문을 해석하면 리더로서 '자격'은 있지만, 정치인의 생명과도 같은 '신뢰'는 없다는 명제가 나온다.
실제 김 고문은 지난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졌을 당시 탄핵은 물론, 탈당까지 불사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3차 담화를 발표한 11월 29일 별다른 말이 없다가, 38시간 만인 12월 1일 오전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 '4월 퇴진, 6월 대선'안을 제시했다. 김 고문의 이러한 행보를 놓고 정치권에서는 "또 '30시간의 법칙'이 도진 것이 아니냐"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또, 지난해 총선을 앞둔 3월 24일 오후 2시 30분에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5개 지역을 무공천으로 남기겠다"며 부산 영도로 내려갔지만, 25일 오후 3시 55분께 결국 3(공천):3(무공천)으로 최종 확정지었다. 이밖에 ▲지난 2014년 10월 중국 상하이 '개헌론 봇물' 발언 ▲지난해 2월 '공천 살생부' 발언 ▲지난해 8월 김영란법 관련 '농수축산물' 발언 등도 '30시간 법칙'의 사례로 꼽힌다.
이처럼 말을 번복하는 김 고문이 물밑에서 개헌을 주장하고 주도를 하고 있으니 정치권에선 그의 '셈'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보고 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란 의견도 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 등은 '대선 후 개헌'을 주장한다. /더팩트DB |
뿐만 아니라 당내 대권주자 유승민 의원과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 문재인 전 대표 및 더불어민주당 등 대부분의 대선주자들이 '대선 후 개헌'을 주장하는 데 김 고문을 비롯한 일부만 유독 '대선 전 개헌'을 고집하는 것도 '총리 셈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게다가 급박한 개헌 추진은 국민들에게 또 다른 혼란을 줄 뿐만 아니라 '동의'도 얻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 대선후보 캠프 핵심 관계자는 "개헌은 국민의 시급한 요구사항도 아니고, 이를 한다고 국정농단 문제가 재발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며 "이런 부분을 종합하면 개헌은 시기상으로 이르다"고 말했다.
유시민 작가는 지난 10일 JTBC에 출연해 개헌과 관련 "언제 국민들이 그러라고 했냐"고 지적했다. /더팩트DB |
유시민 작가도 개헌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대선 전'이라는 시기에 대해서는 부정적 의견을 냈다. 유 작가는 10일 방송된 JTBC '특집토론-탄핵심판 이후 대한민국, 어디로 갈까'에서 "헌법이 잘못돼서 이 사태가 났냐"며 "이명부·박근혜 정부에서의 많은 일들은 헌법의 잘못이 아닌 헌법을 제대로 운용 안 한 잘못이다"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헌법은 기본권 조항과 권력구조로 나뉜다. (개헌파는) 기본권 조항 내버려 둬고 대통령 4년 중임제로 바꾸고 국무총리 통해서 내각 구성하고 내치를 담당할 권한을 국회의원이 가지겠다는 것 아니냐"며 "언제 국민들이 그러라고 했냐. 국회의원들은 대통령보다 뭐가 잘났냐. (개헌은) 논의할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국정을 다잡아야하는 정국에 너무 한가한 얘기"라고 일갈했다.
세종대왕은 '공법'을 도입하기 전 백성의 동의를 얻는 과정을 거쳤다. /사진공동취재단 |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꼽히는 세종대왕은 새로운 세금제도인 '공법'을 도입하기 앞서 "정부, 육조와 각 관사 그리고 각도의 감사와 수령으로부터 민가의 빈민에 이르기까지 모두 가부(可不)를 물어서 아뢰게 하라(세종실록 12년 3월 5일)"고 명했다.
전화도 인터넷도 없던 시대지만 세종이 백성의 '동의'를 얼마나 중시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심지어 찬성이 57%가 나왔지만 반대가 많다며 보완을 지시했고, 공법이 도입되기까지 17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어떠한 국민적 대화도 없는, 심지어 '속이 뻔히 보인다'는 따가운 눈총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근간'(헌법)을 하루빨리 고치려는 김 고문의 행보에 물음표를 던지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