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인용으로 파면된 지 사흘째인 12일 오후 서울 삼성동 사저 앞에서 박사모 회원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박 전 대통령을 응원하고 있다. /남용희 기자 |
[더팩트ㅣ신진환 기자] 헌법재판소가 지난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을 파면함으로써 숨 가쁘게 달려왔던 '탄핵 열차'가 멈췄다. '조기 대선'이라는 2막이 올랐지만, 여전히 국내 정세는 혼돈 속에 있다. 지금의 어지러운 시국은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비롯됐다. 탄핵 이전에는 '비선 실세'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사태를 일으킨 점과 탄핵 이후에는 헌재의 결정에 사실상 '불복'했다는 점에서다.
박 전 대통령은 파면당한 이후 사흘 동안 청와대에 머무르며 침묵했다. 그러다 12일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면서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이라며 결백을 주장했다. 불명예스럽게 직에서 내려온 박 전 대통령은 여전히 자신의 고집만을 생각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끝까지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향후 검찰 수사와 법정 투쟁을 앞둔 상황에서 보수층 결집을 노린 메시지로 봤기 때문이다.
분명 박 전 대통령의 '국론 분열성' 발언은 아쉽다. 가뜩이나 나라가 혼란스러운데, 민심을 하나로 모으는 '국론 통합' 주문은 없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헌재의 최종변론에서 성명서를 통해 "앞으로 어떠한 상황이 오든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해 갈라진 국민의 마음을 모아 지금의 혼란을 조속히 극복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 나가겠다"고 했지만, 다시 한 번 약속을 저버렸다.
국민과의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어기는 박 전 대통령을 보수단체 회원들은 여전히 따르고 있다. '촛불민심'이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할 때 보수성향 시민들은 '태극기'를 치켜들고 맞붙어 왔다. 탄핵 선고 전후로 열렸던 '태극기 집회'에서 여러 보수단체 회원들을 만났다. 이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공통점을 찾을 수가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된지 나흘째 날인 1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박 전 대통령의 사저 앞에서 대사모 회원과 지지자들이 몰려 있다. /남윤호 기자 |
첫 번째는 어떠한 매체인지 확인한다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을 '마녀사냥'했다는 이유로 언론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강했는데, 여기서 좌파 성향 매체를 구분하려 했다. 취재한다는 이유만으로 협박과 위협을 일삼는 일도 더러 있었다. 두번째는 스스로를 '애국시민'으로 칭한다는 점이다. 인터뷰를 하다보면 "애국시민"이라는 말을 숱하게 들을 수 있었다. 진보 진영은 애국시민이 아니냐는 질문을 던지면 십중팔구 "빨갱이" "종북좌파"라는 말이 되돌아왔다.
박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여당 지위를 잃은 자유한국당 내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도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을 '애국시민'으로 부른다. 김진태 의원은 13일 헌재의 탄핵 선고 당일 태극기 집회 참가자 3명이 숨진 것과 관련해 "헌재가 국론을 더 분열시켰고 애국시민을 흥분시켜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다"고 주장했다. 윤상현 의원은 12일 페이스북에 "많은 애국시민과 함께 슬픔을 나누었다"고 글을 남겼다.
보수단체 명칭에 대부분 '애국'이 담겨있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턴가 '애국'이라는 단어는 '태극기'와 함께 단순히 수식어 의미를 넘어 보수를 대표하는 말로 자리잡혔다. 애국과 시민의 합성어인 나라를 사랑하는 시민이라는 뜻이 '보수 성향 시민'을 나타내는 말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늘 친하게 어울리는 사람'을 뜻하는 '동무'란 한글이 북쪽 공산당이 주로 사용하면서 친구, 친우란 한자어로 대체 사용된 것과 같이 '애국'이란 좋은 말이 왜곡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동안 보수단체를 취재하면서 보수단체가 말하는 애국의 진정성에 의구심이 든 적이 있다. 예를 들어, 불법임을 알고도 천막을 설치해 일반 시민의 통행을 방해하거나, 땅에 떨어져 발자국에 새겨진 태극기가 대표적이다.
보수만이 애국한다는 일부 시민들의 흑백논리는 우리 사회에 악영향만 끼칠 뿐이다. 보수와 진보의 적절한 견제와 다툼 속에서 우리 사회는 한층 발전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정치적 신념과 성향을 무시할 생각은 없다. 자유민주주의 나라에서 당연한 권리다. 다만, 애국이 진정 어떤 의미인지는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보수니까 애국이다'라는 접근은 진정한 애국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