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12일 저녁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택에 귀가하고 있다./남윤호 기자 |
[더팩트 ㅣ 이철영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12일 오후 전격적으로 청와대 관저를 나와 삼성동 사저로 거처를 옮겼다. 지난 10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선고 이후 이틀 만이며, 사저를 떠나온 지 1476일 만이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예정했던 6시 30분을 약 30분가량 넘긴 7시께 청와대를 떠났다. 박 전 대통령은 퇴거 전 한광옥 비서실장 등 참모진들과 가벼운 인사를 나눈 것으로 알렸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탄핵에 관한 대국민 메시지 등은 하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은 파면 이후 경호 등을 이유로 별다른 입장 발표 없이 청와대 관저에 머물러 왔다. 박 전 대통령은 탄핵 후 정치인 시절 머물던 삼성동 사저로 즉각 복귀하지 않으면서 일부 대통령 기록 훼손 등의 우려를 사기도 했으며 '퇴거 여부'에 관심이 집중됐다. 청와대 측은 박 전 대통령의 사저가 오랫동안 비어있고 경호 등의 문제로 당장 옮기기 어려운 상태라고 해명했다.
청와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일부 시민들은 박 전 대통령의 사정이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이에 청와대와 박 전 대통령 측은 급히 사저 수리에 나서며 이르면 13일 오전 이사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한 탓인지 이날 오후 급거 지난 2013년 떠났던 삼성동 사저로 4년여 만에 돌아왔다.
박 전 대통령을 태운 차량이 청와대를 나와 삼성동 사저로 이동하고 있다. /이효균 기자 |
청와대는 박 전 대통령의 사저에 경호나 경비 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은 점과 짐을 오래 비워 수리할 곳이 많아 수일이 소요될 수밖에 없었다는 태도였다. 사저 문제가 해결되면 즉시 청와대를 나갈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청와대의 해명에도 정치권과 시민들은 박 전 대통령의 사정으로 국민의 세금이 쓰이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한다. 더불어민주당은 박 전 대통령의 이런 행동에 "청와대 관저에 계속 머무는 것 또한 현실적 사정이 있다고는 하나 부적절한 처신"이라며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주문을 낭독한 순간 결정의 효력이 발생하는 것인데 이것 역시 헌법적 가치를 너무 쉽게 여기는 태도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이어 "헌법을 위배하고, 국정농단에 대한 최소한의 사죄하는 마음이 있었더라면, 헌재의 선고 이전에 탄핵이 인용될 경우의 수를 고려해 미리 준비했어야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12일 저녁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택에 귀가한 가운데 측근들과 인사하고 있다./남윤호 기자 |
정치권과 시민들의 비난이 이어지자 박 전 대통령과 청와대 측은 삼성동 사저 수리에 박차를 가했고, 이날 오후 급거 관저를 나와 삼성동 사저로 돌아갔다. 삼성동 사저는 박 전 대통령과 정치 일생을 함께했다.
청와대를 출발한지 약 30분 후에 도착한 삼성동 사저엔 박 전 대통령 측근인 서청원·윤상현·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 등과 일일이 악수했다. 박 전 대통령의 표정은 예상과 달리 밝았다.
박 전 대통령은 측근들과 악수를 나눈 후 사저 안으로 들어갔고, 이후 민경욱 의원이 박 전 대통령의 메시지를 발표했다.
민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은 '제게 주어졌던 대통령으로서의 소명을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해 죄송하게 생각한다. 저를 믿고 성원해준 국민께 감사드린다. 이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안고 가겠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박 전 대통령은 삼성동 사저에 1990년부터 2013년 2월 25일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까지 약 23년 동안 거주했다. 박 전 대통령은 1990년 서울 중구 장충동 집을 매각하고 삼성동 사저로 이사한 뒤 1997년 정계에 입문했고 2012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삼성동 사저로 돌아온 박 전 대통령은 '파면'되면서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서 보장하는 대우를 받지 못한다. 향후 5년간 공직에 취임할 수 없고 사면도 받을 수 없다. 다만 경호·경비는 예외다.
한편 헌재는 지난 10일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8인 재판관 전원일치로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은 70년 헌정사상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