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촛불 축제' 구경한 '태극기'의 서러움 "좋냐? 뭘보냐고!"
입력: 2017.03.11 18:57 / 수정: 2017.03.11 19:20

11일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 국민행동(퇴진행동)이 사실상 마지막 집회인 20차 범국민행동의 날 집회를 연 가운데,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태극기집회 참가자와 경찰이 대치하고 있다. /광화문=서민지 기자
11일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 국민행동(퇴진행동)이 사실상 마지막 집회인 20차 범국민행동의 날 집회를 연 가운데,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태극기집회 참가자와 경찰이 대치하고 있다. /광화문=서민지 기자

[더팩트 | 광화문=서민지 기자] "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 월드컵을 방불케하는 '축제의 장'이 11일 광화문광장에 열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자축하는 시민들은 전과 빈대떡을 나눠먹고, 구호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춘다.

"좋냐? 좋냐고! 뭘 봐? 무시하는거야?"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 국민행동(퇴진행동)'이 20차 범국민행동의 날 집회가 한창 진행되는 가운데, 태극기를 양손에 들고 가던 A 씨(70대)와 광화문 광장에서 노란 리본을 단 B 씨(70대)의 말싸움이 시작됐다.

B 씨가 축제분위기에 취해 '끝내 국민이 이겼습니다. 이제는 박근혜가 감옥에 가둔 사람들이 돌아올 차례입니다'라는 전단지를 내밀자 화가난 A 씨가 소리친 것이다. 무작정 멱살을 잡으며 달려드는 A 씨에게 B 씨는 "이거 좀 보라"며 다시 한번 전단지를 내밀었다.

11일 광화문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안전한 나라에서 살고싶어요라는 내용이 적힌 노란풍선을 들고 축제분위기를 즐기고 있다. /광화문=서민지 기자
11일 광화문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안전한 나라에서 살고싶어요'라는 내용이 적힌 노란풍선을 들고 축제분위기를 즐기고 있다. /광화문=서민지 기자

분노를 참지 못한 A 씨는 "뭐야? 약올리는거야. 탄핵은 무효야! 무효!"라며 B 씨를 향해 태극기를 흔들었다. 상황이 점점 악화되자 주변 경찰들이 달려들어 제지했다. B 씨를 보낸 뒤 A 씨를 붙잡고 "진정하시라. 여기서 태극기를 가지고 다니면 시비에 휘말린다. 조심해서 가시라"고 타이르며 길을 안내했다.

분이 풀리지 않은 A 씨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이 무효여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을 그렇게 편법적으로 처리한 헌법재판관들은 우리 세금을 다 뱉어내야해!"라고 한참을 설명하던 A 씨는 주변에 보는 눈이 많아지자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린 태극기집회 장소로 빠르게 이동했다.

같은 시간 아내 문 모 씨(73)와 '봄나들이'에 나선 임 모 씨(74·홍은동) 세종대로 방향으로 걸었다. 임 씨 부부는 조금전 본 A 씨 사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듯했다. 이어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를 갈라놓은 거대한 차벽과 주위를 지키는 수많은 전경들을 측은하게 바라보며 발걸음을 멈췄다. 임 씨는 차벽을 유심히 쳐다보더니 경찰에게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는군요. 수고가 많네요"라는 말을 건넸다.

한 70대 부부가 11일 세종대로에서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의 충돌을 막기 위해 설치한 차벽을 지키는 경찰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세종대로=서민지 기자
한 70대 부부가 11일 세종대로에서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의 충돌을 막기 위해 설치한 차벽을 지키는 경찰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세종대로=서민지 기자

임 씨에게 양극의 대치된 상황에 대한 생각을 묻자, "차벽이 점점 높아진다. 탄핵된 만큼 지난 일은 털어버리고 앞날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나. 경찰은 경찰대로 힘들고 서로 갈등만 더 심해질 것"이라면서 "저도 매주 촛불집회에 참석하던 사람이다. 그러나 이젠 (집회를 참석하기 보다) 각자의 일상에서 열심히 살아갈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오늘 나와서 눈으로 보니까 더 그런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문 씨도 임 씨의 말에 적극 동의를 표하며 한마디 거들었다. 문 씨는 '박근혜 감방가자'라는 플래카드를 보여주며 "탄핵은 당연히 돼야 했던 것이라 정말 잘됐다고 생각한다. 근데 이제는 저쪽(태극기집회 참가자들)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나라가 잘 굴러가나 감시를 해야할 때다. 우리 아들같은 얘네만 힘든 것 아닌가. 이쪽저쪽 참가자 모두 소모적인 논쟁은 그만 벌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태극기 집회'는 전날보다 열기가 확 줄어든 분위기다.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탄기국)'에서 '국민저항본부'로 명칭을 바꾼 태극기집회는 오후 2시부터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제1회 탄핵무효 국민저항 총궐기 국민대회'를 열어 "법치주의 장례식"을 치르겠다며 박 전 대통령의 탄핵에 대해 강력 반발했다. 하지만 참가자 수는 눈에 띄게 줄었다. 한때 시청을 넘어 남대문까지 찼던 숫자는 서울 시청 앞에 설치된 차벽 내를 간신히 채워 틈이 보일 정도였다.

mj7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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