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철영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4년,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 91일 만에 자연인 신분으로 돌아가게 됐다. 헌정 70년 사상 현직 대통령 탄핵이라는 불명예도 동시에 안았다. 이에 따라 정국은 5월 조기 대선체제로 급속히 돌입하게 됐다.
헌법재판소는 10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을 재판관 8명 만장일치로 인용했다. 헌재 8인 재판관을 대표한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이날 오전 11시 대심판정에서 '지금부터 2016헌나1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의 선고기일을 진행한다'로 시작해서 21분 만에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결정문을 읽었다. 헌재 심판은 단심제로 불복이 불가능하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결정문에서 "재판관 전원일치로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선고했다.
이 권한대행은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의 국정개입을 허용해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남용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일련의 언행을 보면 법 위배 행위가 반복돼 헌법 수호 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며 "결국 대통령의 위헌, 위법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 수호 관점에서 용납할 수 없는 중대한 행위라고 봐야 한다"고 파면 결정을 내렸다.
또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권한을 행사해야 하고, 공무 수행은 투명하게 공개해 평가를 받아야 한다"면서 "대통령은 최순실의 국정개입 사실을 철저히 숨겼고,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부인하며 오히려 의혹 제기를 비난했다"고 밝혔다.
이 권한대행은 "대통령은 미르·케이스포츠 설립, 플레이그라운드, 케이디코퍼레이션 지원 등 최서원 사익 추구를 위해 지원했고, 헌법·법률 위배 행위는 재임 기간 중 지속적으로 이뤄졌다"면서 "그 결과 대통령 지시에 따른 안종범, 김종, 정호성 등이 부패 범죄 혐의로 구속됐고, 피청구인의 위헌, 위법 행위는 대의민주제 원리와 법치주의 정신에 위배된다"고 설명했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박 대통령 탄핵심판에 관해 "대통령 박근혜를 탄핵한다"고 결정문을 읽었다. /사진공동취재단 |
이어 "박 대통령은 최서운(최순실)의 존재를 숨겼고, 의혹제기를 비난했다. 최 씨의 사익 추구에 관여했다. 이러한 위헌 위법행위는 대의민주주의를 위배했다. 조사에 응하지 않았고 청와대 압수수색도 불허했다. 용납할 수 없는 중대 법 위반행위라 할 수 있다"고 탄핵 인용 사유를 설명했다.
헌재가 탄핵심판을 인용하면서 박 대통령은 청와대 관저를 떠나 삼성동 사저로 옮길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파면'되면서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서 보장하는 대우를 받지 못한다. 향후 5년간 공직에 취임할 수 없고 사면도 받을 수 없다. 다만, 경호·경비는 예외다. 경호·경비는 전직 대통령으로서 알게 된 국가 기밀 등을 보호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조치다.
이로써 1998년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한 박근혜 대통령은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5선 의원을 거쳐 2013년 2월 첫 여성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기록을 세웠으나 탄핵으로 인한 첫 '파면 대통령'이란 불명예를 안으면서 파란만장한 18년 정치 인생을 사실상 마감하게 됐다.
그러나 박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헌재 판결에 불복하며 헌법소원심판청구를 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헌법소원심판청구는 '헌법정신에 위배된 법률에 의하여 기본권의 침해를 받은 사람이 직접 헌법재판소에 구제를 청구'하는 제도이다. 헌법소원의 청구 기간은 그 사건이 발생한 날로부터 1년 이내, 그리고 기본권침해사유를 안 날로부터 90일 이내 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4년,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 91일 만에 자연인 신분으로 돌아가게 됐다. 헌정 70년 사상 현직 대통령 탄핵이라는 불명예도 동시에 안았다. /임영무 기자 |
또, 박 대통령은 자연인 신분으로 최순실(61) 씨와 관련한 검찰의 조사도 피할 수 없게 됐다.
박 대통령은 현재 특검에 의해 피의자 신분인 상태에서 불소추특권도 사라진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박 대통령의 소환 시점이 대선 이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파면 후 60일 이내에 치러지는 대통령선거 때문이다. 지난 1997년 대선을 두 달 앞두고 김대중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의 비자금 의혹 수사를 선거 이후로 유보한다고 발표한 전례도 있다.
박 대통령이 파면되면서 정치권도 조기 대선정국으로 돌입하게 됐다. 헌법 제68조 2항은 '대통령이 궐위된 때 또는 대통령 당선자가 사망하거나 판결 기타의 사유로 그 자격을 상실한 때에는 60일 이내 후임자를 선거한다'고 규정한다.
공직선거법 35조 1항도 대통령의 궐위로 인한 선거 또는 재선거는 '그 선거의 실시사유가 확정된 때로부터 60일 이내 실시하되, 선거일은 늦어도 선거일 전 50일까지 대통령 또는 대통령 권한대행자가 공고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선거일은 4월 29일~5월 9일까지이다. 정치권은 '60일 이내'의 마지막 날인 5월 9일을 가장 유력하다고 본다.
한편 헌재는 재판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소추 사유를 ▲비선조직에 따른 국민 주권 위배 ▲대통령의 권한 남용 ▲언론의 자유 침해 ▲생명권 보호 의무 위반 ▲뇌물수수 등으로 했다.
헌재는 문화체육관광부 간부 좌천 인사, 정윤회 문건 보도와 관련해 해당 언론사 사장을 개입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인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밝혔다.
세월호 7시간에 대해서도 "세월호 사고는 참혹하기 그지 없으나 참사 당일 대통령이 직책을 성실히 수행했는지 여부는 탄핵심판 절차의 판단 대상이 아니다"라고 인정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