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의 눈] 안희정의 추상적 화법 "사모님과도 이렇게 얘기하세요?"
입력: 2017.02.23 05:00 / 수정: 2017.02.23 05:00

안희정의 화법. 안희정(오른쪽) 충남지사의 추상적 화법이 최근 도마에 올랐다. 2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도 한 패널은 사모님과도 이렇게 얘기하시냐며 농담 섞인 지적을 했다. 사진은 안 지사가 tvN 드리마 도깨비를 아내와 패러디한 장면./안희정 페이스북
안희정의 화법. 안희정(오른쪽) 충남지사의 '추상적 화법'이 최근 도마에 올랐다. 2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도 한 패널은 "사모님과도 이렇게 얘기하시냐"며 농담 섞인 지적을 했다. 사진은 안 지사가 tvN 드리마 '도깨비'를 아내와 패러디한 장면./안희정 페이스북

[더팩트 | 프레스센터=오경희 기자] 친절했지만 불친절했다. 최근 차기 유력 대선 주자로 떠오른 더불어민주당 소속 안희정 충남지사의 화법이 그랬다. 특정 사안에 관한 길고 긴 설명과 답변을 듣고 나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동의'와 '비동의'를 묻는 간단명료한 질문에도 '추상적인 언어'들을 사용해 본인의 신념을 밝혔다. 때문에 그의 발언 이후엔 '그래서?'란 물음표가 따라붙었다.

그런 안 지사의 화법은 22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도 도마에 올랐다. 그는 "경쟁 상대인 문재인 전 대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문 전 대표를 꺾을 자신이 있는가" "안 지사와 문 전 대표, 둘 중 누가 친노의 적통이라고 보나" "헌재의 탄핵 기각 시 승복하겠는가" 등의 질문을 받자 '네, 아니오' 대신 '정치적 언어'로 소신을 설명했다.

안 지사는 "문 전 대표는 좋은 분이지만 새로운 비전으로 경쟁해보겠다" "친노란 질문에 답하기 보다 다 대한민국의 후손이다" "책임있는 정치인으로서 사법부의 결정을 존중해야 하지만 현실 정치에서 국민의 상실감도 표현돼야 한다" 등으로 '민감한 질문'에 대처했다.

대선 주자로서 '말 한마디'에도 신중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안 지사의 애매모호한(?) 화법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또, 지난 이틀간 야권 진영과 문 전 대표 측으로부터 '박근혜·이명박 대통령 선한 의지' 발언으로 십자포화를 받았기에 사서 오해를 불러일으킬 필요도 없었다.

안희정 지사는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 민감한 질문에 정치적 언어로 대처하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문병희 기자
안희정 지사는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 '민감한 질문'에 정치적 언어로 대처하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문병희 기자

그러나 이후 토론회 내내 이어진 안 지사의 화법은 대선 주자로서 흠결로 지적받을 소지가 있어 보였다. 쉬운 '대중의 언어'가 아닌 관념적이고 현학적인 표현들 탓에 장내의 참석자를 설득시키기에 역부족이었다.

예를 들면 '안 지사의 동북아 균형자론은 10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각과 비슷한 것 같은데, 어떤 개념인가'라고 물으니 안 지사는 "저의 태도는 3·1 운동 당시 안중근 장군의 동양평화사상과 맥이 닿아 있다. 지난 100년 외침의 역사 속에서 핵심 전략은 동양평화로, 이 땅의 평화와 번영을 지키기 위한 현재 상황과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또 '한미 사드 배치 문제로 동북아 외교가 핵심 난제인데, 취임 후 중국과 미국 중 어느 국가를 먼저 방문할 것'이냐 묻자 "통상 대통령의 첫 주변국 방문 일정이 외교적 프로토콜상 어떤 전략으로 취해질 것인지는 외교 관례상 당연한 것이다. 가능하면 외교적으로 읽히지 않도록 중국은 경제적 크기와 번영 그리고 위치로 볼때 친구로서 잘 지내야 하고, 차기 정부는 한미 동맹이 흔들림 없이 기조를 지키면서 외교적 프로토콜이 어느 한쪽으로 쏠리도록 하는 것은 위험이 크다. 그러나 순차적으로 보면 미국 행정부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이 세팅되는 올해 여름 전에 미국을 급하게 방문해야 한다. 오래된 친구인 중국과의 관계도 부드럽게 될 수 있는 방문일정을 잡아보겠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설명했다.

안 지사의 이 같은 화법에 사회를 본 박제균 관훈클럽 총무(동아일보 논설실장)는 "정치는 언어죠. 말씀을 너무 어렵게 하는 거 아닌가요. '미국 방문이냐 중국방문이냐'라는 질문에서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하셔서 처음에 시작이 어디서 가다가 길을 잃는 거 아닌가 한다"고 꼬집었다.

사진은 22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 참석하는 안희정 지사./남윤호 기자
사진은 22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 참석하는 안희정 지사./남윤호 기자

토론회 패널로 나선 이우탁 '연합뉴스TV' 정치부장은 "(논란이 된) 선한 의지 발언도 20세기 지성과 철학을 비판하면서 신지성의 출발을 얘기한 것으로 아는데, 죄송스럽지만 어렵고 관념적이지 않나. 대중의 언어라는 게 있다. '사이다 발언'으로 평가받는 이재명 성남시장은 속속 들어오거든요. 혹시 사모님하고도 이렇게 얘기하세요?"라고 농담 섞인 지적을 했다. 이를 지켜 본 참석자들도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중의 언어가 아니다.' 바로 이 지점이다. '안희정 화법'이 지적받는 이유다.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는 지난 21일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철학자에겐 권력이 없지만 정치인에겐 권력이 있기 때문에 정치인에겐 바르고 정확한 언어가 중요하다"며 "'보수와 손잡는다'고 말하면 쉬운데 이를 추상적인 말로 포장하면 언뜻 대단한 철학처럼 보이지만, 상황을 왜곡할 위험이 있다"고 경계했다. 최근 도올 김용옥은 대담 과정에서 안 지사를 향해 "너무 추상적이다. 정치는 어디까지나 대중을 동원하는 행위인데, 그렇게 추상적 가치로 대중을 설득시키고 움직일 수 있겠나"라고 묻기도 했다.

물론 안 지사의 화법에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정치인은 '말'로 먹고 산다. 그들의 말은 대중적 이미지 형성에 핵심적인 구실을 한다. 이는 곧 '신흥 강자'로 급부상한 안 지사가 '넘어야 할 산'이란 얘기다.

안 지사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아래서 정치 경험을 쌓았다. '달변가'로 정평 난 노 전 대통령은 솔직함과 특유의 '직설 화법'으로 국민들의 공감을 얻었다. 참여정부 대변인과 제1부속실장 등을 지내며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윤태영 씨는 지난해 6월 '대통령의 말하기'를 펴내며 "(노 전 대통령의) 언뜻 단순해 보이거나 즉흥적으로 나온 말들도, 찬찬이 뜯어보면 치열한 고민의 결과물일 때가 많았다"며 "(노무현은) 고심의 내용을 담백하게 표현하는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즉, 노 전 대통령은 지도자로서 철학과 소신을 '대중의 언어'로 말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도자로서 대중의 언어로 말했다는 평가를 받는다./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 스틸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도자로서 '대중의 언어'로 말했다는 평가를 받는다./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 스틸

안 지사 역시 '현실 정치인'으로서 '화법'의 취약점을 인정했다. "헌법과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해서 발언을 하고 처신을 하는데 삶의 현장에서 보면 같은 말이라도 다르게 해석되는 것 같다" "요점을 정확하게 짧게 말하는 것이 훈련받아야 할 대목이란 점은 인정한다"고 했다.

박근혜 정권에선 '소통'이 부재했다. 차기 대권으로 가는 길은, '지도자의 언어'는 멀리 있지 않다.

ar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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