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영의 정사신] '난세'를 초래한 연산군과 박 대통령은 닮았다
입력: 2017.02.07 05:00 / 수정: 2017.02.07 13:51
헌정 사상 최초의 탄핵 위기를 맞은 박근혜 대통령과 500여 년 전 조선 10대 왕 연산군은 공조직을 무력화시키고 비선실세에 의한 국정 농단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임영무 기자
헌정 사상 최초의 탄핵 위기를 맞은 박근혜 대통령과 500여 년 전 조선 10대 왕 연산군은 공조직을 무력화시키고 '비선실세'에 의한 국정 농단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임영무 기자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여러 영웅(英雄)이 각지에 자리를 잡고 서로 세력을 다투는 군웅할거(群雄割據)의 시대와 다름없다. 너나 할 것 없이 대통령이 되겠다며 출마를 선언하며 지지를 호소하는 모양새가 그렇다. 다시 말하면 난세(亂世)의 영웅이 되겠다고 여기저기서 깃발을 들고 나선 것이다.

역사소설에서나 많이 보고 들었던 말들이 21세기 IT시대에 꽃을 피우고 있는 '난세'다. 작금의 대한민국이 그만큼 혼란스러운 까닭이다. 지난해부터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61) 씨로 촉발된 국정 농단 게이트 조사가 막바지로 치닫으면서 진통을 겪고 있는 것도 하나의 요인이다. 국민은 가능한 한 빨리 박 대통령과 관련한 이번 사태가 종지부를 찍길 원하고 있지만, 상황은 정상에 오르기 직전의 '깔딱고개'를 마주한 것처럼 힘들다.

특검은 지난 3일 청와대 압수수색에 나섰지만, 경내에 진입도 하지 못한 채 철수했다. 청와대와 박 대통령의 '힘 겨루기'가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형국이다. "엮였다"는 박 대통령이 스스로 조사를 받아 그 결백함을 증명하는 것이 가장 문제를 빨리 푸는 방법 같아 보이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시간을 끄는 모양새도 그렇고, 태극기 집회에 새누리당 의원 참석이 점점 느는 것도 상황을 더욱 어렵게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지금 같아서는 박 대통령의 대면조사가 있을 것으로 알려진 9~10일 역시 '고구마' 같은 뉴스가 나오지 않을까 우려된다.

박 대통령을 둘러싼 이번 논란을 가만히 지켜보면 조선 10대 왕 연산군(1476년 11월 7일~1506년 11월 6일)시대가 떠오른다. 박 대통령의 비선인 최 씨가 마치 연산군의 옆에서 장녹수가 국정 농단을 한 것과 매우 유사해 보이기 때문이다.

연산군과 장녹수는 이미 영화나 드라마 등을 통해 많이 알려질 만큼 유명한 인물이다. 연산군은 조선 10대 왕이면서 폭군으로 기록된 인물이다. 연산군은 조선 최초 반정(反正, 폭군을 폐위하고 새 임금을 옹립해 나라를 바로잡음)으로 폐위됐을 정도로 폭정을 일삼았다. 박 대통령도 내용은 다르지만 헌정 사상 처음으로 탄핵당할 가능성이 매우 큰 상황에 부닥쳐 있다.

박 대통령은 비선 실세 최순실 씨의 국정 농단을 몰랐다고 했고, 김기춘 전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은 블랙리스트 작성 혐의로 구속됐다. (왼쪽부터)/더팩트DB
박 대통령은 비선 실세 최순실 씨의 국정 농단을 몰랐다고 했고, 김기춘 전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은 블랙리스트 작성 혐의로 구속됐다. (왼쪽부터)/더팩트DB

연산군이 반정으로 폐위된 이유는 바로 폭정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다면 연산군이 삼사(三司,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를 제압하고 왕권을 강화한 부분이다.

삼사의 기능을 보자. 사헌부는 시정·풍속·관원에 대한 감찰 행정과 관원의 자격을 심사하는 인사 행정에도 관여하는 기관이다. 사간원은 국왕에 대한 간쟁, 신료에 대한 탄핵, 당대의 정치·인사 문제 등에 대해 언론을 담당하는 언관이었으며, 홍문관은 궁중의 서적과 문한을 관장했고, 경영관으로서 국왕의 학문적, 정치적 자문을 했다.

연산군은 이런 삼사의 기능을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통해 사실상 무력화시켰다. 그러나 연산군은 삼사의 기능 무력화가 자신을 고립하게 한다는 점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 결과 연산군은 반정으로 폐위됐다.

박 대통령의 경우는 어떤가. 현재 특검에 의해 구속된 면면이 말해주고 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등은 박 대통령의 측근이면서 올바른 정책 결정을 조언하는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처한 상황으로 볼 때 박 대통령과 최 씨의 관계를 전혀 막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도 특검 소환을 앞두고 있다. 연산군도 그랬고 박 대통령도 왕권 강화에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국가의 운영 실패라는 참담한 결과를 초래했다고 본다.

연산군과 박 대통령의 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사태를 대하는 태도이다. 연산군은 폐위 직전 "조선은 왕의 나라다. 조선의 백성 모두가 왕의 신하요, 조선 땅의 풀 한 포기까지도 모두 내 것이다. 조선의 모든 것이 본시 내 것인데 너희가 내 것을 빼앗아간 것이 아니더냐? 이제 다시 내가 찾아오려 하는데 무엇이 문제인가?"라고 했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 안종범 전 정책수석,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등은 박 대통령과 최 씨의 국정 농단 사건을 돕거나 내버려뒀다는 혐의를 받는다. /더팩트DB
우병우 전 민정수석, 안종범 전 정책수석,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등은 박 대통령과 최 씨의 국정 농단 사건을 돕거나 내버려뒀다는 혐의를 받는다. /더팩트DB

박 대통령은 이번 국정 농단과 관련 지난달 25일 1인 미디어 정규재TV와의 인터뷰에서 "오래전부터 누군가 기획한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지금 검찰이나 언론의 과잉되거나 잘못된 것에 있어서 탄핵이 혹시 기각되고 나면 정리를 하시겠느냐'는 사회자의 질의에 "(박 대통령이) '어느 신문이 어떻고, 이번에 모든 것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의 힘으로 그렇게 될 거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고 답한 것으로 보도했다. 연산군이나 박 대통령 모두 자기중심적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 연산군과 박 대통령은 '장녹수'와 '최순실'이라는 '비선'이 존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녹수는 연산군 폭정의 핵심인물이다. 중종반정을 성공시킨 세력은 권력 2인자 장녹수를 체포했고, 참형(斬刑)에 처했다. 연산군을 등에 업은 장녹수는 남의 재산을 함부로 빼앗고, 각종 뇌물과 인사 청탁을 받았다. 연산군일기에는 제안대군의 장인 김수말(金守末)은 계속해서 벼슬이 올라간 것과 관련해 "왕이 이때 한창 장녹수를 사랑하여 그 말이라면 모두 따랐기 때문에 특별히 승서(陞敍)한 것이다"라고 적었을 정도였다.

장녹수는 기생에서 후궁의 반열에 올라 정권의 실질적인 2인자였지만, 마지막은 비참했다. 반정에 성공한 세력은 장녹수를 참형하고 길 가는 사람들이 그녀의 시체에 기왓장과 돌멩이를 던지며 "일국의 고혈이 여기에서 탕진됐다"고 일갈한 것으로 전해진다.

19대 대선 출마를 선언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안희정 충남도지사,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김부겸 민주당 의원,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 이재명 성남시장.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더팩트DB
19대 대선 출마를 선언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안희정 충남도지사,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김부겸 민주당 의원,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 이재명 성남시장.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더팩트DB

박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 씨도 현재까지 드러난 것으로 볼 때 권력의 실세라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최 씨는 박 대통령을 등에 업고 인사는 물론 각종 이권 사업을 벌이며 기업 등으로부터 수백억 원을 뜯어냈다. 하지만 최 씨 역시 현재 구속된 상태로 법의 심판만을 남겨두고 있다. 장녹수를 향해 당시 "일국의 고혈이 여기에서 탕진됐다"고 했던 것이나 현재 국민이 촛불을 들고 외치는 것이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연산군이 조선 최초 반정으로 폐위된 것이나 국회로부터 탄핵을 당한 박 대통령이나 오백 년의 세월을 두고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다. 오백 년이라는 시간 동안 성장통을 겪었지만,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맹자가 말하기를 "오백 년의 주기로 반드시 새로운 왕조가 일어나고 그사이에 반드시 세상에 이름을 드러내는 사람이 있게 된다"고 했다. 맹자의 이 말은 단순히 역사적 경험에 따른 것은 아닐 것이다.

연산군이 폭정을 휘두르던 당시 오백 년 전 닭띠해(신유년)에 두 선비가 태어났다. 바로 남명 조식 선생과 퇴계 이황 선생이다. 2017년 정유년, 이 난세를 이끌 현명한 대통령이 나오기를 국민은 그 어느 때보다 희망하고 있다.

cuba2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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