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이 세상의 왕입니다." 영화 '더킹' 포스터 /더팩트DB |
[더팩트ㅣ명재곤 기자] '세상의 왕'으로 올라서고 싶은 박태수(조인성). 그의 정치적 도전은 어떤 결말을 맺었을까. 정치1번지 종로에서 여당의 대권주자급 경쟁자를 꺽고 국회에 입성했을까.
"선택은 당신이 하십시오. 당신이 이 세상의 왕이니까요." 박태수는 유권자인 '당신(국민)'에게 자신의 미래를 맡기면서 '끝'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개봉 여드레 만에 관객 237만 명(25일 현재)을 돌파한 영화 '더 킹(감독 한재림)'은 극장가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한강식(정우성)같은 권력 지향형 정치 검찰이 무너져 가는 상황을 즐기는 이들이 적지 않은가 보다. 찬찬히 따져보면 현실속 몇몇 전직 검사(장) 들 모습이 스크린에 간접 투영되기도 한다.
영화속 설정은 탄핵·대선정국속 현실과 오버랩되면서 대중들의 반향을 끌어내고 있다. 박태수의 마지막 대사는 왕은 유권자가 뽑고, 왕을 결정하는 유권자가 '진정한’ 왕'이라는 상식적 결론을 관객들에게 남겨준다.
하지만 이 상식을 현실에서 만끽하기가 쉽지 않은 게 또 다른 우리 현실이기도 하다. 일부 대사를 통해 영화와 현실을 연결해본다.
# "이슈는 이슈로 덮는거야"
권력 설계자 한강식은 '터지면 나라가 들썩들썩할 사건자료'를 차고 넘치게 가지고 있다. 시류에 맞춰 자신들 이익에 맞는 정권을 창출하거나, 이해 반대자를 제거하기 위해 자료를 '익혀서'터트린다. 여배우 스캔들, 정치인 부패상을 언론에 흘리면서 자신들에게 불리한 국면을 전환시킨다. "이슈는 이슈로 덮는거야"하면서.
국정농단 핵심인물 최순실 씨의 25일 오전 11시께 특별검사팀 출석시 발언을 생뚱맞은 돌발행위로 치부하기에는 흐름이 간단치가 않다. '죽을 죄를 졌다'는 최 씨가 '억울하다'고 고래고래 고함을 치는 모습에 TV생중계를 보던 많은 이들이 놀랐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여기는 더 이상 민주주의 특검이 아닙니다." "특검이 어린애와 손자까지 멸망시키겠다고 하고 박 대통령과 공동책임을 밝히라고 자백을 강요하고 있다"는 등의 발언을 내쏟았다.
이날 저녁 박근혜 대통령은 보수성향의 한 인터넷방송과 국회 탄핵가결후 첫 인터뷰를 갖고 역시 억울함을 강변했다. "국정농단 사태가 거짓말로 쌓아올린 커다란 산"이라며 "오래전 부터 누군가 기획하고 관리해온 일 같다"고 주장했다.
다음날인 26일 오전 최 씨의 변호인 이경재 변호사는 기자회견을 갖고 "특검 수사관이 최씨에게 폭행보다 터 상처를 주는 폭언을 연발해 정신적 피해를 가했다"고 주장했다.
'박근혜-죄순실'측은 무엇을 노리고 있는 것일까. 설 연휴 민심을 노린 여론전, 새로운 이슈로 기존 이슈를 희석시키려는 한강식의 계산된 물타기 수법인가.
최순실 고함, 왜? 25일 특검에 소환된 최순실이 "민주주의 특검이 아니다"라는 등의 고함을 쳐 국민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대치동=이덕인 기자 |
# "내가 역사야, 이 나라고!"
한강식은 자신의 비리연결 꼬리를 자르기 위해 박태수를 철저히 파멸시킨다. 회생불능의 상태로 몰아넣었다고 안심하고 있을때 박태수는 야당측과 손을 잡고 검찰개혁 카드를 들고 한강식을 압박한다. 한강식은 박태수를 회유하는 자리에서 "태수야 안보이니. 내가 역사야, 이 나라고"라면서 자신이 살아있는 권력 제조기임을 강조한다. 오만방자함의 극치를 보여준디.
대권을 향한 여야 잠룡들의 비행은 시작됐다. 이들의 역사관과 국가관은 유권자들의 주요 선택지표중 하나다. '아버지가 세운 나라'라고 자부심(?)을 가졌던 대통령은 지금 관저에만 머무는 신세다.
"사람이 먼저인 나라,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를 꿈꾼다."(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9일 SBS인터뷰)
"대한민국이 다시 세계만방에 등불이 되고, 국민들에게 벅찬 희망을 되돌려 드리기 위해 온 몸을 던지기로 했다."(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25일 관훈클럽 토론회)
"아무도 억울한 사람이 없는 공정한 나라를 만들고 싶다."(이재명 성남시장, 23일 대선출마 선언문)
"일방적으로 노동자 희생을 강요하면 안된다. 국가가 해야할 몫은 사회적 안정망을 만드는 것이다."(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24일 KBS 대담)
"구태와 낡은 관행에 물들지 않은 새로운 정치가 필요하다."(안희정 충남지사, 22일 대선출마 선언문)
"정의로운 민주공화국을 이뤄내는 것이 시대가 부여한 길이다."(유승민 바른정당 의원, 26일 대선출마 선언문)
"혁신으로 '국민 모두가 일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것이다."(남경필 경기도지사, 25일 대선출마 선언문)
"열심히 일하면 일한 만큼 대가를 받는 행복한 사회를 만들겠다."(심상정 정의당 공동대표, 19일 대선출마 선언문)
설 연휴 밥상머리에서 국민들은 잠룡들의 작은 발언 하나에서 자신의 후보를 결정지을 수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25일 보수 성향 인터넷 방송 정규재tv와 인터뷰에서 '최순실 사태 기획설'을 제기하면서 보수층 결집등 여론 반전에 나서는 모습을 보였다. /정규재tv 화면 캡처 |
# "당신이 이 세상의 왕이니까요!"
무소불위 권력을 쥐고 싶었던 박태수가 추구했던 왕은 과연 어떤 모습일 지 궁금했다.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박태수도 결국은 복수를 위해, 자기 생존을 위해 정치와 결탁하는 게 아니냐는 관객의 판단이 들때쯤, 마지막 반전 멘트가 들려온다. "선택은 당신이 하십시오. 당신이 이 세상의 왕이니까요."
'더 킹'의 왕은 대통령도, 민정수석도, 검찰총장도, 검사장, 정치인도 아니었다. 유권자, 국민이 왕이라는 엄연한 민주주의 가치를 영화는 말한다.
최순실 씨가 특검 출석하면서 "억울하다"고 외칠때 생중계 TV에서는 다른 소리도 흘러나왔다. "염병하네" "염병하네" "염병하네"라고. 발언의 주인공은 특검 사무실 빌딩에서 근무하는 미화원 아주머니 임 모씨였다. 그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시민의 한 사림으로 보니 어이가 없데. 아무 말을 말든가, 고개를 숙이든가, 죄송하다 말 한마디만 하기를 바랐는데, 뭘 잘했다고 떠들고 하는지..."라면서 자신도 모르게 '염병하네'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고 한다. 평상시같으면 욕설같은 언사가 '구수한' 직설로 받아들여지는 현 세태가 작금의 국민 정서이다. 많은 국민들은 '사이다'발언으로 통쾌해 했다.
"우리가 최순실 때문에 더 억울하다." "이경재 변호사가 양심이 있는 법률가라면 최순실 같은 사람 변호를 왜 하느냐." 이 변호사가 26일 최 씨 옹호 기자회견을 할 때 서울 서초구에 산다는 여성 위 모 씨가 이 변호사에게 날린 소신 발언도 화제였다."최순실이가 민주주의 의미를 알고 있습니까. 민주주의가 뭐래요, 최순실이는, 네?"라며 전날 '민주주의 특검이 아니다'는 최 씨의 발언에 돌직구를 날렸다.
영화밖에서 이 세상의 왕은 누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