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의 눈] 표창원의 '더러운 잠' 논란과 정치인의 자질
입력: 2017.01.26 05:00 / 수정: 2017.01.26 05:00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의원회관에서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기획한 전시회 곧바이전(곧, BYE! 展)에 걸렸던 작품 더러운 잠. /국회=배정한 기자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의원회관에서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기획한 전시회 '곧바이전(곧, BYE! 展)'에 걸렸던 작품 '더러운 잠'. /국회=배정한 기자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24일 인터넷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더러운 잠' '표창원' 등이 등장했다. '더러운 잠'과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을까 싶었다. 왜 이렇게 화제가 됐는지를 보니 표 의원 주최로 국회 의원회관 1층 로비에 전시된 '더러운 잠'이라는 작품이 문제가 된 것이다.

'더러운 잠'은 프랑스 화가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를 패러디해 박근혜 대통령의 누드로 풍자됐다. 작품에는 최근 시국을 담아 박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순실(61) 씨가 침몰하는 세월호 벽화를 배경으로 주사기 다발을 들고 시중을 들고 있다.

또, 박 대통령의 복부에는 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그리고 강아지 두 마리 그림이 그려져 있다. 문제는 박 대통령의 누드가 문제였다. 박 대통령도 여자라는 것이 주목받은 것이다. 풍자와 명예훼손을 놓고 정치권도 설왕설래 중이다.

논란의 중심에 선 표 의원은 "의도하지 않았을 부작용 일으킨 점에 대해 지적해 주시는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책임을 져야 한다면 지겠습니다. 어떤 방향의 판단이든 여러분의 판단이 옳습니다"라면서도 대통령, 권력자, 정치인 등 '공적 인물'에 대한 비판과 풍자 등 표현의 자유는 인정했으면 한다고 했다.

사실 정치권 혹은 권력자들에 대한 풍자는 그동안에도 수없이 많았다. 또, 외국에 비하면 국내에서의 풍자와 비판은 권력이라는 막강한 힘 앞에 무릎을 꿇은 경우도 허다하다. 지금 논란이 되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을 보면 권력이 이를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표 의원은 더러운 잠 전시 논란에 대해 의도하지 않았을 부작용 일으킨 점에 대해 지적해 주시는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책임을 져야 한다면 지겠습니다고 밝혔다. /배정한 기자
표 의원은 '더러운 잠' 전시 논란에 대해 "의도하지 않았을 부작용 일으킨 점에 대해 지적해 주시는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책임을 져야 한다면 지겠습니다"고 밝혔다. /배정한 기자

표 의원과 '더러운 잠'을 둘러싼 논란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이 작품이 국회가 아닌 다른 장소였어도 이런 논란이 있었을까. 가정이지만 현재와 같은 폭발적 반응은 없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보수성향의 누군가가 국회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더러운 잠'을 보았다면 그 전시장도 난리가 났을 것은 자명해 보인다.

표 의원은 국회의원에 당선되기 전 범죄 '프로파일러'로 유명했다. 정치인이 된 표 의원은 여전히 높은 인기를 얻는다. 그의 논리적인 언변도 한몫했다. 표 의원을 두둔하려는 생각은 없다. 다만, 표 의원과 '더러운 잠' 논란을 보며 여야 정치권 혹은 정치인들의 반응을 보면서 '정치인'의 본분은 무엇인가를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는 정도이다.

지금 여의도 국회에 있는 300명의 국회의원들의 마음 속에 가장 중요한 것은 과연 국민일까. 회의적이다. '직업으로서의 정치인'이냐는 질문에 대해 그동안 만났던 대부분의 의원들은 이 말을 '정치꾼'으로 받아들이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보수단체 회원 일부는 24일 국회 의원회관 1층 로비에 전시됐던 더러운 잠을 뜯어내고 쓰레기통에 버리는 등 훼손해 경찰이 출동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국회=서민지 기자
보수단체 회원 일부는 24일 국회 의원회관 1층 로비에 전시됐던 '더러운 잠'을 뜯어내고 쓰레기통에 버리는 등 훼손해 경찰이 출동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국회=서민지 기자

그런데 19세기 독일의 사회과학자 막스 베버( Max Weber)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가의 세 가지 자질로 '열정' '책임감' '균형감각'을 꼽았다. 여의도 국회의원들은 이 세 가지 자질을 모두 갖추었을까. 정치인에 관한 신뢰도가 극히 낮다는 것을 보면 자질이 모자란 부분이 상당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매일 싸우고 책임감도 별로 없고, 균형감각은 더더욱 없으니 국민의 평가는 매우 객관적이라 할 수 있겠다.

표 의원 논란에 정치권이 물고 뜯는 근본적인 이유도 막스 베버의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막스 베버는 "정당 간의 모든 투쟁은 본질적 목표를 위한 투쟁일 뿐 아니라 관직 수여권을 위한 투쟁이기도 하다"고 했다. 현재 정치권은 한창 대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상황이다. 정권을 잡아 관직 수여권을 손에 넣기 위한 투쟁이 한창인 이때 표 의원 논란은 지지율에서 밀리는 정당에 좋은 먹잇감이라 할 수 있다.

'더러운 잠' 논란의 중심에 선 표 의원은 같은 날 자신의 SNS를 통해 입장을 밝혔는데, 상당히 긴 글이었다. 긴 글 중 기억에 남는 문구가 있다. 100년 전 막스 베버의 글이 떠올랐다. 표 의원은 "논란이나 불이익 혹은 압력이 두려워 피하거나 숨지는 않겠습니다"라는 내용이다.

지난달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를 위한 국회 본회의 표결 당시 장면. /더팩트DB
지난달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를 위한 국회 본회의 표결 당시 장면. /더팩트DB

막스 베버는 "자신이 제공하려는 것에 비해 세상이 너무나 어리석고 비열하게 보일지라도 이에 좌절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능력이 있는 사람, 이런 사람만이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표 의원이 '더러운 잠' 논란에도 불구하고 "표현의 자유는 인정됐으면 한다"는 소신은 베버의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닌가 싶다.

박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 씨의 국정 농단으로 사회 전체가 뜨겁다. 또, 조력한 권력자들로 인해 국민은 '이게 나라냐'고 외치고 있다. 지난해 교육부 고위공무원의 "국민은 개·돼지"라는 인식이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다고도 할 수 있다. 관직 수여권을 목표로 하는 정치권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베버는 이미 이런 정치인과 관료의 습성을 꿰뚫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선을 앞둔 현재 국내 상황에서 다시 곱씹어 보자.

"왜 당신들은 당신들 스스로가 공공연히 경멸하는 그런 정치가들이 당신들을 통치하도록 하느냐? 우리는 당신들 나라에서와같이 우리에게 침을 뱉는 관료를 가지기보다는 차라리 우리가 침을 뱉을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을 관료로 가지고자 합니다."

cuba2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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