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취재기] 정유라의 조력자들, 갈 곳은 결국 승마장뿐이었다 <중>
입력: 2017.01.18 06:22 / 수정: 2017.11.01 20:27

정유라 은신처에서 사라진 폭스바겐 밴 차량이 헬스트란 승마장 인근에 주차돼 있다.네모 안의 번호판 차량 번호가 동일하다./올보르=배정한 기자
정유라 은신처에서 사라진 폭스바겐 밴 차량이 헬스트란 승마장 인근에 주차돼 있다.네모 안의 번호판 차량 번호가 동일하다./올보르=배정한 기자

[더팩트 ㅣ 올보르(덴마크)=이철영·배정한 기자] '종적을 감췄다.' '덴마크 당국의 도움으로 비공개 거처로 옮겼다.' 정유라(21) 씨의 덴마크 생활을 옆에서 도왔던 이들이 지난 10일(현지 시각) 이른 아침 필요한 물건만 챙겨 올보르 북부 거처에서 빠져 나가자 나왔던 말들이다.

정 씨와 함께 덴마크 생활을 해온 이들은 20대 마필관리사 남성 두 명과, 정 씨의 아들을 돌보는 60대 보모 등이다. 이른바 정 씨의 조력자들인 이들은 지난 1일 덴마크 경찰에 함께 체포됐다. 그러나 이들은 국내에서 범죄인 인도 요청, 여권 무효와 조치 등과 무관, 이튿날 풀려났다.

조력자들은 집으로 돌아온 날인 2일 오전 잠깐 모습을 이웃 주민에게 비친 후 더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더팩트> 취재진이 올보르에 있는 정 씨의 은신처를 찾은 날은 지난 3일 오후였다.

취재진은 3일부터 거의 매일 조력자들이 있는 거처를 찾았다. 창문은 블라인드와 수건으로 가렸다. 집 내부를 절대 보여주지 않겠다는 듯 조력자들은 외부와의 단절에 나섰다. 취재진이 있는 동안에도 국내 언론사들이 오갔다. 취재진은 조력자들을 만나고 싶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아직 정 씨 곁을 떠나지 못하는지, 혹시 말 못 할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지난 8일 오후 보모로 보이는 여성이 정유라 씨의 아이를 업고 창문 밖을 보는 모습. /올보르(덴마크)=배정한 기자
지난 8일 오후 보모로 보이는 여성이 정유라 씨의 아이를 업고 창문 밖을 보는 모습. /올보르(덴마크)=배정한 기자

사실 취재진은 이들과의 대화를 위해 손편지도 썼다. 국내 취재진이 하루가 멀다고 오는 관계로 문틈으로 의사를 전달하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조력자들에게 쪽지를 건네는 것은 실패했다. 문틈조차 없는 덴마크의 창문 때문이었다.

취재진은 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만날 수도 그렇다고 모습을 볼 수도 없었다. 그러던 중 지난 8일 오후 처음으로 보모의 모습이 반투명 창문을 통해 보였다. 지붕 위 보일러 연통에서 연기도 나오기 시작했다. 취재진은 이후 늦은 오후까지 조력자들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다 보니 어느덧 날은 어두워졌고,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6일 만에 처음으로 조력자들이 은밀하게 집안에서 지내고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불빛으로 비친 조력자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조력자들의 모습을 확인한 지 이틀 뒤 이들은 돌연 종적을 감췄다. 취재진은 이들이 다시 꼭꼭 숨었을 것이란 생각에 답답했다. 취재진은 이날 오후 정 씨의 집과 마주 보고 있는 이웃 주민으로부터 조력자들이 떠날 당시 사진을 볼 수 있었다. 사진 속 말 운반 트레일러가 눈에 들어왔다.

정 씨의 조력자들은 지난 10일 오전 말 운반 트레일러들 이용해 급히 은신처를 떠나 잠적했다.
정 씨의 조력자들은 지난 10일 오전 말 운반 트레일러들 이용해 급히 은신처를 떠나 잠적했다.

취재진은 지난해 10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현지 취재 당시 정 씨가 훈련했던 승마장에서 보았던 트레일러가 떠올랐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조력자들을 돕는 게 정 씨의 승마훈련과 무관치 않다는 것이었다.

취재진은 조력자들이 이용한 말 운반 트레일러의 제작사부터 덴마크 현지에서 트레일러를 사용하는 승마장 등을 찾기 시작했다. 물론 정 씨가 이용했던 헬스트란 승마장이 첫 번째 대상이었다.

한참을 트레일러 소재를 찾던 지난 13일 오후 취재진은 헬스트란 승마장으로 향했다. 헬스트란 승마장을 약 500m 앞두고 도로 옆 승마장 안쪽으로 조력자들이 이용했던 말 운반 트레일러와 같은 문구를 확인했다. 취재진은 승마장 안으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조력자들의 차량을 발견했다. 정 씨의 거처에 늘 주차돼 있었던 폭스바겐 밴 차량이었다.

정유라 조력자들이 이사할때 사용했던 트레일러와 같은 종류의 트레일러들.
정유라 조력자들이 이사할때 사용했던 트레일러와 같은 종류의 트레일러들.

취재진은 밴 차량을 확인하고 승마장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한참을 승마장 주변을 살펴보았다. 취재진이 승마장으로 들어가던 당시 마주했던 차량을 헬스트란 승마장 주차장에서 확인했다. 조력자들의 차량을 발견한 곳이 헬스트란 승마장과 관련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다시 승마장 내부로 향했다. 조력자들의 차량과 말 운반 트레일러를 다시 자세히 보았다. 조력자들의 밴 차량은 승마장 가장 안쪽에 주차돼 있었고 그 뒤로 주택이 있었다. 승마장에 있는 유일한 주택이었다. 취재진은 한동안 승마장 인근 주택을 확인했지만, 역시나 언제나 그랬듯 조용했다.

정유라와 조력자들이 이용하던 폭스바겐 밴 차량이 주차되어 있는 승마장.
정유라와 조력자들이 이용하던 폭스바겐 밴 차량이 주차되어 있는 승마장.

잠시 후 차량 한 대가 승마장 내부로 들어왔다. 취재진은 급히 승마장에서 빠져나갔다. 순간 함께 있던 후배는 "선배, 심장이 터질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긴박했다.

정 씨는 이화여대 입학 특혜 등 최순실 국정농단의 한 축으로 국내 송환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정 씨를 옆에서 도운 조력자들은 박영수 특별검사팀에서도 특별한 범죄 사실을 적용하고 있지 않다. 그런데도 이들은 여전히 정 씨의 주변에 남았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이들이 갈 수 있는 곳은 결국, 승마장이었다.

취재진의 방문이 자신들의 프라이버시를 침해당했다는 조력자들이다. 언제까지 그렇게 정 씨의 주변에서 승마장 등 인근을 떠돌며 살아갈 수 있을까. 잠깐 몸을 은신해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조력자들은 향한 추적은 정 씨의 국내 송환 그리고 사건이 끝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그때도 프라이버시를 운운할 수 있을까.

<하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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