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재곤의 세상토크]최순실 일당, 왜 반기문 총장을 거론하나
입력: 2016.12.23 05:00 / 수정: 2016.12.23 07:19

최순실 씨가 19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형사대법정에서 열린 국정농단사건 첫 재판에 들어서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최순실 씨가 19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형사대법정에서 열린 국정농단사건 첫 재판에 들어서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더팩트ㅣ명재곤 기자] 눈빛이 모든 걸 말해 주는 것일까요. 법정에서 표독스럽게 쏘아보는 눈빛을 보면 지금 최순실(60)씨가 어떤 심리상태에서 '촛불 민심'에 맞서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증거를 제시하든지 간에 나는 죄가 없다'라는 극렬한 자기 항변의 섬뜩한 시선을 그는 주저 없이 드러냈습니다.

'죽을 죄를 지었다'라며 흐느끼며 반성의 기미를 보였던 독일 귀국 후 검찰 소환 때의 모습은 어느 한 곳 찾아볼 수 없고 '너희들이 나를 어쩔 건데. 내가 최순실이야'라는 태도로 비선실세 존재감을 오히려 과시하는 듯 했습니다.

최 씨 측은 국정농단 혐의를 전면 부인 했습니다. 무얼 믿고 고개를 뻣뻣이 들고 눈을 치켜뜨는지 그 뻔뻔함에 어쩔 때는 소름이 돋기조차 한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종종 합니다.

"독일에서 왔을 때는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제 정확한 걸 밝혀야 할 것 같다"며 최 씨는 지난 1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국정농단사건 공판준비기일에서 살기어린 '레이저' 눈빛을 쏴댔습니다.

그 장면을 본 이들은 최 씨의 후안무치한 작태를 지적하기에 표현의 부족함을 느낀다고 할 정도입니다. 입에 담기 힘든 거친 육두문자를 내지른 다음에야 가슴 한편이 조금이라도 위안을 받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국정농단 사건 주범격인 최 씨가 공판준비기일에 법정에 나서겠다고 했을 때 사실 의아했습니다. 공판준비기일은 검찰과 변호인이 쟁점사항을 짚어보면서 공판이 효율적으로 진행되도록 하는 준비절차입니다.

피고인인 최 씨가 출석하지 않아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데 나온다는 그 자체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겁니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수석과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은 나오지 않았는데 말이죠.

그런데 최 씨는 자신에게 쏠린 세상의 온갖 날 선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수의차림으로 버젓이 등장했고 아니나 다를까 레이저 눈빛으로 안하무인격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는 공황장애 등을 이유로 출석을 완강히 거부했던 그가 형사재판에는 나왔습니다, 자신의 운명과 직결되는 재판은 외면할 수 없었나 봅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최 씨가 며칠 간 고민 끝에 ‘내 재판의 큰 그림을 보겠다’며 출석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변호인의 조언을 받아들였다는 것인데, 검사와 피고인 변호인간 재판 쟁점 공방을 보면서 나름 자기 방어논리를 그려보겠다는 심산이었을 것 같다는 해석입니다.

여기서 누구는 이렇게도 추측합니다. '자기 사람들'에게 모종의 메시지를 전달하기위해 나왔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최 씨 측은 이날 미르·K스포츠 재단 774억 원 강제모금 등 박근혜 대통령과 안 전 수석이 개입한 혐의의 전제가 되는 '공모'를 한 일 이 없다고 잡아뗐습니다.

또한 국정 간여 의혹 증거물이 담겨있는 태블릿PC 감정신청을 하는 등 어찌 보면 검찰 기소 자체를 깡그리 무시했습니다. 박 대통령이 헌법 위반 5건· 법률위반 8건의 탄핵사유를 모두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최 씨도 자신의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최순실씨가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형사대법정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첫 재판에 입장해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최순실씨가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형사대법정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첫 재판에 입장해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최 씨는 정말 공판준비기일에 무엇을 얻기 위해 나왔을까요. 혹시 구치소 밖 자기 세력들에게,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누군가에게 몇 마디 말과 행동을 통해 일종의 '작전 지시'를 내리기 위해 나온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귀국 직전 한 매체와의 인터뷰가 그런 의혹을 낳는 것처럼 말입니다.

'태블릿 PC를 훔친 것으로 몰아가라'등의 내용이 담긴 최 씨의 몇몇 녹취록을 감안할 때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농간세력으로 여겨지기에 이런 기우가 결코 기우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국조 청문회 위증 교사 및 공모 의혹까지 불거진 마당에 최 씨 측의 움직임은 일반의 상상을 넘어 선지 오래입니다.

핵심 증거인 태블릿PC를 '장물'로 덧칠하려는 의도는 뻔합니다. 태블릿PC가 증거로 채택되지 않으면 최순실을 비롯한 박 대통령 등의 국정농단은 상당부분 혐의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언젠가는 곪아 터질 사달이었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JTBC가 입수한 태블릿PC에서 촉발됐습니다. 청문회에서 이완영 새누리당 특위위원을 둘러싼 위증 교사 및 공모 논란이 이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 입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제 5차 청문회’에서 안경을 올리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제 5차 청문회’에서 안경을 올리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위증교사 의혹의 중심에 있는 정동춘 K스포츠재단 이사장의 청문회 전후 행태도 많은 의구심을 품게 합니다. 청문회 출석 요구에 응하기 사흘 전인 4일에 이완영 의원을 만나고 다시 9일에 이 의원과 역시 새누리당 특위위원 이만희 최교일 의원 3명을 함께 만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정 이사장은 직원들에게 국조대응 방안 문건을 만들어 나눠주기도 합니다.

가관인 것은 "제3지대가 지금 반기문 유엔 총장을 옹립해 새로운 당을 만드는데 이사장으로서 할 수 있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그가 말했다는 것입니다. 의욕과잉 실언인지, 아니면 속내를 은연 중에 드러낸 발언인지는 모르겠으나 최순실의 K스포츠 재단 이사장이 '반기문 총장'을 운운하는 걸 어떻게 풀이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최순실 일당이 설마 차기 정권 창출을 획책하고 있다는 말은 아니겠지요.

민주당 특위위원인 손혜원 의원은 이런 최 씨측 움직임을 두고 "누군가 친박 국회의원들과 증인들을 조종하면서 국정농단 주범들을 적극 감싸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국정 농단세력을 지금도 옹호하고 비호하는 '설계자' '기획자'가 있을 것이라는 세간의 합리적 의심은 이렇게 새록새록 쌓입니다. 최 씨의 재판 출석도 기획대응의 일환일 수 있다는 겁니다.

22일 열린 국조특위 5차 청문회에 최순실은 "평소의 지병으로 심신이 '회폐'해 있음을 양해해 달라"며 출석을 거부했습니다. 최 씨는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 청문회를 의미풀이가 불가한 말로 여전히 농락하고 있습니다.

국정을 '농단'하고, 국회를 '농락'하고, 국민에게 '농간'을 부리는 최 씨 일당은 아직도 '사설 대통령'과 '사설 청와대'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남자 레이저 눈빛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이런 최순실 일당을 모른다고 강하게 부인하고 있습니다. 눈은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창이라고 하는데, 진실규명에 레이저보다 더 강렬한 눈빛이 필요한가 봅니다.

sunmoon41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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