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취재기] 우병우 父子, 서울 한복판서 찾기 힘든 이유가 있었네
입력: 2016.12.20 18:37 / 수정: 2016.12.22 00:01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잠적 22일 만인 19일 오후 서울 반포동 가족회사 정강 사무실에서 더팩트 카메라에 포착됐다. 정강 사무실 지하주차장에서 포착된 우 전 수석 아들./반포1동=남용희 기자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잠적 22일 만인 19일 오후 서울 반포동 가족회사 '정강' 사무실에서 '더팩트' 카메라에 포착됐다. '정강' 사무실 지하주차장에서 포착된 우 전 수석 아들./반포1동=남용희 기자

[더팩트 | 반포1동=서민지 기자] "또 온다, 경비원. 저분 너무 '열일'하시는 것 아녜요?"

19일 행방불명이라던 우병우(49)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버젓이 서울 강남 한복판에 머물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급히 이동했다. 국회 경위도 못 찾을 만큼 전 국민을 상대로 숨바꼭질하던 우 전 수석이 발견된 그곳은 하루 평균 유동인구 100만 명에 이르는 강남역 교보타워 사거리 인근이었다.

인생은 타이밍. 혹시 우 전 수석을 놓칠까 노심초사하며 서울 서초구 반포1동에 자리한 가족회사 '정강' 건물에 들어섰다. 건물 바로 옆엔 장모 김장자 삼남개발 회장이 운영하는 골프 회사의 이름인 '기흥컨트리클럽'이란 초록색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우병우 가족'의 소유 빌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떡하니 단서도 있고,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길에 위치했지만 그를 '절대' 발견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숨은 공신' 경비원의 '철저한 감시' 때문이다. 이날 우 전 수석을 취재하기 위해 대기하면서 경비원을 무려 13번 마주쳐야 했다. 저녁 시간을 제외하고, 30분 단위로 경비원은 '감시 임무'를 수행했다. 그래서 '숨고, 또 숨어'야했다.

"경비가 삼엄하다"는 선배의 말을 들었기에, 건물에 들어서는 순간 내내 긴장했다. 우 전 수석이 업무를 마치고 차량으로 올 때를 기다려야 해서, 지하 3층으로 내려갔다. 업무를 보는 법무법인 '정강'은 건물 5층에 있다. 곳곳에 설치된 CC(폐쇄회로)TV를 의식하며, 목에 걸고 있던 '국회 출입기자증'도 가방에 넣었다.

우병우 전 수석의 제네시스 차량(맨 왼쪽)이 지하 3층 주차장에 주차돼 있다. 우 전 수석의 차량이 주차된 지하 3층 곳곳엔 CCTV가 설치돼 있으며, 경비원은 30분 단위로 주차된 차량을 확인했다./문병희 기자
우병우 전 수석의 제네시스 차량(맨 왼쪽)이 지하 3층 주차장에 주차돼 있다. 우 전 수석의 차량이 주차된 지하 3층 곳곳엔 CCTV가 설치돼 있으며, 경비원은 30분 단위로 주차된 차량을 확인했다./문병희 기자

최대한 자연스러운 발걸음으로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동시에 선배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네, 아니요로만 대답해. 5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내려갔어. 우 전 수석이 너랑 같이 엘리베이터를 탈 수도 있거든? 같이 있니?"

"아니요." 슬쩍 옆을 돌아봤다. 일단 우 전 수석은 아니었다. 검은 모자에 검은 점퍼를 입은 키 큰 젊은이가 타고 있었다. 우 전 수석을 맞닥뜨리면 '혹시 나한테 레이저를 쏘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이런저런 것을 물어야지'라며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었는데, 그가 아닌 것을 확인하고 마음을 놓았다.

젊은이와 지하 3층에서 함께 내렸다. 대기해 있던 차로 빠르게 이동하고 돌아보니, 젊은이는 우 전 수석의 차인 검은색 제네시스에서 무언가를 찾아 5층으로 다시 올라갔다. '엇! 코너링이 좋다던 그 금수저?'

젊은이는 의경 복무 중 "코너링이 좋아서" 혜택을 받았다는 논란이 불거지면서 이른바 '꽃보직'이란 별명이 붙은 우 전 수석의 아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키가 큰 우 전 수석이라고 할 만큼 쏙 빼닮은 외모였으며 제대했던 당시와 비슷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이때 내려온 우 전 수석의 아들은 자정까지 한 번도 내려오지 않았다.

경비원의 '삼엄한 경비'는 특히 우 전 수석의 '제네시스' 차량이 있는 지하 3층에서 돋보였다. 우 전 수석의 아들이 다시 올라가자마자 경비원은 바로 내려와 제네시스 차량 주변을 점검했다. 일일이 주차된 차량을 확인하고, 혹시 의심 가는 차량은 문을 두드리거나 내부를 살펴봤다.

우병우 전 수석이 최근 의경을 전역한 아들과 법률자문가(변호사)로 보이는 40대 중후반의 남성과 약 10시간에 걸쳐 22일 있을 5차 청문회 예행연습을 하고 있다./문병희·이덕인·남용희 기자
우병우 전 수석이 최근 의경을 전역한 아들과 법률자문가(변호사)로 보이는 40대 중후반의 남성과 약 10시간에 걸쳐 22일 있을 5차 청문회 예행연습을 하고 있다./문병희·이덕인·남용희 기자

주기적으로 내려와 서 있는 차량을 감시했고, 수상해 보이면 곧바로 집요하게 문을 두드리며 "나가달라"고 했다. 때문에 2시간 이상 차문 한 번 못 열고 숨죽여야 했다. 나중엔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1층 골프용품 판매장을 둘러보러 왔다" "2층 필라테스 강습을 받으려 한다" "친구가 장판을 보러왔다" 등의 말을 둘러대기도 했다.

그러나 경비원은 절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지하 3층에서 건물 밖으로 나간 차량도 일일이 확인해 수첩에 적었다. 경비원의 행동이 우 전 수석이 5층에 있다는 '강한 확신'을 줄 정도였다.

아래층은 경비원에게 맡겨놓은 우 전 수석과 그의 아들은 5층 '정강' 사무실에서도 '철통 보안'을 이어갔다. 검찰 건물에서 한 번 사진이 찍혀 곤욕을 치른 만큼 5층 사무실 역시 건물 유리창 전면에 블라인드를 치고, 저녁 식사를 위한 음식물 반입도 일절 하지 않는 등 철저한 모습을 보였다. 오로지 전등 불빛에 의해 청문회를 대비해 예행연습을 하는 희미한 형태만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도 철저했다. 자정이 넘은 시각 우 전 수석 부자는 경비의 경호를 받으며 지하 3층에 있던 차량을 이용해 건물에서 나와 압구정 자택이 아닌 장모인 김장자 회장의 집으로 이동했다. 아무리 100만 명이 드나드는 강남역 한복판에 있다 해도 그를 아무도 마주칠 수밖에 없는 '철저한 코스'다.

어쨌든 우 전 수석은 은둔 생활을 접고, 오는 22일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 출석하겠단 의지를 밝혔다. '숨은 통로'로만 다녔던 그가 공개적인 장소에서 얼굴을 보이며, 입을 떼는 순간이다. 지금, 전 국민의 눈과 귀는 우 전 수석에 집중돼 있다.

mj7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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