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영의 정사신] 국민과 싸우는 대통령, 국가를 대표할 수 있나
입력: 2016.11.22 05:00 / 수정: 2016.11.22 05:00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20일 최순실 씨 등을 구소기소하며 공소장에 박근혜 대통령이 이들과 공모했다고 적시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검찰의 발표에 유감을 나타내며 검찰 수사에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배정한 기자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20일 최순실 씨 등을 구소기소하며 공소장에 박근혜 대통령이 이들과 '공모'했다고 적시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검찰의 발표에 유감을 나타내며 검찰 수사에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배정한 기자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꿈을 꾼다. 매일 꾸는 꿈의 내용도 거의 비슷하다. 같은 내용의 꿈이 시작된 것이 언제부터였는지 생각해봤다. 지난달부터다. 최순실(60)의 국정 농단 의혹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파문이 확산됐던 때부터다.

최 씨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늘 꿈속에 등장한다. 그의 딸 정유라(20)도 늘 꿈에 나타나 숙면을 방해한다. 왜, 이런 꿈을 꿀까. 이들을 취재하면서 실체에 2% 부족해 최 씨 모녀를 놓쳤던 아쉬움 때문인 것 같다. 한 달이 넘은 지금까지도 이들을 둘러싼 수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 속에 들어왔다'는 어느 광고의 유명 카피처럼 최 씨 모녀와 이들을 둘러싼 사람들이 필자의 삶 깊숙이 들어왔다. 삶의 원동력이나 희망을 주는 것이라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그 반대로 짜증과 어이없는 허탈함만 주고 있다.

최 씨 모녀를 둘러싼 파문은 이제 정·재계를 넘어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 박근혜 대통령을 그 정점에 두게 됐다. 20일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최 씨와,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등을 구소기소했다. 그러면서 이들의 공소장에 박근혜 대통령이 '공모'했다고 적시했다. 박 대통령은 이제 참고인이 아닌 피의자로 전환했고, 이번 파문은 박근혜 게이트로 명명됐다.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돼 구속기소된 최순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왼쪽부터). /더팩트DB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돼 구속기소된 최순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왼쪽부터). /더팩트DB

검찰의 발표는 미흡한 부분이 많다. 제3자 뇌물죄를 적시하지 않은 것만 보아도 그렇다. 하지만 이미 국민은 최 씨가 아닌 박 대통령으로 인해 대한민국 국민으로 산다는 것에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 100만 촛불이 광장을 밝히며 '이게 나라냐'라고 묻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통령이라는 지위를 생각해본다. '대통령'의 사전적 의미는 '공화국의 국가원수(國家元首)'이다. 국가원수는 무엇인가. 헌법 66조 1항, 4항은 국가원수를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해 국가를 대표한다'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속한다'고 대통령의 지위를 규정하고 있다.

또, 국제법상으로 국가원수는 외교사절을 신임·접수하고 외국에 대해 자국을 대표한다. 현재 대한민국의 국가원수는 박근혜 대통령이며 외국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자국을 대표하는 얼굴이다.

국민은 대통령과 관련한 외신 보도를 보면서 박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얼굴이라는 것이 부끄럽다고 한다. 하물며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에도 버티기와 모르쇠로 일관하는 모습은 국민을 더욱더 화나게 한다.

심지어 '차라리 탄핵하라'고 정치권을 압박하는 태도는 국민과 정면으로 싸우겠다는 것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그리고 여기엔 임기를 끝까지 채우겠다는 정치 공학적 판단만이 있을 뿐이다. 국회가 탄핵해도 헌법재판소에서 판단이 내려지기까지는 최장 6개월이 소요된다. 그리고 헌재가 탄핵을 어떻게 판단할지도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박 대통령이나 청와대의 태도에는 이런 숨은 의도가 저변에 깔렸음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사람들은 박 대통령의 이런 모습에 "아직도 본인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른다"며 한숨을 내쉰다.

지난 12일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광화문의 2016 민중총궐기 현장.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12일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광화문의 '2016 민중총궐기' 현장. /사진공동취재단

이번 파문을 보면서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이 떠오른다. 사건의 본질과는 다르지만, 대통령의 거짓말 때문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1972년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에 나선 공화당 소속의 닉슨 대통령이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워싱턴 워터게이트 호텔)에 도청 장치를 설치했던 비열한 음모가 드러난 사건이다.

닉슨 대통령은 이후 재판 과정에서 자신이 사건의 배후에 있었다는 점이 밝혀졌음에도 검찰과 의회에 맞섰다. 닉슨은 검찰 수사 당시 '대통령 면책 특권'을 내세우며 테이프 제출도 거부했다. 어떻게든 사태를 모면하려던 닉슨은 담당 검사를 해임하는 강수를 뒀지만, 법무장관이 이에 반발해 사임하면서 '닉슨 탄핵' 여론만 확산시켰다.

여론이 돌아서자 닉슨은 뒤늦게 문제의 테이프를 제출했다. 하지만 테이프는 일부가 삭제됐고, 백악관이 의도적으로 사건을 은폐하려는 정황도 드러났다. 1974년 상원 법사위는 닉슨 탄핵안을 상정했다. 닉슨은 탄핵안의 상원 통과가 확실해지자 사건 발생 2년여 만인 8월 9일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그야말로 불명예 퇴진이다.

2016년 11월 대한민국 국민은 42년 전 닉슨 대통령이 보였던 과정을 고스란히 겪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닉슨은 자신의 범죄 사실을 국민에게 솔직하게 고백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거짓으로 일관했다. 그 결과는 자진사퇴라는 불명예였다.

현재 많은 국민은 박 대통령에 진실을 요구한다. 국민이 박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은 악어가 먹이를 먹으며 눈물을 흘리는 '악어의 눈물'이 아니다. 진실의 눈물이다. 박 대통령의 통렬한 자기반성과 사과다. '버티면 된다'는 식의 박 대통령과 청와대 태도의 말로는 닉슨 대통령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음을 왜 모를까.

cuba2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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