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이슈] 세월호 참사와 대통령의 7시간 의혹
입력: 2016.11.17 14:52 / 수정: 2016.11.17 17:46

세월호 참사 대통령의 7시간 의혹 증폭. 세월호 참사 대통령의 7시간 의혹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더팩트DB
세월호 참사 대통령의 7시간 의혹 증폭. 세월호 참사 대통령의 7시간 의혹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더팩트DB

[더팩트ㅣ박대웅 기자]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이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촉발된 국정 혼란의 중요한 뇌관으로 주목 받고 있다.

지난 12일 전국 곳곳에서 모인 촛불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과 최순실 국정 개입 농단 사건의 철저한 진실 규명을 요구했다. 동시에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는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적에 대한 명쾌한 해명도 촉구했다.

숱한 뒷말을 남기고 있는 세월호 참사 대통령의 7시간을 되짚어 봤다.

2014년 4월16일 오전 8시49분.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다는 최초 신고가 접수됐다. 이어 오전 9시35분 해경이 사고 현장에 도착했을 무렵 세월호는 이미 45도 정도 기울어진 상태였다.

오전 9시45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가 가동됐고, 오전 10시 중대본의 1차 공식 브리핑이 진행했다. 중대본은 '세월호 476명 승선,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 탑승'이라고 밝혔다. 동시에 사고 발생 1시간 11분 만에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첫 서면 보고가 진행됐고, 이 시각 세월호 선내는 물이 차오르고 90도 가까이 기울었다.

선체가 90도로 기운 오전 10시13분 해경은 세월호 선체에서 철수했고, 오전 10시15분 유선 보고를 진행했다. 해경은 유선 보고에서 '세월호가 90도 기울어지고 좌현이 물에 잠겼다. 승무원 말을 들어보니 학생이 한 200~300명 탔는데 많이 못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이 시각 박근혜 대통령의 첫 번째 지시가 하달된다. 그는 "단 한 명의 인명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모든 노력을 다해 탑승자를 구조하라고 지시했지만 이후 7시간여 동안의 행적이 베일에 싸여 있다. /청와대 제공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모든 노력을 다해 탑승자를 구조하라'고 지시했지만 이후 7시간여 동안의 행적이 베일에 싸여 있다. /청와대 제공

오전 10시15분 박근혜 대통령은 첫 번째 서면 보고에 이은 두 번째 유선 보고를 받았고 그로부터 7분 만인 오전 10시22분 세 번째 유선 보고를 받았다. 이어 세 번째 보고를 받고 8분 뒤인 오전 10시30분 해경청장에게 직접 두 번째 지시를 내린다.

박근혜 대통령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인력과 장비, 또 인근의 모든 구조 선박까지 신속하게 총동원해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 해경 특공대도 투입해서 여객선의 선실 구석구석에 남아 있는 사람이 없는지 확인해서 단 한 사람의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오전 10시30분 박근혜 대통령의 두 번째 지시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중대본에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모두 14차례의 보고가 있었지만 아무런 지시도 내려지지 않았다.

대신 중대본은 부정확한 공식 브리핑으로 혼란만 키웠다.

오전 11시30분 중대본은 2차 공식 브리핑에서 '세월호 161명 구조'라고 했다. 이어 낮 12시11분 3차 브리핑에서 '세월호 179명 구조'라고 밝혔다. 오후 2시 4차 공식 브리핑에서는 '여객선 사실상 침몰'이라고 했고, 오후 4시30분 5차 브리핑에서 '탑승자 459명 재확인, 구조 164명, 사망 3명, 실종 292명'이라고 밝혔다.

오후 5시15분 박근혜 대통령이 중대본을 방문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첫 마디는 "다 그렇게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힙듭니까?"였다. 중대본의 보고 내용은 물론 실시간으로 전해지던 언론의 보도 내용조차 확인하지 않은 셈이다.

세월호 참사는 탑승자 476명 중 구조 172명, 사망 295명, 미수습 9명이라는 끔찍한 참사로 남았다.

전원구조라는 세월호 참사 초기 보도와 달리 세월호 참사는 탑승자 476명 중 172명이 구조되고 295명이 사망, 미수습 9명이라는 역대급 참사로 남았다. /더팩트DB
전원구조라는 세월호 참사 초기 보도와 달리 세월호 참사는 탑승자 476명 중 172명이 구조되고 295명이 사망, 미수습 9명이라는 역대급 참사로 남았다. /더팩트DB

박근혜 대통령은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5시15분까지 급박한 상황에서 왜 대면 보고를 받지 않았을까? '세월호 참사 대통령의 7시간' 의혹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눈덩이처럼 불거졌다.

특히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 2014년 7월7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에서 만났느냐'는 질문에 "세월호 사고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소재를 모른다"고 말하면서 '세월호 참사 대통령의 7시간' 의혹은 일파만파 커졌다.

박영선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께서 집무실에 계셨습니까?"라고 물었고, 김기춘 실장은 "위치에 대해서는 제가 알지 못합니다"고 답했다. 박영선 의원은 "비서실장이 모르시면 누가 압니까?"라고 재차 물었고, 김기춘 실장은 "일일이 일거수일투족을 다 아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박영선 의원은 "대통령이 이날 일정이 없었던 것으로 저희가 알고 있는데요, 집무실에 안 계셨다는 이야기지요, 지금?"이라고 캐물었고, 김기춘 실장은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항변했다. 이에 박영선 의원은 "집무실에 계신데 왜 서면보고를 하나요?"라고 말했고, 김기춘 실장은 "집무실도 좀 떨어져 있기 때문에 저희들이 서면으로 많이 올립니다"라고 해명했다.

윤후덕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사고가 확인된 상태에서 대통령님은 어디 계셨어요? 집무실에 계셨어요, 아니면 관저에 계셨어요?"라고 물었고, 김기춘 실장은 "그것은 제가 알지 못합니다"라고 말해 '세월호 참사 7시간 대통령 행적'이 도마 위에 올랐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의 행적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더팩트DB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의 행적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더팩트DB

여기에 2014년 8월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이었던 가토 다쓰야는 칼럼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시 최순실의 남편 정윤회를 만났다고 보도했다. 결국 가토 전 지국장은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가 무죄판결을 받았다.

당시 대통령 경호실이 제출한 '출입기록 확인요청 답변 공문'에 따르면 정윤회는 2014년 4월16일 청와대에 출입한 기록이 없다. 청와대는 당시 이런 증거 자료를 제시하며 의혹을 일축했다.

하지만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후 최순실이 출입 기록을 남기지 않고 청와대를 수시로 출입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출입 기록이 없다'는 청와대 해명에 의문부호가 따라붙고 있다.

여기에 참사 직후 퍼진 '청와대 굿판설' 또한 재조명 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참사 당일 최태민의 사망 20주기를 앞두고 청와대에서 천도재를 지냈다는 풍문이다.

'성형 시술설'도 등장했다. 최순실이 정기적으로 다닌 병원의 의사가 청와대까지 들어가 성형시술을 했다는 것으로 회복까지 7시간 정도 소요된다는 언론 보도가 더해지며 의혹이 깊어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4일 대국민담화에서 "청와대에서 굿을 했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또 지난 11일 청와대는 "박근혜 대통령이 성형 시술을 받았다는 주장은 전혀 근거 없는 유언비어"라고 일축했다.

bdu@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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