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프랑크푸르트(독일)=이철영·이효균 기자] 거대한 벽에 가로막힌 기분이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최순실(60) 씨, 정유라(20) 모녀를 찾아 나선 10박 11일의 여정은 그야말로 갈등과 인내의 연속이었다. 흔적이 보일 때는 희망을 가졌지만 막상 수소문해서 의심 장소를 찾아가면 신기루처럼 잡히지 않았다. 또, 모녀가 프랑크푸르트 인근에서 만든 성의 공고함을 절실히 느꼈다.
힘들게 찾은 곳에 그들은 없었고 희미한 흔적조차 그들은 지워갔다. 어쩌면 당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이곳에 자신들만의 성을 쌓았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취재진이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것은 아니다. 최 씨 모녀의 단골 가게를 찾았고, 현지에서 이들을 돕는 조력자가 있다는 것도 두 눈으로 확인했다.
취재진은 지난 24일(현지 시간) 프랑크푸르트 인근 밧홈부르크(Bad Homburg)의 R 승마용품점을 찾았다. 최 씨 모녀가 자주 찾던 가게였다. R 승마용품점에는 승마 장갑부터 안장까지 말과 기수에 관한 모든 것을 판매했다. 가격도 수십 유로에서 몇 천 유로까지 천차만별이었다.

R 매장 관계자들은 "6주 전으로 기억한다"면서 "나이든 여성과 젊은 여성 그리고 한국인 남성 두 명이 함께 왔었다. 특히 젊은 여성은 같이 온 남성과 남매로 보였다"고 말했다.
최 씨 모녀가 상점에서 어떤 물건을 구매했는지를 묻자 "엄청 많이 구매해서 무엇 무엇을 샀는지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당시 같이 온 사람 중에 체격이 좋은 남성은 점퍼를 구매했다. 큰 옷이었음에도 맞지 않았는데 구매해서 기억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나이든 사람과 젊은 여성이 함께 올 때는 항상 현금으로 계산했다"는 대답에서 이들이 상당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취재진은 매장 관계자들을 통해 최 씨 모녀의 행적을 물었지만 "알지 못한다"는 대답과 함께 "고객 프라이버시"가 전부였다. 또다시 최순실 씨로 향하는 걸음이 멈춰 섰다. 최 씨 모녀를 찾아가는 길은 끊기거나 막혀있었다. 그나마 희망으로 생각했던 부분은 있었다. 모녀의 독일 통역사이면서 비덱 호텔과 관련해 일했던 한국인 여성 교포다.
이 여성을 찾는다면 최 씨 모녀를 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최 씨가 독일에 법인을 만들 당시 도왔던 박승관 변호사도 만났다. 하지만 취재진은 박 변호사를 만나면서 이 사람에겐 얻을 수 있는 것이 전무하다는 것을 알았다. 교포 2세인 박 변호사는 독일인이나 마찬가지로 고객정보 보호에 철저했다.

한국인 교포와 관련된 정보는 어느 정도 있었다. 그가 나온 대학, 독일에서 나온 대학과 전공 그리고 현재 7~8세의 아들이 함께 살고 있고, 교회에도 열심히 다닌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많은 언론이 이 여성을 찾기 위해 나섰다. 집도 찾아가고 전화도 해보았지만, 그녀 역시 최 씨 모녀와 함께 종적을 감췄다.
교회에서 만난 이들은 빨리 그녀가 돌아오길 바랐다. 한 교인은 "올해 여름부터 최 씨의 일을 도왔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그분이 최 씨가 이렇게 엄청나게 어마무시한 일을 벌였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비자 문제가 있어 직장을 구했는데 공교롭게도 그곳이 최 씨와 관련된 일이었다. 교인들도 몰랐다. 교인들도 그분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연락이 닿지 않는다. 너무 걱정된다. 그분은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피해자"라고 강조했다.
취재는 또 그렇게 멈춰버렸다. 나오는 건 한숨과 쉼 없이 달려온 탓에 밀려오는 피로감이었다. 최 씨 모녀의 행적이 묘연해질수록 취재진의 전투력도 조금씩 떨어졌다. 이제 또 어디서 이들을 찾아야할지 막막해지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문득 독일 현지인에게서 들었던 승마장 두 곳이 떠올랐다. 최 씨 모녀 측근들의 차량 번호가 등록된 지명이 독일 현지인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취재진은 프랑크푸르트에서 북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이 지역을 3일에 걸쳐 샅샅이 뒤졌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3일을 그렇게 보냈다. 인근 승마장도 모두 확인했다. 취재진은 여전히 이곳을 의심지역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최 씨 모녀의 행방은 어디에도 없었다. 독일 현지인이 알려준 한 곳이 남았다. 취재진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26일 슈미텐에서 약 9km 떨어진 노이안슈파흐 뷘터뮬레 승마장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혹시나 모녀의 흔적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랐다.
찾아간 뷘터뮬레 승마장. 이곳 관계자들은 최 씨 모녀를 명확히 기억했다. 하지만 모녀가 찾은 시기는 지난해 8월이었다. 이들은 최 씨도 정 씨도 사진을 보여주기도 전에 알았다. 한국인이라는 점과 말이 네 마리나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최 씨 모녀가 한국인 남녀와 함께 왔다고 했다. 코치는 독일인이었지만 정 씨 코치로 알려진 크리스티안 캄플라데는 아니었다. 이들은 정 씨의 말이 지난해 8월 한 달 동안 이곳에 보관되다 이후 두 곳을 더 거쳐 리더바흐 호프구트 승마장으로 간 것까지 알고 있었다. 이후의 최 씨 모녀의 말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알지 못했다.
독일 현지를 취재하는 도중 국내 종합편성 채널 JTBC의 보도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최 씨 소유의 태블릿PC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관련한 수많은 자료를 확보해 보도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탄핵과 하야 등이 검색어에 올랐다. 취재진의 마음이 급해지고 있는 가운데 '세계일보'에서 최 씨의 단독 인터뷰 기사가 나왔다. 그토록 찾기 위해 잠을 잊을 채 취재한 것이 순간 물거품이 된 것 같아 자괴감이 밀려왔다.

그동안 최 씨 모녀의 행방을 취재하기 위해 독일을 찾은 많은 매체의 기자들 역시 그랬을 것이다. 인터뷰 내용을 봤다. 하지만 최 씨는 모든 것을 부정했다. 태블릿PC도 자기 것이 아니라고 했다. 고스란히 셀카까지 남아있음에도 말이다.
최 씨 모녀는 박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활동하며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일들을 벌여온 의혹을 사고 있다. 사실로 확인되면 그것이 개인의 신의든 아니든 상관없이 대한민국 국민을 우롱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최 씨 모녀는 여전히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있다. 국정 농단 논란에도 외국으로 나와 종적을 감춘 모녀와 달리 국내에서는 드디어 대통령 하야 시위까지 벌어졌다.
결국 국민의 분노를 견디지 못한 최순실 씨는 30일 오전 전격 귀국했다. 독일이 아니라 영국 런던을 통해서였다. 세계일보 단독 인터뷰 장소가 독일이 아니라는 의혹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귀국 비행기를 탄 장소 또한 의문을 자아냈다. 취재진도 이날 오전 프랑크푸르트발 비행기로 귀국했다. 운이 따랐다면 공항에서도 마주칠 수 있었지만 그런 우연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취재는 이제 시작이다. 의혹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지금부터가 취재의 시작이다. 그들이 법의 처벌을 받을 때 비로소 취재는 끝이 날 것이기 때문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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