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지의 폴리뷰] '최순실발 아노미', 농락당한 가슴을 메울 수 없다
입력: 2016.10.30 05:00 / 수정: 2016.10.30 05:00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346회 국회 10차 본회의에 참석해 2017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정부의 시정연설을 마친 뒤 최순실 게이트 의혹에 관한 피켓을 지나치고 있다./배정한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346회 국회 10차 본회의에 참석해 2017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정부의 시정연설을 마친 뒤 최순실 게이트 의혹에 관한 피켓을 지나치고 있다./배정한 기자

[더팩트 | 서민지 기자] 이번 주에는 "분하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집에서, 회사에서, 국회에서, 커피숍에서, 지하철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까지도 모두 '최순실'을 입에 올리며 혀를 찼다.

본격적으로 최순실 씨의 비선실세 의혹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설마'하며 우려했던 일들이 현실로 나타나 우리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최순실 씨가 국정 전반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하나둘씩 드러나면서 우리 사회는 '아노미(사회적 규범의 동요·이완·붕괴 등에 의하여 일어나는 혼돈)' 상태가 됐다. 특히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는 일선에서 정치 현장을 누비는 취재진에겐 사사건건 충격으로 다가왔다.

지난 24일 JTBC가 최순실의 태블릿PC에 관련한 것들을 보도한 다음 날인 25일 동료 기자들과 점심 식사를 마친 뒤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단연 대화 주제는 '최순실'이었다.

최순실 씨가 지난 27일 독일 헤센주 한 호텔에서 세계일보 기자와 인터뷰하는 장면./세계일보 제공
최순실 씨가 지난 27일 독일 헤센주 한 호텔에서 세계일보 기자와 인터뷰하는 장면./세계일보 제공

"하. 언시(언론고시) 준비할 때 논술 공부하면서 '드레스덴 선언' 분석하고 외웠는데. 그게 최순실이 쓴 거라고 생각하니까 열받잖아. 뭘 한거냐 진짜."

다들 "맞아. 나도 공부했어. 그것 뿐만이 아니야. '혼이 비정상'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준다' 이제야 다 이해가 되지 않아?"라며 참석자들 모두 공감했다. '드레스덴 선언문'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14년 3월 27일 독일 드레스덴 공대에서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구상'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대북 원칙으로, 당시 박 대통령은 "한마디로 '통일은 대박'"이라고 밝히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드레스덴 선언'은 박근혜 정부의 국정 철학이 가장 잘 녹아있다는 평가를 받았고,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씩 짚고 넘어가는 연설문이 됐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이 연설을 하기 하루 전 최순실 씨가 사전 원고를 받아보고, 붉은 글씨로 수정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배신감'을 느낀 것이다.

지난 6월 13일 이란 방문 때와 같은 디자인의 옷을 입고 20대 국회 개원식의 개원연설을 한 박근혜 대통령./임영무 기자
지난 6월 13일 이란 방문 때와 같은 디자인의 옷을 입고 20대 국회 개원식의 개원연설을 한 박근혜 대통령./임영무 기자

다음 날 국회에서 타 매체 선배를 만났다. 화두는 역시 '최순실'이었다. 선배는 박 대통령의 '패션 정치'를 주제로 보도했던 당시를 떠올렸다.

전날(26일) TV조선 '뉴스쇼판'에서 최순실 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해외순방 등 공식석상 의상에 깊이 관여했다는 보도를 한 뒤였다. TV조선은 최순실 씨가 신사동의 한 빌딩에서 윤전추 청와대 행정관과 박 대통령의 패션에 개입하는 장면이 담긴 영상을 공개했다.

"패션 정치? 나 몇 번이나 취재하고, 보도했거든. 그게 다 최순실 작품이었다니. 농락 당한 기분이야. 취재에 협조해 준 패션전문가들도 지금 참 어이없을 거야.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세상 참 부질없다니까."

박 대통령 취임 이후 '패션 정치'에 대한 기사들은 쏟아졌다. 가깝게는 지난 5월 '이란 순방 패션'은 화제였다. 분홍색 재킷과 회색 바지 차림에 흰색 루사리를 매치한 박 대통령의 패션은 연일 주목됐고, 수많은 언론은 "이란 국기 패션이다" "패션 외교의 정석" 등 의미를 붙여 보도했다. 같은 발제를 하고, 실제 기사를 작성한 바 있었기에 고개가 끄덕여졌고 허탈했다.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시민들이 지난 27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파이낸스 센터 앞에서 이게 나라냐? 박근혜는 하야하라! 국민 저항의 날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임세준 인턴기자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시민들이 지난 27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파이낸스 센터 앞에서 '이게 나라냐? 박근혜는 하야하라! 국민 저항의 날'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임세준 인턴기자

같은 날 퇴근길. 지하철 곳곳에선 "최순실" 이야기가 들렸다. 그 가운데 한 모녀의 대화가 인상 깊었다. 딸이 엄마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고, 엄마는 한숨을 지었다. "엄마가 뽑았잖아. 박 대통령. 내가 그렇게 뽑지 말자고 했는데."

이처럼 현재는 의혹으로 불리는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은 우리사회 전반에 깊숙이 자리하며 국민들을 허탈하게 하고 있다. 국민들은 배신감과 분노에 치를 떨고 있다. 그동안 힘들었던 설움이 '최순실' 하나로 정리되는 상황에 국민의 자존심은 상했다. 국민의 분노는 곧장 박 대통령의 지지율에서도 드러난다.

여론조사 전문업체 '한국갤럽'이 지난 25일부터 사흘간 전국 성인 1033명을 대상으로 벌여 28일 발표한 10월 넷째주 주간 정례 조사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취임 후 최저치인 17%로 떨어졌다.

박 대통령은 국정운영의 최고책임자로서 도덕적 권위와 정당성을 완전히 상실한 셈이다. 민심의 분노지수가 임계점을 넘겼다. 박 대통령은 성난 민심을 직시해야 한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걷잡을 수 없이 터지는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이 난국을 헤쳐나가기 위해 박 대통령은 어떤 결정을 할 것인가. 국민은 박 대통령의 입을 바라보고 있다.

mj7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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