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은 맹탕 국감 성적표를 받으면서도 또다시 색깔론을 놓고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민생은 뒷전으로 한 채 내로남불에만 치중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지난 12일 서울 안국동에서 삼청동으로 오르는 골목에서 존 레넌의 '이매진(Imagine)'을 부르는 청년 모습. /이철영 기자 |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Imagine there's no heaven, It's easy if you try, No hell below us, Above us only sky,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for today(천국이 없는 곳을 상상해봐요. 당신이 마음만 먹는다면 정말 쉬운 일이에요. 우리 아래에는 지옥이 없고, 우리 위에는 하늘만 존재하죠. 모든 사람이 오늘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해봐요).
지난 12일 초가을 밤 서울 안국동에서 삼청동으로 오르는 골목에서 귀에 익숙한 존 레넌의 '이매진(Imagine)'이 들렸다. 퇴근 시간대를 훌쩍 넘겨 사람들의 발길은 적었고, 그마저 지나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빨랐다. 들려오는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가로등 빛을 조명 삼아 20대 초반의 한 청년이 제법 서늘한 가을 공기를 맞으며 통기타를 치며 고독하게 노래를 불렀다. 아마도 이 청년은 가수가 꿈이고, 그 힘든 길의 출발점으로 불특정 다수를 관객으로 홀로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보였다.
가던 길을 멈추고 이 청년의 무료 공연이 끝날 때까지 귀를 기울였다. 관객이라면 필자를 포함해 세 명에 불과했다. 이 청년의 공연은 약 30분 정도로 짧았다. 그는 다섯 곡을 불렀고, 관객을 향해 노래 제목을 알려주었고, 곡이 끝날 때마다 "고맙습니다"라며 감사를 표했다.
단 세 명의 관객 앞에서도 열정적으로 노래를 부르는 청년의 모습을 보며 "멋지다. 그리고 잘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나라가, 그리고 정치가 제대로 될 때 거리의 청년들이나 고시원의 청년들이,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이 자신의 꿈을 펼칠 기회를 더욱더 많이 갖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정치 현실은 어떤가. 거리의 청년은 물론 자신의 위치에서 안간힘을 쓰는 청년들의 미래에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여야를 막론하고 '민생'과 '청년 실업'을 말하지만, 정작 정쟁만 일삼고 있기 때문이다.
20대 국회 첫 국정감사는 여당인 새누리당이 보이콧을 선언하며 파행으로 시작했다. 이후 여당이 국감에 복귀했지만, 미르·K스포츠재단을 놓고 여야가 대치하며 '맹탕 국감'이라는 지적이다. 사진은 텅빈 국회 상임위. /서민지 기자 |
여당의 보이콧으로 시작한 국정감사는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의혹 당사자인 최순실 씨와 차은택 씨, 미르·K스포츠재단 문제를 놓고 여야가 설전을 벌이며 사실상 맹탕으로 끝났다고 할 수 있다. '국감을 왜 하느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닌 상황이다.
그런데 맹탕 국감 지적이 무색해지게 이번에는 '색깔론'이 대두했다. 이른바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현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 회고록 논란'이다. 송 전 장관은 회고록에서 '노무현정부 시절인 지난 2007년 UN 북한 인권문제 규탄결의안 표결을 앞두고 북한의 의견을 먼저 들었다'고 기술했다. 송 전 장관은 이 과정에서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개입했다고 했다.
여당은 이정현 대표까지 나서서 "문 전 대표가 북한과 내통한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야권은 "새누리당이 청와대 비선 실세 의혹과 대통령 측근 비리를 덮고자 색깔론을 펴고 있다"고 맞서며 또다시 강 대 강 대치로 치닫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정진석 원내대표는 17일 "국정조사, 국회청문회, 특검, 검찰수사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 그 진상을 철저히 밝히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만약 문 전 대표의 당시 발언에 의혹이 있다면 정 원내대표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다만, 정 원내대표나 새누리당이 이 문제에 관한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위해서는 지난 2002년에 박근혜 당시 미래한국연합 대표가 김정일 위원장과 만나 단독으로 한 4시간의 비공개 회동의 내용도 공개하겠다는 전제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최근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 회고록 논란'에 휩싸였다. 여당은 이정현 대표까지 나서서 "문 전 대표가 북한과 내통한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했고, 야권은 "새누리당이 청와대 비선 실세 의혹과 대통령 측근 비리를 덮고자 색깔론을 펴고 있다"고 맞서고 있다. /이새롬 기자 |
문 전 대표의 당시 발언의 진위를 가리겠다는 새누리당이나 박 대통령의 2002년 김정일 위원장과의 4시간 비공개 회동을 밝혀야 한다는 야당의 행태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전형으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여야가 이렇게 밝히지도 못할 내용을 놓고 소모전만 하고 있으니 국민이 어디서 '희망'을 얻을 수 있겠는가.
밝히지도 못할 정쟁만 일삼으며 정작 받는 세비의 값어치도 온전히 하지 않는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 시선을 생각이나 할까. 차가운 가을밤에 들어주는 관객이 없음에도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청년, 취업을 위해 오늘도 수십 곳에 이력서를 넣는 청년들이 우리의 미래다.
존 레넌의 이매진은 1971년 베트남 전쟁에서 수많은 젊은이가 소중한 목숨을 잃어가는 소식을 듣고 비행기 안에서 즉흥적으로 쓴 가사로 알려진다. 노래 가사는 현실적이라기보다 이상적이다. 그는 전쟁으로 인해 죽어가는 사람이 없는 세상과 그로 인한 세상의 평화를 '상상'하자고 했다.
가을밤 홀로 노래를 부르는 청년을 보며 반세기 전 존 레넌이 '이매진'을 부른 이유와 현재 우리 청년들의 현실을 생각했다. '4포 세대' '헬조선'으로 대변되는 우리의 많은 젊은이들은 취업 전쟁 중이다. 생존을 놓고 말이다. 이런 청년들이 민생은 내팽개친 채 정쟁만 일삼는 정치에서 희망 있는 내일을 상상(Imagine)이나 할 수 있을까. 가을밤 그 청년에게 바람은 더없이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