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지의 폴리뷰] 백선하 교수의 '병사' 소신, 그의 치즈는 무엇인가
입력: 2016.10.16 05:00 / 수정: 2016.10.16 05:00

서울대병원을 상대로 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고 백남기 씨의 사망진단서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사진은 지난 11일 국회 교문위에 출석해 증인 선서를 하는 백선하 서울대병원 교수./배정한 기자
서울대병원을 상대로 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고 백남기 씨'의 사망진단서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사진은 지난 11일 국회 교문위에 출석해 증인 선서를 하는 백선하 서울대병원 교수./배정한 기자

[더팩트 | 서민지 기자] "우리는 이 치즈를 먹을 만한 자격이 있어. 이 치즈를 찾기 위해 오랫동안 열심히 일했거든."

우리들은 나름대로 자신만의 '치즈'를 마음 속에 두고 그것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그것이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토록 갈구하던 '치즈'를 얻게 되면 그것에 집착하고 얽매이게 된다. 작가 스펜서 존슨은 '누가 내치즈를 옮겼을까?'라는 책에서 '치즈'를 통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의 모습을 제시한다.

지난 11일 서울대병원을 상대로 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 취재에서 오래 전에 읽었던 이 책이 생각났다. 이날은 '고 백남기 씨'의 사망진단서가 도마에 올랐다. 백 씨의 사인이 '병사'냐 '외인사'냐를 두고 공방전이 벌어진 것이다.

백 씨는 지난해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뇌출혈로 쓰러졌고, 곧바로 구급차로 서울대학교병원으로 이송돼 서울대병원에서 뇌수술을 받았다. 뇌수술 후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고, 그 과정에서 합병증으로 '심부전증'이 발생해 연명치료를 하다 317일 만에 사망했다. 야당은 사인을 기존에 갖고 있던 질병 때문이 아니라, 물대포 살수행위(외상에 의한 합병증) 때문이라 주장했고, 사망진단서에 '병사'로 쓰게 된 '이유'를 집중 추궁했다.

"병사(病死)라는 확신을 갖고, 소신껏 썼다. 양심에 거리낄 것이 없다. 진단서를 바꿀 생각이 없다."

그러나 백 씨의 주치의 백선하 서울대병원 교수는 당당했다. 백 교수는 "317일 동안 환자를 지켜본 주치의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특히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우리나라에서 최고 신경외과 전문의지만 법의학 지식이 부족하니까 오류가 있었다고 보면 되지 않나" "'병사' 결정은 누구와 함께 결정했나" "진료 부원장과 상의했나" 등을 묻자, "제가 판단해서 제가 결정했다"고 연달아 세 번 같은 소리를 단호하게 말하기도 했다. '외압'이 없었단 점을 강조한 것이다.

사진은 지난 11일 신동근 더민주 의원이 고 백남기 씨의 주치의인 서울대학교 백선하 교수에게 질문을 하는 모습./배정한 기자
사진은 지난 11일 신동근 더민주 의원이 고 백남기 씨의 주치의인 서울대학교 백선하 교수에게 질문을 하는 모습./배정한 기자

또, 자신의 의견을 뒷받침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해온 것 같았다. 본인의 입장을 정리한 성명서와 일반 환자와 백 씨의 급성경막하출혈환자 CT를 일일이 붙인 판넬도 준비했다. 그는 자리에 앉아 판넬의 순서를 수시로 확인하는 철저한 모습도 보였다.

이렇게 당당하고 철저했던 그도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힘들어 보였다. 새누리당 의원의 배려로 여유있게 본인의 소견을 설명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는데, 이때 야당 의원들이 재촉을 하자 수 차례 세어보았던 판넬을 확인하며 손을 바들바들 떨었다. 몇몇 의원들이 "많이 힘드시죠?"라고 묻자, "네, 힘듭니다"라고 답했다.

사망진단서는 의료법에 따라 '주치의'에게 전권을 주는 만큼 그 책임도 주치의에게 주어진다. 때문에 서울대병원장도 이날 권한과 동시에 책임을 주치의에게 돌렸다. 국민적 관심사가 된 백 씨 사망진단서 책임은 온전히 백 교수가 떠안게 됐다.

"고 백남기 환자는 급성신부전증의 합병증인 고칼륨혈증에 의해, 꼭 받아야할 치료를 받지 못해 심장정지가 왔으며 이런 이유로 직접적 사망원인으로 심폐정지, 선행사의는 급성신부전, 원사인으로 급성경막하출혈로 기술했고 사망의 종류를 병사로 기술했다."

여야 의원들의 질의를 보며 물을 마시는 백 교수./배정한 기자
여야 의원들의 질의를 보며 물을 마시는 백 교수./배정한 기자

그는 "왜 '병사'로 썼냐"는 질문에 같은 말을 반복했고, 이것이 주치의로서 자신의 소신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동료, 선후배, 심지어 스승까지도 '외인사'라고 주장을 하며 백 교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는데도 말이다.

그의 법의학 스승인 이윤성 대한의학회장(서울대병원 백남기 사건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은 "백 교수가 사망진단서 작성 지침을 숙지했다고 하는데 제가 보기엔 잘 모르고 있다. 그래서 오류를 저지른 것으로 판단한다"면서 "연명의료와 무관하게 사망 원인은 선행 원사인에 따라 결정해야하는 것"이라고 못박았다.

백 교수보다 1년 선배이며, 서울대 의대 출신(80학번)인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는 "이미 서울대 의대 학생들, 동문의사들, 의사협회를 비롯해 이윤성 특위위원장, 성상철 건강보험이사장 등 절대 다수의 의사가 병사가 아니라 외인사로 판단하고 있다. 많은 전문가 절대다수가 의견일치를 본다면 그 의견이 맞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성엽 교문위원장은 지난 13일 PBC 라디오에 출연해 이날의 백 교수를 "혼자만 소신이라는 데 그게 과연 진정한 소신이냐. 제가 보기에는 고집이고 아집이라고 보인다. 물대포에 맞고 쓰러져 한 번도 의식을 찾지 못하고 돌아가신 분이 병사로 돌아가셨다? 이건 뭐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는 일 아닌가. 어느 국민이 그것을 받아들이겠나"라고 강조했다.

지난 11일 국감에서 의원의 질의에 답하는 백 교수. 그의 오른쪽으로 백 교수의 스승이자 법의학자인 이윤성 대한의학회장의 물을 마시는 모습./배정한 기자
지난 11일 국감에서 의원의 질의에 답하는 백 교수. 그의 오른쪽으로 백 교수의 스승이자 법의학자인 이윤성 대한의학회장의 물을 마시는 모습./배정한 기자

국감장에서 나오는 일련의 대화들을 들으면서, 과연 '어떤 것이 백 교수로 하여금 '병사'라고 쓰게 했을까. 왜 그는 무거운 짐을 홀로 지게 됐을까. 도대체 그의 치즈는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가 지키려고 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는 그것이 자신의 '소신'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유 위원장처럼 많은 사람들이 '소신'때문에 이 모든 것을 감당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으며, 일각에선 '외압' 의혹을 제기한다. 백 교수 말대로 그것이 '소신'이라 한 데도 그의 스승 조차 '소신'을 꺾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저자 존슨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의 모습에 대해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가장 빠르게 변화하는 길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비웃을 줄 아는 것이다. 과거의 사고방식은 우리를 치즈가 있는 곳으로 인도하지 않는다. 치즈냄새를 자주 맡아보면 치즈가 상해가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새로운 방향으로 움직이는 건 새 치즈를 찾는 데 도움이 된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움직이면 마음이 홀가분해진다"고 말한다.

백 교수는 혹시 본인이 '상한 치즈'를 열심히 찾아 헤매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하는 것 아닐까. 물론 백 교수의 '진짜 치즈'는 그 자신만이 알겠지만 말이다.

mj7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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