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위원들에게 김밥이라도 먹을 시간 줘야!" 정진석(단상 가운데)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지난달 23일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질문 도중 "국무위원들 밥을 먹여야 한다"며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항의하는 모습./더팩트 DB |
20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우여곡절 끝에 4일부터 정상화됐습니다. 제 기능을 상실했던 국회가 '지각 국감'의 비판을 딛고 얼마나 내실 있는 국감을 하고 있을까요. 국감이 진행되면 될수록 국회를 향한 시선만 더욱 더 차가워지고 있습니다. 국민적 관심을 끌고 있는 미르·K스포츠 재단만 해도 여야의 충돌로 단 한 명의 핵심 증인도 신청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팩트> 정치팀은 여의도 정가를 취재한 기자들의 '방담'을 통해 한 주간 이슈를 둘러싼 뒷이야기와 정치권의 속마음을 다루는 [TF주간 정담(政談)]코너를 진행합니다. 국회에 출입하고 있는 이철영·임영무·오경희·신진환·서민지 기자가 참석했고, 명재곤 부국장과 박종권 편집위원이 사회를 맡았습니다. [TF주간 정담(政談)]은 현장에서 발품을 파는 취재 기자들이 전하는 생생한 가십 모음입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정리=신진환 기자] 얼어붙었던 정국이 지난 4일 풀렸습니다. 야당 단독으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에 반발한 새누리당이 4일 국정감사에 전격 복귀했습니다. 하지만 여야가 국감에서 청와대 비선실세 개입 의혹이 있는 '미르·K스포츠재단' 문제와 증인 채택 문제 등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답답한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대권 잠룡'들의 큰 움직임이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야권 내 유력 대권 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싱크탱크가 6일 닻을 올렸습니다. 문 전 대표가 보폭을 넓히면서 대권을 겨냥했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내실은 별로 없었던 국감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 미르·K스포츠재단에 발목 잡힌 국감
여야,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 격돌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서울시교육청 등 8개 시·도 교육청에 대한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국정감사가 열린 가운데 K스포츠와 미르재단 증인 신청을 두고 여야가 의견 대립하며 국감이 중단된 모습./남윤호 기자 |
-여야가 공전을 거듭해온 국감이 지난 4일부터 열리고 있습니다. 16개 상임위 가운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가장 주목받았는데요. 이번 국감에서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미르·K스포츠재단을 둘러싼 갖가지 의혹으로 난타전을 벌이고 있죠?
-야당은 미르·K스포츠재단과 관련한 의혹들을 추궁하기 위해 최순실·차은택 씨를 증인으로 국회로 불러드리려 하지만, 새누리당은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습니다. 최순실 씨와 차은택 씨는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의 핵심인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야당은 이들을 증인으로 채택해서 이야기해보자는 쪽이고, 새누리당은 이들의 이야기가 나올 때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모습을 보인 바 있습니다. 그러나 신경질적으로 번지면서 파행 국감으로 가는 모양새입니다. 겨우 국감이 정상화됐는데, 여전히 정상다운 모습이 아니라는 비판도 나옵니다.
-맞습니다. 주변에서 '정상화가 정상화가 아니'라는 얘기를 정말 많이 합니다. 박근혜 정부의 '비정상의 정상화' 기조를 거론하면서 말이죠.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도 비정상의 정상화를 조목조목 따지면서 이야기했습니다. 파행은 계속되고, 섣부르지만 이번 국감은 역대 최악이라는 점수를 받아들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쟁점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 과감히 포기하고 다른 현안에서라도 폭발적으로 의혹을 제기하고 검증해야 하는데 새 이슈를 못 꺼내는 것도 이번 국감의 특징입니다. 일각에서는 야당이 전략적으로 '미르' 의혹을 부각하려고 했지만, 애초 할 수 없는 걸 가지고 너무 끌고 간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는군요.
-충분한 합리적 의심이 있지만, 그 부분을 건드려줄 '팩트'가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야당이 내년 대선까지 이른바 '최순실게이트'를 끌고 갈 거라는 그럴듯한 전망도 나옵니다. 국감에서 터트리고 마무리해버리면 오히려 실패라는 것이죠. 야당이 계속 군불을 때다가 내년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시기에 터트릴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하지만 국민은 진실이 궁금해 답답하다는 것이 문제죠.
◆ 연예인이 국감장에?…'김제동 증인 채택 소동'
"4성 장군 부인인줄 모르고 아주머니 했다가 13일 영창" 국회 국방위원회는 7일 '영창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방송인 김제동 씨를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하지 않기로 했다./더팩트 DB |
-뜬금없기는 하지만, 방송인 김제동 씨가 세간의 화제죠?
-네. 김제동 씨가 지난해 모 방송 프로그램에서 본인이 군 복무 당시 4성 장군 부인에게 '아주머니'라고 불러서 13일 동안 영창을 다녀왔다고 주장했습니다. 국방부 차관 출신인 백승주 새누리당 의원은 사실을 밝히기 위해서 김 씨를 국감 증인으로 채택하자고 요청했으나 7일 국회 국방위원회는 채택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연예인이 국감장에 출석한다…. 교문위도 아니고 국방위에 말입니다.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데요.
-(김 씨 발언의) 사실 여부 자체도 중요하지만,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가 국방위의 핵심 쟁점이라는 점을 볼 때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단식과 같이 '안보정당'이라는 프레임과 대중의 관심사라는 프레임을 생각한 것 같습니다.
-사드 문제는 국가적인 현안이고 촌각을 다투는 상황이죠. 그런데 김 씨의 경우 사드 배치와 관련해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는 사람 중 한 명입니다. 거기다 김 씨의 이런 모습이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도 사실입니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새누리당 입장에서 연예인인 김 씨를 부각해 민감한 사드 배치에 관한 시선을 돌리기 위함이 아니겠냐는 주장도 나옵니다.
-일각에서는 여당으로서는 김 씨가 눈엣가시일 수 있어 경고한 측면이 있다는 분석입니다. 그동안 김 씨는 진보적 성향을 많이 드러냈고, 사드 문제도 언급한 바 있습니다. 방송인이라는 직업은 대중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죠.
◆ '심심한' 국감…초선의원 탓?
'조용한 국감장' 20대 국회 첫 국감이 '맹탕 국감'이라는 비판이 벌써 나온다. 사진은 4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 /문병희 기자 |
-어찌 됐든 이번 국감은 아직 평범하다 못해 실망스럽다는 얘기가 있다고요?
-네. 여의도 안팎에서 국감 때 질의하는 수준이 지난 국회와 비교해 나아진 게 없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여야 의원실들이 내놓은 자료들 가운데 예를 들면, 최근 5년간 성추행, 가스 사고 등 매번 우리가 예견하는 자료가 대부분이라는 겁니다. 기자들 사이에서도 쓸 게 없다는 푸념도 들립니다.
-과거 국감 때는 파격적인 자료를 들고나와 이슈가 되기도 하고 폭발적인 관심으로 포털사이트 검색어에 오르기도 했었죠. 거기에 쇼맨십을 발휘하는 의원들이 있어서 눈길이 갔었기도 했고요.
-국회 안전행정위원회가 6일 국회에서 경찰청에 대한 국감을 열었습니다. 당시 야당은 지난해 11월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사경을 헤매다 숨진 고 백남기 농민과 관련해 경찰의 과실 여부가 쟁점이었습니다. 경찰대 교수 출신인 표창원 민주당 의원이 경찰의 급소를 찌를 것이라는 기대가 많았는데, 결과적으로는 밋밋했다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국감에서 내용이 없다 보니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의 '막말 퍼레이드'가 부각되는 게 현실입니다. 물론 그의 발언이 세긴 했지만 말이죠. '사이다' 같은 국감으로 염증을 치유받고 싶은 국민으로서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국감을 몇 년 동안 들여다봤던 기자들 사이에서도 여야 모두 블랙홀에 빠졌고 준비가 안 된 모습이라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한 기자는 손을 놓고 있는 게 아니라 어이가 없어서 보고 있다고 넋두리했습니다.
-'심심한' 국감의 원인이 국감 경험이 전혀 없는 초선의원이 많아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20대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초선의원은 모두 132명이죠. 비율로 따지면 절반에 가까운 44%입니다. 개인적으로 100% 동의하진 않지만, 경험이 중요하다는 점을 비춰볼 때 어느 정도 수긍이 되기는 합니다. (웃음)
◆ 국민의당은 '국감 스타' 산실?
'사실상 대권 겨냥한 文' 지난 5일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대선 싱크탱크인 '정책공간 국민성장' 창립 심포지엄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마친 뒤 손을 흔드는 문 전 대표./이새롬 기자 |
-한 주간 취재하면서 현장에 보았던 재미난 장면은 없었나요?
-국감이 맹탕에 임팩트도 없다 보니, '국감 스타'를 기대했던 국민의당에서 재미있는 풍경이 연출됐습니다. 6일 원내대책회의를 비공개로 전환한 뒤 기자들이 회의장 밖에서 '백브리핑'(백그라운드브리핑·비공식 브리핑)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회의장 안에서 큰소리가 났습니다. 박지원 비대위원장이 두어 차례 엄청 큰 소리로 호통쳤습니다. 기자들은 평소 의원총회 등에서도 일부 의원들과 마찰을 빚으면서 고성이 나온 데다가, 마침 비대위원장 인선 문제로 당 내부에 내홍이 좀 있어서 관련한 일인가보다 생각했어요.
-이후 백브리핑 때 손금주 대변인에게 물어보니 "그거와는 관계없는 일"이라며 웃더라고요. 알고 보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본인(박 비대위원장)이 했던 것을 재연했던 거라고 밝혔습니다. 아무래도 국민의당은 상임위 내 인원이 다른 당보다 적다 보니, 밀어붙이는 강단이 있어야 한다는 걸 설명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촌극이었어요. 기자들은 "아 연기한 거였어? 연기?"라면서 폭소했습니다.
-문 전 대표의 싱크탱크 출범식에서 대권 출정식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시기적으로 좀 빠르지만, 다른 잠룡들보다 먼저 치고 나오려고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실제 싱크탱크는 보이지도 않고 기조연설문은 문 전 대표의 공약 중심이었어요. 대권 공약을 봤을 때 신선하진 않았습니다. 때문에 '경제민주화'랑 다른 게 뭐냐는 질문이 많이 나왔습니다. 거의 복지 문제를 많이 다뤘고, 왜 이렇게 했을까라고 생각했을 때 박근혜가 경제민주화 가져오면서 이겼기 때문에 경제를 먼저 선점하겠다는 전략이 깔렸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써먹었던 전략이기 때문에 얼마나 효과를 낳을 수 있을까 싶습니다.
-6일 오전 국정감사 대책회의가 열리는 국회 제3회의실로 가는 길에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냄새가 났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된장 냄새 같았는데요. 때마침 정 원내대표가 "어디서 구수한 냄새가 나는데?"라고 말했습니다. 옆에 있던 측근은 "김밥 냄새 같은데요?"라고 답했죠. 그러자 정 원내대표는 "내 앞에서 김밥 이야기하지 마! 그놈의 김밥 때문에…"라며 껄껄껄 웃었습니다. 따르던 일행들도 기자도 웃음이 터졌죠.
-정 원내대표가 김밥에 민감(?)한 이유는 지난달 23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김재수 해임안'을 놓고 여야가 대치를 벌이자 황교안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이 식사하지 못하고 있었는데요. 정 원내대표는 "김밥 먹을 시간이라도 줘야 할 것 아니냐. 그럼 정세균 국회의장도 식사하지 말아야지, 양심이 있어야지. 이런 법이 어딨느냐"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여러 언론은 정 원내대표의 '김밥' 발언을 필리버스터(의사진행 방해)의 이름을 따 '필리밥스터'라고 보도했기 때문입니다.
-부산, 울산 등은 태풍 '차바'로 인한 피해가 매우 심각해 보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정치권이 국민에게 희망을 좀 줘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국감 시작 전 '스타 탄생'을 기대했는데 아직까진 '막말 스타'만 있는 것 같습니다. 다음 주 국감에서는 일하는 국회, 민생 국회를 기대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