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희의 P-STORY] '김영란법' 시행, 정의는 실현될 수 있나
입력: 2016.09.28 05:00 / 수정: 2016.09.27 20:04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이 28일부터 전면시행된다. 사진은 2012년 8월 제정안을 발표한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지난해 5월 법 관련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남윤호 기자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이 28일부터 전면시행된다. 사진은 2012년 8월 제정안을 발표한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지난해 5월 법 관련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남윤호 기자

[더팩트ㅣ오경희 기자] 해가 뜨기 전에 '막차'를 서둘러 타야 한다. 공짜밥, 공돈, 공술 등은 오늘까지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 시행 전야 여의도의 풍경이다. '정칫밥' 좀 먹은 한 의원은 "기자들 다 부르라 그래"라며 만찬을 소집하고, 기업 홍보팀도 '마지막(?)' 접대의 밤을 보냈다.

우리 사회의 비정상적인 접대문화와 청탁문화를 근절하고자 제정된 '김영란법' 및 시행령이 28일 전면 시행된다. 공직자와 언론인, 사립학교 교원이나 유치원 임직원 등이 직무관련성과 관계없이 100만 원 이상의 금품 또는 향응을 받으면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100만 원 이하여도 직무관련성이 있다면 과태료 부과대상이다. 적용대상만 약 400만 명에 이른다.

김영란법은 '벤츠여검사(2011년)''스폰서 검사(2012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분노에서 시작됐다. 2012년 8월 당시 김영란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이 제정안을 발표했고, 이후 시행되기까지 각 이해관계와 충돌하며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러나 '법의 취지'만은 대다수가 부정하지 않았다. 시행 이전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70% 이상이 찬성 의견을 나타냈고, 지난해 3월 재석의원 247명 중 찬성 226표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 제정 이전 이미 많은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 정의가 존재하느냐'고 물어왔다.

김영란법 시행을 이틀 앞둔 26일 오후 서울 성동구 행당동 왕십리역사의 한 식당에김영란법을 겨냥한 메뉴판이 보이고 있다./임세준 인턴기자
김영란법 시행을 이틀 앞둔 26일 오후 서울 성동구 행당동 왕십리역사의 한 식당에김영란법을 겨냥한 메뉴판이 보이고 있다./임세준 인턴기자

"세금 낼 거 다 내면 고생하시는 우리 검사님 양복 누가 챙기나?"

"어차피 대중들은 개, 돼지들입니다.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

2010년 영화 '부당거래'에서 스폰서인 태경그룹 김 회장은 검사 주양(류승범 분)에게 말했고, 2015년 '내부자들'에서 대통령후보, 재벌회장과 부정부패로 얽힌 언론사 논설 주간 이강희(백윤식 분)가 국민을 바라본 시선이다. 두 영화 모두 극장가를 휩쓸었다.

영화 속 허구는 2016년 현실에서 진행 중이다. 친구 관계인 진경준 검사와 김정주 넥슨 대표 간 주식 뇌물 의혹,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은 이를 눈감아준 대신 처가의 땅을 김 대표가 고가 매입한 의혹, 30년 지기 중고교 동창으로부터 금품과 향응을 제공 받은 의혹을 받는 김형준 부장검사 등등.

김영란법 시행에 앞서 여의도 정가는 몸을 사리면서 추석맞이 선물도 마다했다. 사진은 지난 1월 설 연휴를 앞둔 국회 의원회관./배정한 기자
김영란법 시행에 앞서 여의도 정가는 몸을 사리면서 '추석맞이 선물'도 마다했다. 사진은 지난 1월 설 연휴를 앞둔 국회 의원회관./배정한 기자

이들 의혹과 유사한 사례가 모두 김영란법의 향후 타깃이다. 하지만 어떤 사건도 여태껏 '실체'는 드러나지 않았다. 앞서 '벤츠여검사'와 '스폰서검사' 당시에도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됐다. 김영란법이 '100만 원 이상인 경우 직무관련성과 관계없이'란 기준을 제시한 이유다. 그러나 100만 원 이하인 경우 '직무관련성'을 입증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이 김영란법에 대한 우려다. 취지엔 공감하지만 직무관련성 역시 '어떻게' 입증하느냐란 것이다. 광범위한 대상과 가능성에 비해 시행 초기 단계인 만큼 명확한 기준으로 판단을 내릴 사례가 없으며, 증거 자료 확보 문제 등이 제기된다. 개별로 들어가면 수많은 '경우의 수'가 나올 수 있다.

때문에 공직사회와 기업인 등 사이에선 속칭 '첫 빠따(번째)'로만 걸리지 말자고 하면서도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며 법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벌써부터 '김영란법을 피하는 방법'을 궁리하는 분위기다.

적용 대상을 확대해 법망을 넓힌 것도 중요하지만, '김영란법'의 정의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다면 무위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게 국민들의 시선이다. 워낙 경우의 수가 많다 보니 변호사들의 수입만 늘려주고, 힘 없는 사람들만 피해를 보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조선시대에도 법은 존재했다. 문제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성역 없는 법 집행'의 부재였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은 지난 7월 28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김영란법에 대한 헌법소원심판 결과를 선고 합헌으로 선고했다./남윤호 기자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은 지난 7월 28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김영란법에 대한 헌법소원심판 결과를 선고 합헌으로 선고했다./남윤호 기자

"주머니 두둑한 사람들한테는 의무보다 권리를 강조하고, 주머니 가벼운 사람들한테는 권리보다 의무를 강조하고, 세상이 그러면 안되죠. 권리와 의무는 똑같은 잣대로 적용되야 됩니다. 그게 공평한거라고 생각합니다(최근 종영한 OCN 드라마 '38사기동대' 마동석 대사 중)."

국민들은 김영란법에 묻는다. 법 밖에서 이뤄지는 특권층의 '은밀한' 부정부패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가.

'정의로운 사회'는 무엇인가.

ar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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