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희의 P-STORY] 지진 공포와 한국형 재난 영화의 싱크로율
입력: 2016.09.21 05:00 / 수정: 2016.09.21 08:24

경주에 잇따라 지진이 발생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지진 공포에 떨고 있다. 사진은 지난 12일 경북 경주 동부동의 한 건물 유리벽면이 깨진 모습./이덕인 기자
경주에 잇따라 지진이 발생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지진 공포에 떨고 있다. 사진은 지난 12일 경북 경주 동부동의 한 건물 유리벽면이 깨진 모습./이덕인 기자

[더팩트ㅣ오경희 기자] "안전한 곳에 대피해 계세요."

갑작스레 무너진 터널에 갇힌 정수는 119에 구조 요청을 한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어처구니없다. 캄캄한 어둠과 내려앉은 구조물로 둘러싸인 정수에게 안전한 곳은 어디란 말인가. 영화 '터널'의 한 장면이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관객은 실소를 금하지 못한다.

영화 보다 '더한' 현실과 닮아서일까. 최근 한국형 재난 영화가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정체불명의 좀비 바이러스 창궐로 쑥대밭이 된 서울역을 출발해 부산으로 향하는 열차 안을 그린 '부산행'은 20일 현재 1156만명의 관객을, 날림 공사로 붕괴한 터널에 갇힌 생존자를 구조하는 과정을 담은 '터널'은 711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두 영화 모두 배경은 다르지만 많은 관객들의 공감대는 같다. 바로 재난에 대처하는 정부 당국의 무능이다. 분초에 국민의 목숨이 달렸는데도 '안일하고, 뒤늦은 대응'은 물론 매뉴얼도 없다. 영화 속 희생자와 유가족, 스크린 밖 관객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영화는 '허구'다.

지진이 발생한 지난 12일에 이어 19일에도 먹통이 된 국민안전처 홈페이지./국민안전처 홈페이지 갈무리
지진이 발생한 지난 12일에 이어 19일에도 '먹통'이 된 국민안전처 홈페이지./국민안전처 홈페이지 갈무리

그러나 영화 속 재난은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지난 12일 경북 경주에서 리히터 규모 5.1에 이어 역대 최대인 5.8 강진이 발생했다. 일주일 만인 19일, 규모 4.5의 여진으로 또다시 시민들은 지진의 공포에 떨어야했다. 일부는 노숙을 하기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20일 오전 8시 기준 여진만 총 400회 발생했으며, 경주시는 이날 지진 피해액을 106억 원으로 잠정 추산했다.

많은 사람들이 불안에 떠는 동안, 정부의 대응은 영화와 다르지 않았다. 진앙지인 경주뿐만 아니라 서울 등 수도권과 제주까지 지진을 감지할 동안 긴급재난문자를 뒤늦게 발송했고, 국민안전처 홈페이지는 '먹통'이었다. '뒷북 문자' 또한 대피요령 등을 고지하지 않아 비난을 받았다. 국민들은 그저 '알아서' 대피하거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다.

"정부도, 누구도 믿을 수 없다"며 많은 사람들은 지금, "살아남는 법"을 고민하고 있다. 이사와 이민, 심지어 '망명'까지도 거론하고 있다. 추석 동안 안부 전화 차 경북 지역에 사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조금만 이상한 소리가 나거나 물건이 떨어져도 벌떡 일어난다"며 "불안해서 잠을 잘 수가 없다. 이사를 심각히 고려 중"이라고 했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친척들도 추석 밥상에서 "뭔가 우리나라에 큰일이 나는 것 아니냐"며 "지진 나면 어떻게 해야 하냐"며 넋두리를 주고받았다.

지난 12일 발생한 지진으로 대피한 시민들./트위터 갈무리
지난 12일 발생한 지진으로 대피한 시민들./트위터 갈무리

SNS(사회관계망 서비스) 상에서도 "여러분 저는 지난 여름 폭염과 이번 지진 전부 한 번도 재난문자를 못 받은 비국민입니다. 망명사유 될까요?(@lil_****)""이런 말씀 드리기 정말 싫지만, 세월호 사고와 경주 지진을 겪은 뒤에도 지금까지 정부가 뭘 어떻게 해 왔나 돌이켜 보면, 더 큰 지진이 왔을 때 여러분이 피해를 조금이나마 덜 입는 유일한 길은, 스스로 알아서 잘 하는 겁니다(@V4*)""진심으로 한국을 좋아하는 일본 친구가 그랬어요. 경주 지진은 그동안 지진 무방비 상태로 지내오던 한국에 대한 마지막 경고일지도 몰라. 이번 일을 계기로 모든 걸 다시 점검하고 제대로 대비해야만 해. 엄청난 재앙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SCJ***)" 등의 글이 잇따르고 있다.

누군가는 이번 지진 사태를 엄청난 재앙을 앞둔 '마지막 경고'라고도 한다.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과 대응 시스템의 전면 쇄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이다. 우리는 이미 2년 전,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 당시 뼈저리게 경험했다. 그때의 비극을 되풀이해선 안된다. (재난) 영화는 영화여야 한다.

ar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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