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 시민 약 400여 명은 추석을 하루 앞둔 지난 13일 오후 7시 30분께 김천역 앞에서 사드 배치 반대 촛불시위를 했다. 사진은 지난 14일 김천역 앞 사드 배치 반대 촛불 집회./김천역=서민지 기자 |
[더팩트 | 김천=서민지 기자] 고향은 낯선 풍경으로 귀향민들을 반겼다. 지난 13일 오후 7시 경북 김천역, 추석을 앞두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귀향민들이 몰렸다. 하지만 김천역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반대하는 촛불과 현수막으로 가득 찼다. 시민들은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둘러앉아 '사드 반대'를 외쳤고, 귀향민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역 앞의 낯선 풍경을 바라봤다.
"3개월 만에 이런 일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아이들 잘 키워보려고 갔는데, 날벼락 맞았어요."
이날 10살, 8살 남매를 자녀와 함께 촛불 집회에 참여한 30대 학부모 한 모 씨는 울분을 토했다. 남편 직장과 아이들 교육을 고려해 김천혁신도시(율곡동)로 3개월 전 이사를 하자마자 정부가 경북 김천시와 인접한 성주군 초전면에 사드 배치를 유력지역으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한 씨는 "저 정말로 사드와 북핵 관련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아무리 공부를 해도 아닌 건 아니더라고요. 전자파로부터 우리 아이들이 정말로 안전한 것인지 알 수도 없고 그렇다고 북핵을 막을 수도 없는데, 대체 어떤 엄마들이 모른 체할 수 있겠어요"라고 토로했다.
촛불 집회를 하는 도중 자유 발언을 하는 김 모(88) 씨./김천역=서민지 기자 |
촛불 집회에는 혁신도시에 거주하는 부모들이 어린 자녀를 데리고 참여한 경우가 상당수였다. 김 모(37·여) 씨 부부는 5살, 3살, 7개월 된 어린아이들과 함께 촛불을 들었다. 김 씨 부부는 22일째 접어든 촛불집회에 매번 참여했다고 밝혔다.
김 씨는 "아이를 키우는 처지에서 '전자파가 안 나온다'는 나라의 말만 믿고 있을 수가 없더라고요. 막막합니다"라면서 "사드가 배치되면 이사하는 것도 고려 중이에요. 일단 배치 전까지는 최선을 다해야 할 것 같아서 작은 힘이라도 보태려고 남편과 퇴근 후에 왔어요"라고 말했다.
개중에는 자두나 포도농사를 짓는 농민들도 있었다. 1960년부터 56년째 김천에서 포도농사를 짓고 있는 김 모(88) 씨는 자유 발언대에 올라 "포도농사를 그만두는 사람이 많아져 걱정인데, 사드 바람까지 불어 큰일"이라고 우려했다.
김 씨는 "농사짓는 농민들이 여기에 나와서 촛불을 드는 건 예사로운 일이 아니"라면서 "김천 포도는 우리나라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저는 갈 길을 생각하는 나이지만 우리 후손들이 너무 걱정된다"고 언급했다.
김천역 앞을 덮은 '사드 배치' 반대 현수막./김천역=서민지 기자 |
특히 이날 촛불 집회에 나온 시민들은 '님비(지역이기주의) 현상'이나 '이념 갈등'으로 비칠까 조심스러운 눈치였다. 촛불 집회를 주관하는 사드배치반대김천시민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이념, 지역 문제를 떠나 김천 시민의 생존권 문제"라고 강조했다. 사드배치반대김천시민대책위원회는 원불교, YMCA, 농민회, 주부 등 일반 시민들이 모여 만든 단체로, 시장·시의원 등 관변단체가 만든 사드배치반대김천투쟁위와 별개 모임이다.
위원회 관계자는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무엇보다 경제적 타격이 너무 큽니다. 김천은 전국 자두·포도 생산량의 30%를 차지하며, 사드 배치 인근 지역인 농소면은 농산물의 주요 생산지"라고 설명했다.
또한, "인접 지역인 율곡동 혁신도시 사람들이 아직 확신할 수 없는 전자파 때문에 불안 심리로 다 떠나니까 부동산 경기도 완전히 가라앉았습니다"라면서 "혁신도시가 무너지면 김천 전체가 거의 붕괴한다고 보면 됩니다. 이념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말 우린 생존권이 달렸습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날 '사드 배치' 반대 집회에 나선 가족들./김천역=서민지 기자 |
특히 김천에 지역구를 둔 이철우 새누리당 의원을 향해 "그분은 공식적으로 찬성하고 있는데, 김천 시민 입장에선 우리가 뽑아준 사람이니까 김천의 이익을 대변해줬으면 좋겠어요"라면서 "기회가 되면 군사 전문가 김종대 정의당 의원, 이 의원과 함께 토론회 한 번 개최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지역민들은 '사드 배치'에 찬성하는 의견을 제기하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임 모(62·다수동) 씨는 "북한이 도발을 하는 상황에서 안보를 생각하면 사드를 배치하는 것이 맞죠"라면서 "주민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안됐지만, 어쩔 수 없지 않나"라고 밝혔다.
한편 정치권은 여전히 '사드 배치'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새누리당은 '찬성', 국민의당은 '반대'를 당론으로 채택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이렇다 할 명확한 입장을 내지 않고 전략적 모호성을 띄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