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의 색다른 인문학] '기승전북핵(北核)'의 해법은
입력: 2016.09.12 12:13 / 수정: 2016.09.12 12:13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위원장은 9일 5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의 이번 핵실험과 관련해 김정은의 정신상태는 통제 불능이라고 봐야 할 것이라고 규탄했다. /북한 노동신문 갈무리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위원장은 9일 5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의 이번 핵실험과 관련해 "김정은의 정신상태는 통제 불능이라고 봐야 할 것"이라고 규탄했다. /북한 노동신문 갈무리

[더팩트 | 박종권 편집위원] 이번에도 '기승전북(北)'이다. 과거의 종북(從北)과 달리, 북핵(北核)이 블랙홀이 됐다. 미사일을 쏘아 올릴 때마다, 핵실험을 할 때마다 야단법석이다. 뚜렷한 대책은 없다. 그저 눈 흘기고 침 튀기며 주먹질과 손가락질이다.

말썽꾸러기를 다룰 때는 사탕과 회초리가 필요하다. 사탕만 주면 계속해서 보챈다. 주고 주고 또 줘도 한없이 손을 내민다. 여러 번 줘놓고 이제 더 이상 안 된다고 잘라버리기도 뭣하다. 회초리만으로 대하면 억하심정을 유발한다. 한 대 두 대 맞다 보면 맷집도 생긴다. 때릴 테면 때려 보라고 덤빈다. 경우에 따라서는 흉기를 집어 들고 대든다.

그래서 '사탕과 회초리'는 함께 써야 효과적이다. 말 안 듣는 말에게 당근과 채찍이 필요하듯이 말이다. 당근만 주면 당근만 바라며 나아가는 듯 마는 듯 한다. 채찍질만 하면 그냥 나뒹굴어버린다.

북한의 하는 짓이 꼭 그렇다. 체제경쟁에서 비롯된 군비경쟁이 회초리를 보여 주는 것이라면, 체제의 우위를 점한 상태에서 햇볕정책은 달콤한 사탕이다. 더러는 "사탕도 에너지이다. 그 에너지를 바탕으로 핵을 개발했다"고 주장한다. 그럴 수도 있다. 의지가 있다면, 어떻게 해도 그 의지를 관철할 것이니까.

회초리도 마찬가지이다. 회초리만 휘두르면 대놓고 흉기를 집어 들 수 있다. 사탕을 받아먹은 데 대한 미안함이나 겸연쩍음도 필요 없으니까. 원래 합리적이었다면 달리 나올 수도 있겠지만, 원래 비합리적이라면 어떻게 대해도 마찬가지일 수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9일 안보상황 점검회의에서 끊임없는 사드 반대와 같이 대안 없는 정치 공세에서 벗어나 우리가 취할 기본적인 것들을 해야 한다고 야당의 사드 배치 반대를 지적했다. /청와대
박 대통령은 9일 '안보상황 점검회의'에서 "끊임없는 사드 반대와 같이 대안 없는 정치 공세에서 벗어나 우리가 취할 기본적인 것들을 해야 한다"고 야당의 사드 배치 반대를 지적했다. /청와대

여하튼 북은 고도로 정밀한 핵 능력을 갖추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10년간의 햇볕정책 때문이라든가, 이후 정권들의 회초리 정책 때문이라는 손가락질을 할 필요는 없다. 지금은 현실이고, 내일이 문제이다.

그럼에도 정부당국은 북한을 비난하고, 야당은 비판하며, 국민에게 경고음을 날린다. 마치 일렁이는 바다에서 선장이 파도를 탓하고, 바람을 손가락질하며, 선원들에게 삿대질만 하는 형국이다. 내리막길을 달리는 운전자는 먼저 브레이크를 점검하고, 속도를 조절하며, 핸들을 잘 꺾어야 사고를 피하는 법이다. 그런 운전자가 꼬불꼬불 경사를 탓하고, 제동 성능을 손가락질하며, 뒷자리 않은 승객에 고함을 지른다고 될 일이 아니다.

조수석도 문제다. 유능한 조수라면 사전에 차량도 점검하고, 운전자에게 도로 정보도 정확히 알려주며, 난폭운전을 하지 않도록 잘 제어해야 한다. 그런데, 조수석은 그저 조는 듯 마는 듯 고개 돌려 창밖만 바라본다.

한 전직 외교장관은 이를 '지렛대 상실' 때문으로 짚는다. 북핵은 우리의 당면 문제이다. 따라서 우리가 주도적으로 풀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렛대가 필요하다. 바로 북한으로 하여금 남한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것이다. 그 방법은 개성공단 형식의 확대일 수도 있고, 금강산 외에 백두산까지 관광을 늘릴 수도 있다.

공단이 경제적 의존도를 높이는 것이라면, 관광은 사회적 의존도를 높이는 것이다. 여기에 인도적 차원의 인적 교류를 넓히면 사회문화적 의존도도 높이는 방법이라는 이야기다. 북한이 싸가지 없고 밉더라도, 정말 상대하고 싶지 않더라도 한반도와 민족을 생각하며 멀리 내다보고 그렇게 지난 9년간 교류를 이어왔더라면, 아마도 당금 문제의 열쇠는 우리가 쥐고 있지 않았겠느냐는 분석이다.

현실은 어떤가. 미국은 뒷짐 진 '제국'의 모습이다. 우리를 선봉대로 여기는 듯 지긋이 밀어붙이고 있다. 중국은 불쾌한 '대국'의 모습이다. 우리를 완충지대로 여기는 듯 둔중하게 누르고 있다. 제국주의와 대국주의의 틈바구니에 낀 상황이다.

한때 동북아 외교의 균형자를 자처했지만, 그것도 지렛대가 있어야 균형을 맞출 것 아닌가. 중국으로 힘의 균형이 쏠려버린 북한에게 우리가 작용할 지렛대는 그저 회초리 하나 더 하는 것 외에 없다. 사탕이라도 인이 박히게 해 놓았더라면, 그 중독성으로 제어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박 대통령은 9일 북한 핵실험 직후 오바마 대통령과 통화하고 한·미 간 가용한 모든 수단을 써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더욱 강력히 압박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지난 6일 한미 정상회담 당시 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청와대
박 대통령은 9일 "북한 핵실험 직후 오바마 대통령과 통화하고 한·미 간 가용한 모든 수단을 써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더욱 강력히 압박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지난 6일 한미 정상회담 당시 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청와대

결국, 사람이다. 일은 사람이 한다. 따라서 일의 성패 역시 사람에 달렸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인 이유이다. 꼭짓점이 불안하면 바로 아래 버팀목이라도 제대로 돼야 하는데, 현실은 글쎄다. 그저 '예스 퍼슨(Yes Person: '예스맨'은 성차별적 표현이다)' 뿐이다. 그저 눈동자 상하좌우로 굴리며 자리보전에 전전긍긍이다.

공자님도 일찍이 이를 짚었다. "정치는 인재를 얻는 데 달려 있다. 어진 이를 등용하지 않고 정치를 잘 하는 경우는 없다." 결국 임금(현재의 대통령)이 할 일은 국정을 살필 한 사람의 재상(총리)을 결정하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사실 현행 민주주의 헌법도 장관은 총리의 제청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돼 있다. 명문 규정뿐이지만.

조선을 설계한 정도전도 말을 보탰다. "임금의 자질에는 어리석은 자질도 있고, 현명한 자질도 있으며, 강력한 자질도 있고, 유약한 자질도 있어 한결같지 않다. 재상은 임금의 아름다운 점은 따르고, 나쁜 점은 바로잡으며, 옳은 일은 받들고, 옳지 않은 일은 막는다. 이로써 임금으로 하여금 대중(中庸)의 경지에 들게 한다."

요즘으로 치면 대통령이야 이런 성격자 저런 능력자일 수 있으니 국정을 이끌어가는 총리와 장관들이 제대로 하란 이야기쯤이다. 거꾸로 말하면 대통령 자신이야 만능이 아니니 만기친람(萬機親覽) 하지 말고 사람을 입맛대로 뽑지 말고 제대로 가려 선발하란 조언이다.

정도전은 재상의 덕목으로 임금이 "안 된다"고 해도 "됩니다"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임금이 "그렇다"고 해도 재상은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종 24년의 일이다. 윤필상이 사헌부의 탄핵을 받았다. 그러자 곧바로 사직을 주청했다. 성종은 '불윤비답(不允批答)'을 내렸다. 사직을 허락하지 않고 계속 신임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전해야 할 홍문관 교리 유호인이 전달을 거부했다. 사헌부 탄핵이 정당하기 때문이란다. 그야말로 왕명에 항거, 항명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9일 국내 불순세력이나 사회불안 조성자들에 대한 철저한 감시 등 국민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도록 하기 바란다고 각 부처에 거듭 당부했다. /청와대
박 대통령은 지난 9일 "국내 불순세력이나 사회불안 조성자들에 대한 철저한 감시 등 국민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도록 하기 바란다"고 각 부처에 거듭 당부했다. /청와대

화가 난 성종은 유호인을 벌하려 했다. 그러자 홍문관에서 벌떼처럼 나섰다. "신하의 도(道)는 의(義)를 따르는 것이지, 임금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요즘으로 치환하면 "장관은 대의(국민의 뜻)를 따르는 것이지, 대통령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쯤이다.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사직하는 것이 재상이자 선비의 '도(道)'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기개가 보이지 않는다. 그저 '묵언패'를 두른 듯 말씀만 묵묵히 받아쓰며 '적자생존'만 도모하는 듯하다. '입은 화를 부르는 문(口是禍之門), 혀는 자신을 베는 칼(舌是斬身刀)'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말을 해야 할 때 말을 하지 못한다면, 입은 그저 밥을 먹는 구멍이란 말인가.

세종대왕도 중요한 제도를 마련하거나 중차대한 결정을 내릴 때는 구중궁궐(九重宮闕)에서 전단하지 않았다. 공법을 마련할 때 지침은 "한양의 육조와 관사, 각 도의 감사와 수령, 전직 품관은 물론이고 여염(閭閻)의 세민(細民)에 이르기까지 모두 가부(可否)를 물으라"는 것이었다.

여염은 백성의 살림집이 밀집한 곳을 뜻하고, 세민은 영세민으로 가난하고 비천한 농민을 뜻한다. 백성을 개돼지가 아니라 정책 수렴의 직접적인 행위자로 인식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요즘 우리의 대통령제를 '제왕적'이라고 하는 것은 좀 어떨까 싶기도 하다. 차라리 '패왕적' '전제적'이라 하는 것이 어울리지 않을까.

어쨌든 발등의 불은 발등의 불대로, 먼 불길은 먼 불길대로 잡아야 한다. 당면사안이 단기, 중기, 장기계획이 필요하다면, 이를 동시에 진행시켜야 한다. 단기 끝나고 중기, 중기 매듭짓고 장기계획이 아니다. 단기는 단기대로, 중기는 중기대로, 장기는 장기대로 대처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홍수가 일어 강물이 넘치는데, 곧 우물도 삼켜버릴 텐데, 우물 속에서는 개구리들끼리 제 잘났다고 개굴거리는 형국이다. 우물 안에서 좋은 자리 차지하려 뒷발질이고, 끼리끼리 물을 차지하려 싸움질이다. 홍수가 덮칠 때 대왕개구리가 비를 탓하고, 우물 낮은 것을 비난하며, 개구리들을 나무란다고 해서 안전하게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지금이라도 빨리 우물을 벗어나 밀려오는 홍수를 제대로 봐야 한다. 그래야 맞서든 피하든 할 게 아닌가.

ps.team@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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