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영의 정사신] '혹평 일색' 이정현 국회 연설, 원인을 보자
입력: 2016.09.06 05:00 / 수정: 2016.09.05 17:33

야권은 5일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청와대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혹평했다. 사진은 5일 국회에서 20대 국회 첫 정기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한 이 대표. /국회=배정한 기자
야권은 5일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청와대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혹평했다. 사진은 5일 국회에서 20대 국회 첫 정기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한 이 대표. /국회=배정한 기자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호남 출신 첫 보수정당 당 대표에 오른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5일 첫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위해 국회 단상에 올랐다. 정치를 시작한 순간부터 이 대표는 당 대표로 국회 본회의장에서 동료 의원들과 국민을 향해 자신의 정치적 역정과 미래를 제시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30여 년 전, 1985년 국회의원 비서를 시작으로 17단계를 밟아 집권 여당의 당 대표에 오른 이 대표다. 그에게 국회 본회의장 단상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얼마나 큰 의미일지 미뤄 짐작해 볼 수는 있다. 아마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을 테고, 감정 또한 복받쳐 올랐을 것이다. '무수저' '비(非)엘리트'로 집권 여당 당 대표에 오른 이 대표인 만큼 많은 사람들 또한 교섭단체 첫 대표연설을 감동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의 연설은 불행히도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렸다. 그는 본회의장 단상에 올라 38분 37초 동안 대표연설을 했다. 또, '국민'을 86번이나 언급했다. 이 대표의 연설문에서 가장 많이 언급한 것이 '국민'이었다. 이 대표는 연설에서 국회 개혁, 김영란법, 안보, 개헌, 청년 무상복지, 규제 완화와 노동법, 국민 안전, 갈등과 차별 등을 주제로 했다.

그는 국회의원 특권을 '황제특권'으로 규정하며 이를 과감하게 개혁해야 한다고 했고, 농가와 축산·수산업 종사자들의 애로에도 불구하고 청렴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김영란법을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후부터 이 대표의 연설은 당 대표의 연설인지 아니면 정부의 대변인인지 모르게 흘러갔다.

이 대표는 국회 본회의장 단상에 올라 38분 37초 동안 대표연설을 했다. 또, 국민을 86번이나 언급했다. 이 대표의 연설문에서 가장 많이 언급한 것이 국민이었다. /국회=배정한 기자
이 대표는 국회 본회의장 단상에 올라 38분 37초 동안 대표연설을 했다. 또, 국민을 86번이나 언급했다. 이 대표의 연설문에서 가장 많이 언급한 것이 '국민'이었다. /국회=배정한 기자

이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과 야당이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철저하게 정부 입장에 섰다. 그리고 야당을 질책하고 몰아세웠다. 귀 기울여 듣던 이 대표의 연설은 더는 공감할 수도 없고, 반대 진영에서는 듣고 싶지도 않을 정도였다. 집권 여당 대표 연설이라고 이해하고 들었지만, 오히려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민망했다는 평가가 일각에서 나왔다.

"좌절하고 힘없는 이 땅의 많은 서민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싶습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인 이 대표다. "코리안 드림을 물려주고 싶다"고도 했다. 그런데 그의 연설에서 목청의 강도와는 달리 이 시대를 사는 '국민'의 입장에서는 뜨거운 진정성을 느껴지 못했다. 필자만의 느낌일까?

이 대표는 "박근혜 정부 들어와 정부조직법 개정 발목잡기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사실상 대선불복 형태의 국정 반대, 국가 원수에 대한 막말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라며 "이제 대선 불복의 나쁜 관행을 멈춥시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국가 안위와 국민의 먹고 사는 문제로 법안과 예산을 국회에 호소할 때, 야당 의원 여러분! 국가와 국민을 위해 화끈하게 한 번 도와주십시오"라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 3당이 일제히 이 대표의 연설을 "청와대 홍보수석 수준의 유체이탈 대표 연설"이라고 혹평했다. 이 대표는 야권이 혹평하는 이유를 스스로 반문해봐야 한다. 당 대표의 연설인지, 박근혜 대통령 참모의 대변인인지를 말이다.

이 대표는 비서에서 17단계를 밟고 당 대표에 오른 입지전적한 인물로, 기성 정치인과 다른 소탈함으로 당 대표 경선에서 호남 출신 첫 보수정당 대표로 선출됐다. 사진은 지난달 7일 전당대회 당시 이 대표. /배정한 기자
이 대표는 비서에서 17단계를 밟고 당 대표에 오른 입지전적한 인물로, 기성 정치인과 다른 소탈함으로 당 대표 경선에서 호남 출신 첫 보수정당 대표로 선출됐다. 사진은 지난달 7일 전당대회 당시 이 대표. /배정한 기자

이 대표는 누가 뭐래도 집권 여당의 대표이다. 여당 내에서도 이 대표의 청와대를 대하는 모습에 불편함을 느끼는 다수 의원이 많은 이유도 야당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대표는 박 대통령의 '복심'인지 몰라도 비서가 아니다. 더구나 이제는 엄연히 3권 분립의 한 축인 국회의 여당 대표다. 비서와 '복심', 당 대표의 위치를 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이 앞선다.

연설에서 꼭 감동을 받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여당의 새바람을 기대한 대표의 연설은 나와 다른 입장에 있는 이들조차 공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기성 정치인과 다른 소탈함은 이정현 정치의 핵심이다. 적지않은 국민은 이런 이 대표의 모습에 공감하고 감동했다. 당 대표 선거는 모르겠지만 이정현을 '찍었던' 현장의 국민은 이런 이정현의 정치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지, 청와대와 정부를 대변하는 이정현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영국의 왕 조지 6세는 유아기 보모의 학대와 말을 더듬는 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다. 이를 잘 보여준 영화가 바로 <킹스스피치>이다. 조지 6세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한 연설로 영국 국민을 감동시켰다. 말더듬이 조지 6세가 연설로서 국민을 감동하게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진정성'이었다. '포장된 진실'은 진정성이 아니다.

cuba2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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