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지의 폴리뷰] '외딴섬' 안철수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안철수'다
입력: 2016.09.04 05:00 / 수정: 2016.09.03 21:31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지난달 31일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장에서도 홀로 따로 떨어져 있는 섬 같았다. 사진은 지난달 17일 김대중 대통령 서거 7주기 강연회에서 축사를 마친 뒤 이동하는 안 전 대표./문병희 기자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지난달 31일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장에서도 홀로 따로 떨어져 있는 섬 같았다. 사진은 지난달 17일 김대중 대통령 서거 7주기 강연회에서 축사를 마친 뒤 이동하는 안 전 대표./문병희 기자

[더팩트 | 서민지 기자] 정치권 일각에선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를 '외딴섬'이라고 부르곤 한다. 실제로 국회에선 안 전 대표의 '외딴섬'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지난달 31일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장에서도 그는 '외딴섬' 같았다.

안 전 대표는 이날 오전 10시께 청문회장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 그는 조 후보자와 짧은 인사를 나눈 뒤 자당 의원들이 올 때까지 청문회장을 벗어나 있었다. 그는 송기석·이동섭 국민의당 의원이 도착하자, 다시 청문회장에 입장해 두 의원과 조곤조곤 몇 마디 대화를 나눴다. 그러나 간사인 송 의원이 자리를 비우면, 홀로 우두커니 앉아 준비해 온 청문회 자료만 보고 또 보았다.

조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는 유독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여당 의원들은 교문위 누리과정 단독 통과를 지적하며 유성엽 교문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이장우 새누리당 의원은 유 위원장의 잘못을 지적하며 안 전 대표를 향해 "안철수 대표님, 한 말씀 해보시죠. 이게 새 정치입니까?"라고 여러 차례 소리를 지르며 따져 물었다. 흥분한 이 의원과 달리 안 전 대표는 얼굴을 붉힌 채 묵묵부답으로 미소만 지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안 전 대표는 송 의원을 제외한 의원들과는 말을 섞지 않았다. 유일한 한마디는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언제부터 여당이 이렇게 보이콧을 하기 시작했나"라고 말하자, 송 의원은 "그러니까요"라고 받아쳤고 안 전 대표도 "발목 잡는 여당?"이라며 말을 보탠 것이 전부였다. 이후 그의 시선은 자료로만 향해 있었고, 회의가 속개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오전 11시 15분께 홀로 회의장을 나섰다.

지난달 31일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청문회 자료를 살펴보는 안 전 대표(동그라미)./문병희 기자
지난달 31일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청문회 자료를 살펴보는 안 전 대표(동그라미)./문병희 기자

소속 정당의 위원장이 공격을 당하고, 본인에게 삿대질해도 말 한마디 하지 않는 안 전 대표의 의중이 궁금했다. 안 전 대표에게 '여당의 발언 수위가 세더라. 어떻게 생각하나. 유 위원장에 대해 많은 비난이 쏟아지더라'라고 말을 꺼냈더니, "오늘은 청문회를 하는 자리입니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한 부처의 장을 국민을 대신해서 검증하는 굉장히 귀중한 자립니다. 청문회에 집중해야죠"라는 말이 돌아왔다. 야권의 유력 대선 후보이자, 전직 당 대표로서 상황을 중재하는 리더의 모습을 기대한 사람들로선 다소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안 전 대표의 '외딴섬'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보자면 '신사적인 스타일' 혹은 '정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함' 등이다. 하지만 그동안 정치인 안철수의 '외딴섬' 이미지는 '대통령병' '짠돌이' '사회성 부족' 등 수많은 오해를 불러일으켰고, 여전히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자당 내 유일한 대선후보를 향한 국민의당 의원들도 안 전 대표의 이런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지난 7월 지지율이 뚝 떨어진 안 전 대표를 걱정하는 A 의원이 말했다.

"제가 보기엔 안 전 대표가 하는 말은 오래도록 속에서 곱씹어서 모두 소화가 돼서 나오는 말이거든요. 그런데 많은 분들이 '진정성'을 느끼지 못하더라고요. 안타깝죠."

여론이 안 전 대표의 진정성을 몰라준다는 답답함을 토로한 것이다. 그는 '오래도록 속에서 곱씹는' 동안 소통이 부족한 게 문제점이라고 평가했다. 또 다른 B 의원은 이에 대한 재밌는 해석을 내놨다.

"안철수 대표는 '기계계'에서 일단 '인간계'로 내려오는 게 시급한 문제야."

기계처럼 완벽하지만, 인간적인 면모가 부족하단 소리를 에둘러 말한 것이다. 둘러앉은 모든 사람은 "맞아요. 그래서 별명이 '로봇 철수'잖아요"라고 공감했다. 그러자 B 의원은 "그래도 알파고보단 인간적이지 않나요?"라며 농담을 던졌다.

안철수 전 대표(맨 왼쪽)가 1일 정기 국회 개회식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이 본회의장 떠나자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와 천정배 전 대표, 주승용 의원, 정동영 의원과 대화를 하고 있다. 안 전 대표에겐 소통부재가 대권 도전의 과제로 꼽힌다./이새롬 기자
안철수 전 대표(맨 왼쪽)가 1일 정기 국회 개회식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이 본회의장 떠나자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와 천정배 전 대표, 주승용 의원, 정동영 의원과 대화를 하고 있다. 안 전 대표에겐 소통부재가 대권 도전의 과제로 꼽힌다./이새롬 기자

'잠룡 감별사'로 불리는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도 자당 의원들과 같은 문제로 고민이 깊다. 기자들은 평소 박 위원장에게 소통하지 못하는 안 전 대표의 근황이나 내부 속사정에 관해 자주 묻는다. 기자들은 최근 안 전 대표의 지지율 등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다 박 위원장에게 "안 전 대표와 소통이 안 된다. 미국은 왜, 말도 없이 간 거냐"고 물었다.

박 위원장은 안 전 대표를 '겸손하고 샤이(부끄러움을 타는)한 사람'이라고 지칭하며, "측근들이 잘해야 하는데, 나도 도대체 측근이 누군지 궁금해서 안 전 대표에게 물어봤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도 안 전 대표의 '외딴섬' 이미지에서 벗어나 곁에서 힘을 실어주고 이끌어줄 수 있는 '안철수의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내린 셈이다.

안 전 대표는 2012년 대선 당시에만 해도 여러 명의 멘토와 우군들의 도움을 받았다. 지금 이들 가운데 안 전 대표와 함께하는 사람은 없다. 박경철 신세계연합의원 원장,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금태섭 더민주 의원 등 대부분 안 전 대표 곁을 떠났다. 특히 '안철수의 남자'로 불렸던 금 의원은 책과 인터뷰를 통해 "진실캠프(안철수 캠프의 대외 명칭)의 가장 큰 문제는 소통의 부재였다"고 안 전 대표를 비판하기도 했다.

안 전 대표가 '대권행'에 나서지 않는다면 지금의 '외딴섬' 정치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최근 무등산에서 사실상 '대권 선언'을 했다. 본격적인 대권 행보에도 나섰다.

선거는 표를 많이 받은 사람이 승리한다. 표를 많이 얻으려면 흩어진 민심을 한 데로 모아야 한다. 그러려면 안 전 대표와 같은 뜻과 능력을 갖추고 안 전 대표에게 힘을 보탤 수 있는 더 많은 안철수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외딴섬' 이미지 탈피가 최우선이고, 소통하는 인간적 면모를 드러내는 것이 과제가 아닐까.

mj7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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