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영의 정사신] '배리어 프리'가 절실한 정치권, 영화에 답 있다
입력: 2016.08.23 05:00 / 수정: 2016.08.22 18:22
20대 국회는 협치를 입이 닳도록 말했지만, 추가경정예산안 등 사사건건 여야가 충돌하면서 협치는 실종된 지 오래다. 사진은 지난 6월 13일 20대 국회 개원 당시. /더팩트DB
20대 국회는 '협치'를 입이 닳도록 말했지만, 추가경정예산안 등 사사건건 여야가 충돌하면서 협치는 실종된 지 오래다. 사진은 지난 6월 13일 20대 국회 개원 당시. /더팩트DB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지난 19일 오후 서울혁신파크에서 새로운 경험을 했다. 그동안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경험은 마음을 따뜻하게 했고, 그래도 아직 우리 사회에 온정이 남아 있다는 것을 느끼는 계기가 됐다. 사실 이제야 알았다는 것이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이날 뒤늦게 얼어붙은 40대 남자의 마음을 녹이고 봄바람처럼 감동의 기운을 불어넣은 것은 '배리어 프리(barrier free)'란 영화였다. 배리어 프리 영화는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도,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도, 거동이 불편한 사람도 함께 볼 수 있다. 귀가 들리지 않는 이들을 위해 자막이 나오고, 눈이 보이지 않는 이들을 위해 배우 유지태 씨의 목소리로 장면을 설명했다.

영화가 시작했을 때만 해도 자막과 설명이 다소 어색하게 다가왔다. 외화에 자막이 나오는 것에는 익숙했지만, 영화의 장면을 설명하는 것엔 익숙하지 않아 어색하기만 했다. 그러나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설명이 당연하게 다가왔고, 모두가 즐겁게 영화를 보고 있음을 알게 됐다.

함께 사는 세상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머리로는 알면서도 마음으로는 제대로 느끼지 못한 감정을 느끼게 됐다. 배리어 프리는 고령자나 장애인들도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물리적·제도적 장벽을 허물자는 운동이다. 1974년 국제연합 장애인생활환경전문가회의에서 '장벽 없는 건축 설계(barrier free design)'에 관한 보고서가 나오면서 건축학 분야에서 사용되기 시작했고, 현재는 많은 영역에서 장벽을 허물고 있다.

배리어 프리 영화는 청각 장애인, 시각 장애인,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 등이 일반인과 똑같이 볼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사진은 지난 19일 상영된 배리어 프리 영화에 상황을 묘사한 자막이 적힌 장면. /이철영 기자
배리어 프리 영화는 청각 장애인, 시각 장애인,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 등이 일반인과 똑같이 볼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사진은 지난 19일 상영된 배리어 프리 영화에 상황을 묘사한 자막이 적힌 장면. /이철영 기자

하지만 배리어 프리 영화의 감동도 잠시, 영화관 밖에 놓인 현실은 다시 후텁지근한 공기와 함께 머리를 짓눌렀다. 감동이 컸기에 장벽을 허물지 못하는 우리 사회와 정치권의 처한 상황이 더 갑갑증을 몰고 왔다. 사회적으로 양극화의 골은 점점 깊어가고, 정치는 여야로 나뉘어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양극화를 해소하고 국민의 행복을 위하겠다는 정치인들은 입씨름만 할 뿐이다.

20대 국회가 지난 6월 13일 개원했으니 두 달이 조금 넘었다. 그동안 국회의원들의 입을 통해 가장 많이 들은 단어가 바로 '협치'이다. 그런데 도무지 협치하는 모습을 보기가 힘들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총선 결과를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했지만, 여전히 그대로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도 다를 게 없다. 말은 많은데 뭐 하나 제대로 국민을 만족하게 하는 것이 없어 보인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본인들의 주장만 있을 뿐 협치는 실종된 지 오래다. 여야는 배리어(장벽)을 치고 한발도 물러날 수 없다는 모습만 되풀이할 뿐이다.

여야는 현재 추가경정예산안, 서별관 회의 청문회 증인 채택,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거취 문제, 장관 및 경찰청장 내정자 인사청문회 등을 놓고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다. 여야가 22일 본회의를 열고 합의 통과시키자던 추경은 서별관 회의 청문회 증인 채택에 이견을 보이며 결국 무산했다.

싸우고 약속을 어기는 정치만 하면서 국민에게만 관심을 가지라는 건 욕심이고, 염치없는 짓이다. 그렇지 않아도 기록적인 폭염과 전기요금에 불쾌지수가 오를 대로 오른 국민이다. /더팩트DB
싸우고 약속을 어기는 정치만 하면서 국민에게만 관심을 가지라는 건 욕심이고, 염치없는 짓이다. 그렇지 않아도 기록적인 폭염과 전기요금에 불쾌지수가 오를 대로 오른 국민이다. /더팩트DB

여야의 약속이 아니라 국민과의 약속이다. 여당에서는 야당이 발목을 잡았다고 주장할 것이고, 야당은 여당이 협조하지 않는다고 탓하고 있다.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22일 의원총회에서 "예정대로라면 본회의를 열어 추경안을 통과시키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증인 협상에 전혀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다. 애초부터 핵심증인을 출석시킬 생각이 없었다면 무엇 때문에 청문회에 합의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같은 날 "국민여러분께 너무나도 죄송스러운 일이다. 민생추경처리가 사실상 무산된 책임은 선추경 후청문회 합의를 파기한 야당에 있다"고 했다 반박했다.

여야 모두 내 탓은 없고 네 탓만 하는 변명이다. 그야말로 장벽만 쌓기로는 도긴개긴이다. 만나는 정치인마다 "정치 혐오가 심각하다"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라고 말한다. 관심을 보이지 않아서 정치가 지금 이 지경이라는 자기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국민이 정치의 혐오를 걷고 관심을 보이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이 먼저 행동하고 결과로 보여주어야 한다. 정치가 내 삶에 우리의 삶에 이런 변화를 가져다준다는 그런 결과를 말이다.

싸우고 약속을 어기는 정치를 하면서 국민에게만 관심을 가지라는 건 욕심이고, 염치없는 짓이다. 그렇지 않아도 기록적인 폭염과 전기요금에 불쾌지수가 오를 대로 오른 국민이다. 지금 여야 정치권에 필요한 것은 자신들의 입으로 침이 닳도록 이야기한 '협치'이다. 여야는 배리어를 걷어내야 한다. 눈이 보이지 않는 이들에게 설명해주고, 귀가 들리지 않는 이들에게 자막을 보여주는 영화처럼 정치권에도 배리어 프리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 보인다.

cuba2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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