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주간政談] '거위의 꿈' 이룬 이정현 대표의 '90도 습관'
입력: 2016.08.13 05:00 / 수정: 2016.08.12 23:42
새누리당 차기 지도부를 선출하는 지난 9일 전당대회에서 이정현 의원이 신임 당 대표로 선출됐다. 사진은 당 대표 전견발표에 나선 이 의원./배정한 기자
새누리당 차기 지도부를 선출하는 지난 9일 전당대회에서 이정현 의원이 신임 당 대표로 선출됐다. 사진은 당 대표 전견발표에 나선 이 의원./배정한 기자

이번 주 정가에서는 폭염만큼 뜨겁고 굵직한 '핫이슈'가 터져 나왔습니다. 이정현 의원이 '호남 출신 첫 보수정당' 대표란 이변을 기록하며 새누리당 당 대표로 선출됐고,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정부가 전기요금 누진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하기로 했습니다. <더팩트> 정치팀은 여의도 정가를 취재한 기자들의 '방담'을 통해 한 주간 이슈를 둘러싼 뒷이야기와 정치권의 속마음을 다루는 [TF주간 정담(政談)]코너를 진행합니다. 국회에 출입하고 있는 이철영·임영무·오경희·신진환·서민지 기자가 참석했고, 명재곤 부국장과 박종권 편집위원이 사회를 맡았습니다. [TF주간 정담(政談)]은 현장에서 발품을 파는 취재 기자들이 전하는 생생한 가십 모음입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정리=신진환 기자] 지난 9일 친박(친박근혜)계 3선이자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인 이정현(전남 순천) 의원이 호남 출신으로는 최초로 새누리당 당 대표를 거머쥐었습니다. 경선 과정에서 'KBS 보도 개입 녹취록' '오더 투표 문자' 등 악재를 딛고 이룬 성과입니다. 이 대표의 휴대전화 컬러링은 '그래요~난, 난 꿈이 있어요~♪', '거위의 꿈'인데요. 그의 말대로 사무처 말단에서부터 당 최고 직책인 대표까지 오른 그는 큰 꿈을 이룬 셈입니다.

-그런 이 대표는 11일 청와대 오찬에서 박 대통령에게 전기요금 누진제 완화를 권유했습니다. '복심'의 권유 때문이었을까요. 정부는 11일 7~9월까지 3개월 동안 누진제 구간의 폭을 50킬로와트(kWh)씩 넓혀주는 방식으로 누진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키로 했습니다.

-이를 두고 푹푹 찌는 더위에 단비 아닌 단비 같은 선심성 조치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야권을 비롯해 여권 일각에서 '땜질 방안'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또한,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전날 누진제 유지 방침에서 누진제 완화로 급선회한 것은 청와대와 이정현 체제의' 신(新) 밀월' 관계의 신호탄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옵니다. 이번 주 주요 현안과 그 현장을 되짚어보겠습니다.

◆ '섬김의 리더십', 당원의 선택을 받다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 이정현 의원이 지난 9일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호남 출신 첫 보수정당 대표로 선출됐다. 사진은 당 대표 선출 후 당기를 흔들고 있는 이 대표./배정한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 이정현 의원이 지난 9일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호남 출신 첫 보수정당 대표로 선출됐다. 사진은 당 대표 선출 후 당기를 흔들고 있는 이 대표./배정한 기자

-이정현 대표가 2년간 새누리당을 이끌게 됐습니다. 친박계와는 달리 단일후보를 낸 비박계의 승리를 점쳤던 분들도 많았는데요, 경선 전 이 대표의 당선 가능성은 어느 정도였나요?

-이 대표를 아는 정치인들도 적잖게 놀랍다고 했습니다. 모 의원은 이 대표를 평가절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새누리당에서 그의 계파적 위치나 경력, 스펙 등을 고려할 때 그의 승리를 예측한 사람이 별로 없었다고 합니다. 특히 친박계 '맏형' 서청원 의원이 당권주자였던 이주영 의원을 별도로 만났다는 소식이 전해질 때만 해도 '이주영 대세론'이 당 안팎에서 감지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이 의원이 당선됐습니다. 이를 두고 정가에서는 서 의원의 입김과 결심이 친박계에 전해졌기 때문이고, 이게 이른바 '오더(Order·명령) 투표'의 결과라는 주장도 나돌았습니다.

-인간 승리라는 말이 이 대표에게 딱 들어맞는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본인의 말대로 흙수저로 시작해 당 대표까지 됐으니, 정치적으로 볼 때 입지전적인 인물이라는 평가는 충분히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번에 이 대표나 친박계가 대거 당선된 데는 박 대통령의 전대 방문이 가장 주요했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만약 박 대통령이 오지 않았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도 있었다는 식입니다. 실제 이번에 출마한 한 의원실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등장하는 바람에 우리가 이렇게 된 것 같다. 사실상 박 대통령의 등장이 친박계한테 누구찍어라는 신호나 마찬가지였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이 대표 얘기를 더 나눠보죠. 취임 이후에는 어떤 행보를 보일지, 또 최근 행보에 대해 어떠한 평가가 나옵니까?

-이 대표의 표면적인 행동이 눈길을 끄는데요. 선출 직후 정세균 국회의장과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예방했는데,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를 하더라고요. 두 손도 공손히 모으고, 웃을 땐 입을 크게 벌려 함박웃음을 짓습니다. 거의 습관처럼 보입니다. '무성 대장'이라 불리는 김 전 대표와는 다른 모습입니다. 굳이 비교하면 이 대표는 서민적이고 친근한 이미지, 김 전 대표는 권위적인 이미지입니다.

-이 대표는 취임 이후 정해진 일정 외에 주로 당내 업무 파악을 위한 보고를 받고, 여러 현안을 처리하기 위해 스스로 공부하는 등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보좌진에게 일을 떠미는 것보다 직접 일을 챙기고, '일벌레'로 유명하죠. 혼자서 배낭을 메고 민생 삶 속으로 뛰어드는 것을 보면 그는 '행동형' '실전형'으로 정의할 수 있겠네요.

-이 대표 체제는 내년 대선 구도와 맞물립니다. 이 대표 당선 다음 날(10일) 증시를 살펴 보니, 반기문 테마주가 강세를 보인 반면 김무성 관련주가 약세를 보인 것은 나름대로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보입니다.

◆ '낀박' 정진석, 최경환-김무성 사이 줄타기?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두고 친박과 비박 사이에서 교묘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사진은 지난 9일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인사말 하는 정 원내대표./이새롬 기자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두고 친박과 비박 사이에서 교묘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사진은 지난 9일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인사말 하는 정 원내대표./이새롬 기자

-이번 전대를 치르면서도 지난 총선 때처럼 계파의 선이 확실히 드러났습니다. 중도세력이나 이른바 '낀박'세력은 어떠한 태도를 보인 게 있나요?

-여의도에 떠도는 소문에는 '오더 투표' 그 이면에 처세를 가장 잘한 사람으로 정진석 원내대표 이름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정 원내대표가 계파색이 옅다는 것을 이점으로 활용해 친박과 비박 사이를 오가며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유지하고 구축했다는 것이죠. 전대 코앞에서도 친박계 좌장 격인 최경환 의원이 이정현 후보를 밀고, 비박계 김무성 전 대표는 정병국 후보를 민다는 게 기정사실화됐는데, 정 원내대표가 두 사람 모두를 만나 저울질했다고 합니다.

-저도 그 얘기를 들었는데요. 덧붙이자면, 비박계 단일화 2차 과정에서 정 후보와 주호영 후보를 놓고 정 원내대표는 주 후보가 단일후보로 선출될 것을 예견했다는 것입니다. 새누리당 권리당원 구성 비율이 수도권이 낮아 대구·경북에 지역구를 둔 주 후보와 싸움에서 정 후보가 질 수밖에 없다는 게 이유입니다. 이처럼 예리(?)하게 분석한 정 원내대표는 비박계 단일화 과정에선 주 후보 쪽을 점쳤고, 본 게임에서는 대통령으로부터 오더를 받은 이 대표에 무게를 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래선지 과거 황우여 전 대표가 '어당팔(어수룩해 보여도 당수 8단)'로 불린 것처럼 정 원내대표는 '거당팔(거칠어 보여도 당수가 8단)'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 '하나 마나' 누진제 완화, 결국 표심 싸움?

정부는 11일 누진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야권은 정부의 이번 누진제 인하 조치를 선심성 정책이라고 비난했다. /더팩트 DB
정부는 11일 누진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야권은 정부의 이번 누진제 인하 조치를 "선심성" 정책이라고 비난했다. /더팩트 DB

-정부가 최근 세간을 뜨겁게 달궜던 전기요금 누진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했습니다. 그런데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 말들이 많이 나오고 있죠?

-네. 현재 정치권에서는 누진제 완화와 관련해 "미봉책이다" "땜질 방안"이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나아가 "박 대통령이 서민은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돌직구 발언도 나옵니다. 서민들이 여전히 전기료에 부담을 느끼는 수준이라는 게 공통된 이유입니다.

-누진제 완화가 박 대통령의 선물이라는데요. 글쎄 서민들의 입장에선 별로 달갑지 않은 선물인 것 같습니다. 누진제 완화에 대한 누리꾼들의 반응을 보면 "졸속도 이런 졸속이 없다" "장난 치치 마라" 등 환영보단 미봉책이란 비판적 평가가 뒤따릅니다. 완화가 문제가 아니라 주택용에만 적용한 누진제를 폐지하란 게 국민들의 요구인데 말이죠.

-이 대표가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을 만나고 오자마자 당정협의로 20% 인하를 결정했습니다. 정가에서는 박 대통령이 이 대표 당선 축하를 위한 선물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이를 통해서 당청관계가 좋으면 당장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고, 이 대표에겐 여소야대 정국에서 야당과 대화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 대표는 '누진제 인하 조치'를 야당이 협치만하면 뭐든지 함께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적절하게 이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야 모두 서민 표심을 겨냥한 전기요금 체계 조정 혹은 개편을 경쟁하는 모습입니다. 누진배율 11.7배라는 숫자 자체가 없는 사람들은 자극받고 불만을 터트리고 있습니다. 사실 저소득층이 6단계의 전력을 사용해서 누진율 11.7배의 요금을 내는 경우가 얼마나 되는지는 따져봐야겠지만, 폭염 속에서 한순간 폭발한 사회적 이슈가 정치판으로 넘어가면서 휘발성이 더 폭발했습니다.

-물론 누진체계 누진배율 조정이 서민을 위한 방향으로 개편되는 게 바람직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한시적 경감안을 정부가 내놓은 것처럼, 그 과정에서 청와대와 당이 박 대통령과 이 대표가 손을 맞춘 것(추정)을 볼 때 현 정치(권력독점) 상황에서는 대통령이 입을 열어야 누진제 개편도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TF(태스크포스)팀 구성을 언제 어떻게 누가 주도적으로 할는지도 미지수인 상황입니다. 더위가 한풀 꺾이고 찬바람이 불면 누진제 이슈는 수그러듭니다. 정부의 노림수도 여기에 머물러 있지 않나 싶습니다.

◆ 박지원의 '원맨쇼'…박 대통령 연설 감흥이 없어?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회 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지난 8일 영화 덕혜옹주 관람 후 여야 3당 잠정합의안(가안)을 공개해 논란이 일었다./이새롬 기자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회 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지난 8일 영화 덕혜옹주 관람 후 여야 3당 잠정합의안(가안)을 공개해 논란이 일었다./이새롬 기자

-조금 무거운 소재를 다뤘네요. 이번 주 취재 후일담 얘기 좀 들려주시죠?

-박 비대위원장 때문에 기자들이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있습니다. 지난 8일 오후 영화 '덕혜옹주' 관람 후 국민의당 출입기자단과 박 비대위원장은 서울 모처의 한 호프집에서 뒤풀이를 가졌는데요.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박 비대위원장이 휴대전화를 보면서 여야 3당 수석부대표 회동 내용의 합의사항을 불러줬습니다. 기자들은 일제히 받아적어 선임에게 보고했고, 일부 매체는 '푸시 알람'을 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김 비대위원장은 합의문의 '가안'을 받아본 것이었습니다. 이후 새누리당과 더민주는 오보라고 항의했고, 기자들은 망연자실해 했습니다. 그 와중에 박 비대위원장은 "휴대전화를 보여준 건 내 실수인데, 이렇게 우리가 치고 나와야지"라며 당당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박 대통령이 9일 새누리당 전당대회에 '깜짝' 방문했습니다. 물론 인사말도 잊지 않았는데요. 인사말이 한창일 때 한 의원에게 시선이 꽂혔습니다. 모 의원은 대통령의 인사말 중에도 의자에 등을 기댄채 심드렁한 표정으로 바라봤습니다. 청중들이 단체로 박수를 칠 때도 가만히 있더군요. 꼭 박수를 쳐야하는 법은 없지만, 새누리당 한 식구라는 점에서 대통령 예우 측면에서 봤을 때 상당히 의외의 태도였습니다. 반대로 청와대 대변인을 지냈던 민경욱 의원은 박 대통령의 인사말이 끝나자 마자 정말 번개같이 일어나서 '물개 박수'를 쳤습니다. 오래, 자주 보진 못했지만 그렇게 환한 표정은 처음 봤습니다. (웃음)

-정치는 '앞' 보다 '뒤'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면에서 이뤄지는 일들이 우리 생활을 바꿔놓으니까요. 정부와 정치권이 폭염으로 시름하는 서민들을 위해 선심성 정책 말고 '통 큰 선물'을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yaho1017@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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