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연일 폭염을 기록하면서 야권을 중심으로 주택용 누진제 간소화 필요성이 제기됐다. 서민들은 최고 11.7배에 달하는 누진제를 적용 받을 경우 전기료 폭탄을 우려해 에어컨을 켤 엄두도 못 내고 있다./더팩트DB |
'법'이 '밥' 먹여주나요?"라는 얘기를 종종 듣습니다. 법(法), 참 어렵습니다. 입법 기관인 국회에선 국민들의 기본권을 보장하고자 수많은 법을 쏟아내지만, 손에 잘 잡히지 않습니다. 단어 자체도 딱딱하고, 법안을 발의했으나 낮잠을 자는가 하면 있으나 마나 한 경우가 수두룩하기 때문입니다. 실제 19대 회기 종료로 9800여 법안이 자동폐기되기도 했습니다. 이런데도 20대 국회 역시 초반부터 '입법 전쟁'이 펼치지고 있습니다. <더팩트>는 법안 취지를 조명하고 이를 둘러싼 논쟁과 향후 전망 등을 SNS 툴을 이용한 [@법안]으로 해부합니다.<편집자 주>
[더팩트 | 오경희 기자] 최근 직장인 신 모(31) 씨는 퇴근 후 현관 앞에 나붙은 고지서를 보고 분개했습니다. 이달부터 전기 사용량 증가로 누진제를 적용한 요금을 납부해야 한다는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의 안내문이었습니다. 1인 가구인 그는 평소 1만 원 대비 4배 이상의 요금을 내야했습니다.
신 씨뿐만 아닙니다. 요즘 많은 일반 가정에서 폭염에 시달리지만, 에어컨을 켤 엄두를 못 내고 있습니다. 일반 가정인 경우 에어컨을 하루 세 시간 이상 가동하면 20만~30만 원 이상의 '전기료 폭탄'을 맞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주택용 전기에만 적용한 누진제는 총 6단계로 세분화돼 있으며, 사용량이 증가할 때마다 kWh 당 요금이 인상됩니다. 최고 11.7배에 달한 금액을 납부해야 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야권을 중심으로 누진제 단계를 간소화하고, 누진배율의 격차를 줄이자고 나섰습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일 이를 골자로 한 전기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트윗(@THE FACT) '누진제 6단계→3단계, 누진배율 11.7배→2배'
현재 주택용 전기에만 적용한 누진제는 총 6단계로 세분화돼 있으며, 사용량이 증가할 때마다 kWh 당 요금이 인상된다. 최고 11.7배에 달한 금액을 납부해야 한다./한국전력공사 누리집 갈무리 |
우리나라는 석유파동을 겪던 1974년 에너지 절약을 위해 누진제를 도입했고, 42년이 지난 현재까지 산업·주택·교육·일반용 전기 가운데 주택용에만 부과합니다. 해당 요금은 공기업인 한전이 매깁니다.
전력을 100kWh 이하로 사용(1단계)하면 전력량 요금이 kWh 당 60.7원이지만, 500kWh 이상의 전기를 사용(6단계)하면 kWh 당 709.5원으로 계산합니다. 1단계와 6단계의 요금격차는 11.7배로, 누진제를 적용하지 않은 산업용(81원), 일반용(105.7원) 전기에 비해서도 6.7~8.7배 가량 높습니다.
주목할 점은 전기 요금은 기본요금과 전력량 요금의 합산액으로, 기본 요금을 기준으로 하면 1단계와 6단계 기본요금은 대략 30배에 이릅니다. 즉, 누진제 최고 단계와 배율(500kWh 이상)을 적용하면 전기요금은 약 41배를 납부해야 합니다.
주요 국가의 누진배율 격차를 보면 일본 1.4배(3단계), 미국 1.1배(2단계), 중국은 1.5배(3단계)로, 우리나라 11.7배(6단계)에 비해 크지 않습니다.
박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전기판매사업자가 누진배율(가장 높은 요금과 가장 낮은 요금 사이의 비율) 격차를 기존 11.7배에서 2배로 낮추고, 누진단계는 6단계에서 3단계로 줄이는 내용(제16조 제6항 신설)을 담았습니다.
또, 전기판매사업자가 산업용 전력 전기요금을 정하는 때에는 기업별 규모 및 전력사용량을 고려, 전기요금을 차등해 적용하는 내용(제16조의3 신설)도 포함합니다.
이와 함께 ▲장애인복지법에 따른 장애등급 제1급부터 제3급까지 장애인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른 상이등급 제1급부터 제3급까지의 상이자 ▲자녀가 3인 이상 가구 또는 만 6세 이하 초등학교 취학 전 자녀를 양육하는 가구 등에 한해 전기요금의 20% 내로 전기요금을 감면토록 했습니다.
☜리트윗(@ken******) "재벌은 펑펑, 살인적 누진제로 서민만 독박"
주택용 누진제 및 관련 개정안 발의에 대한 누리꾼들의 반응./트위터 갈무리 |
누진제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재벌 특혜'란 부정적 시선입니다. 시민단체들은 주택용에만 적용한 불합리한 누진제로 소비자들은 억압적 비소비를 하고 있으며, 전력량 감소에 따른 이득은 재벌들의 할인 혜택 등의 특혜로 이어졌다고 주장합니다.
주택용 전기사용량은 전체 전기사용량의 13.6%로 산업용(56.6%)과 일반용(21.4%)보다 점유율이 크게 낮은 편입니다. 전체 78%를 쓰는 곳은 놔두고 주택용에만 부담을 지우는 것은 부당하다는 게 소비자들의 비판입니다.
실제 지난 5월 박 의원이 독점적 전기판매사업자인 한전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2012년부터 3년간 삼성전자, 포스코, 현대제철 등 20개 대기업에 3조5000억 원(원가손실액, 전기 생산비용 대비 적정 전기 요금을 받지 못해 발생한 손실액수)의 전기세금을 감면해 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SNS에선 최근 주택용 누진제 및 관련 개정안 발의와 관련해 "주택용 전기사용량은 전체 전기사용량의 13.6%. 주택용에만 부담을 지우는 것은 부당하다는 지적(@ch*****)""가정용만 살인적 누진제로 국민 독박.. 잘한 일.. 유신아바타와 개누리만 태클 안걸면(@hop*******)""세계에서 가정용 전기요금에 누진제를 채택하는 나라는 대한민국 한 곳이란다. 근데 기업을 쓸수록 깍아준다네.국민에게서 요금걷어 기업에게 풀어주는 나라.헐~(@iss*****)""알고계십니까? 올해 4-6월 기간에만도 3조원 이익 낸 현대차는 105원짜리 전기로 떼 돈을 벌고 최저임금에서 맴도는 서민들은 누진제 때문에 최고 709원짜리 전기로 요금 폭탄 맞는다는 사실말입니다(@v10*****)""전체 13% 가정용에만 부과되는 '11.7배' 전기요금 누진제. 개선법안 발의됐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입니다. 불합리한 것은 바로잡아야(@sar*****)"등의 반응을 나타냈습니다.
☞팔로(@THE FACT) "손놓은 정부·한전…소비자들, 요금 형평성 맞춰야"
정부와 한전은 누진제 개편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전력 대란'과 '부자 감세 논란' 등을 우려해 실행에 나서지 않고 있다./더팩트 DB |
정부도 주택용 누진제 개편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실행에 옮기지 않고 있습니다. 올 초 누진제 6단계 중 4단계 요금을 3단계 요금으로 낮춰 전기료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방안이 거론됐지만, 슬그머니 사라졌습니다.
정부와 한전은 누진제 개편이 어려운 이유로, 우선 올해 여름철 전력이 사상 최대치인 8000만㎾를 넘어선 가운데 누진제를 완화하면 요금 인하로 전력 소비가 급증해 '전력 대란'으로 이어진다고 관측합니다.
무엇보다 누진제 단계를 축소하면 전기를 상대적으로 저소득층 보다 많이 쓴 고소득층에게 유리한 가격 구조로 변해 '부자 감세' 논란이 불거질 수 있고, 또한 신사업 투자 독려 등을 들어 산업계에 요금 부담을 지울 수 없다고 내세웁니다.
한편 소비자들은 지난 2014년 한전을 상대로 전기요금 부당이득 반환 청구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냈고, 판결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이 소송을 맡아 진행 중인 곽상언 변호사는 지난 27일 YTN 라디오 '김우성의 생생경제'와 인터뷰에서 "주택용 전기 요금에만 규정된 누진제 요금 규정이 위법하다는 것으로, 한전이 누진제 요금으로 거둔 전기 요금을 국민에게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전기를 싸게 판다면 국민이든 기업이든 모두 다 싸게 파는 것이 맞다"고 지적했습니다.
박 의원도 앞서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주택용 전기사용량은 전체의 14%가 안 되고, 산업용과 일반용이 대부분인데도 부담을 주택용에 지우는 것은 부당하다"며 "폭염 속에 에너지 취약층의 고통이 크므로 대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