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논란의 중심에 있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거취와 관련해 언급을 피하며 정치권으로부터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6월 20대 국회 개원식에 참석한 박 대통령. /더팩트DB |
[더팩트 | 박종권 편집위원] '다르다'와 '틀리다'는 잘못 혼용되는 단어의 대표격이다. 먼저 '다르다'는 '같다'의 상대어로, 비교가 되는 대상이 필요하다. 또한 '틀리다'는 '맞다'의 반대말이다. 셈의 결과나 사실여부가 가르는 기준이다.
따라서 네 생각은 나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고, 화장실 가기 전과 다녀온 후의 말이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이렇게 명확하게 다른 데도 혼용하는 것은 '다름'에 대한 뿌리 깊은, 무의식에 자리잡은 경계심 때문일 것이다.
너도나도 흰 옷을 입어 백의민족(白衣民族)이고, 너도나도 단군의 자손으로서 단일민족인 것도 그 연장선으로 본다. 현대로 보면 네가 청바지면 나도 청바지, 네가 나이키면 나도 나이키, 네가 등산복이면 나도 등산복이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 법이다. 튀면 표적이 된다. 그저 "둥글게 둥글게~" 모가 나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 현명한 처세이다. 그래서 "적당히~"가 중용(中庸)이고, "좋은 게 좋은 것"이 됐다.
이런 정서에서 '낯섦'도 '다름'의 영역에 포함됐다. 익숙한 '우리'가 아니면 '너희'일 뿐이다. 피부색이 다르면, 생김새가 다르면, 생김새가 같아도 말이 다르면, 말이 같아도 국적이 다르면 '다름'의 영역이다. 그저 '우리끼리'다.
이 '우리끼리'도 분화돼 '끼리끼리'가 됐다. 지역에 따라, 학연에 따라, 혼맥(婚脈)에 따라 '끼리끼리'다. 여기에 '다름'이 끼면 불편하다. 명확히 다른 경우엔 '왕따'로, 은근히 다른 경우엔 '은따(은근한 따돌림)'이다.
언어는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고 한다. 말은 사고의 한계를 드러내며 인격을 내비친다. '다르다'와 '틀리다'를 혼용하는 이의 사고는 바로 '배타(排他)'와 '옹졸(壅拙)'이다. 나와 다르면 틀린 것이라는 인식은 우물 안 개구리, 여름철 하루살이, 옹졸한 굽은 선비에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강과 바다를 설명할 수 없고, 여름철 하루살이에게는 겨울의 얼음을 설명할 수 없으며, 굽은 선비에게는 '도(道)'를 이해시킬 수 없다고 했다. 각각 처한 장소와 때, 그리고 배운 바에 매어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옳고 그름'과 '좋고 나쁨'을 혼용하기도 한다. 내가 싫어하는 것이면 그릇된 것이고, 달리 말해 틀린 것이라고 단정한다. 곧 '싫다=그르다=틀리다'의 공식에 대입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싫어하는 색깔'도 '틀린 색깔'이 돼버렸다. 색깔에 시비(是非)와 선악(善惡)이 있겠나. 주황색이 좋거나 싫을 수는 있어도, 나쁘거나 틀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싫음'과 '나쁨'을 혼용하면서, 내가 싫어하니 나쁜 것이라고 주저하지 않고 단언한다. 언어의 무지에서 비롯된 폭력이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부동산 문제부터 아들 병역까지 의혹이 일고 있지만, 우 수석은 거취와 관련해 별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서울신문 제공 |
무지(無知)는 종종 착각(錯覺)과 혼용된다. 무지는 아는 것이 없거나, 미련하고 우악스러움을 뜻한다. 착각은 어떤 사물이나 사실을 실제와 다르게 지각하거나 생각하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전혀 다른 뜻이다. 그런데 '고집'과 '원칙'을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은 무지일까, 착각일까.
고집(固執)은 자기의 의견을 바꾸거나 고치지 않고 굳게 버틴다는 뜻이다. 우리말로는 '이퉁'이다. 원칙(原則)은 어떤 행동이나 이론에서 일관되게 지켜야 하는 기본적 규칙이나 법칙이다. 비슷해 보이지만, 크게 다르다. 고집은 옳든 그르든 고치지 않고 버틴다는 것이고, 원칙을 지킨다는 것은 올바른 규칙이나 법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고집에도 종류가 많다. 옹고집(壅固執)은 억지가 아주 심한 고집이다. 생고집(生固執)은 이유도 없이 공연히 부리는 고집이다. 왕고집(王固執)은 몹시 심한 큰 고집이다. 제 말을 고집하면 언집(言執)이요, 자기 의견을 고집하여 양보하지 않으면 확집(確執)이며, 망상을 버리지 못하고 고집하면 망집(妄執)이다.
예컨대, "내가 쓴 사람은 무한 신뢰한다"는 것은 어느 쪽일까. 공직자에 문제가 드러났음에도 무한 신뢰를 보이는 것은 고집일까, 원칙에 충실한 것일까. 정확히 말하면 "내가 쓴 사람은 무한 신뢰한다"는 것은 개인의 '소신(所信)'이다. 하지만, 심각한 문제가 만천하에 드러났음에도 그대로 두는 것은 '고집'일 것이다.
개인의 소신은 개인적이다. 물론 소신이라고 항상 옳은 것도 아니다. 그것은 무지나 착각에서 비롯됐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지는 가르치면 되지만, 착각은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착각을 고치기가 무지에서 벗어나게끔 하는 것보다 어렵다. 착각은 자유가 아니다. 개인의 착각은 스스로에 책임이 미치지만, 지도자의 착각은 부덕(不德)을 넘어 배덕(背德)에 가깝다.
'신뢰'와 '원칙'은 정치인에게 필수 덕목이다. 그러나 '그릇된 사람(wrong-man)'에게 무한 지지를 보이는 것은 신뢰가 아니다. 눈을 딱 감고,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덮어놓고 믿는 '맹신(盲信)'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정신을 아랑곳하지 않고, 민심이자 천심을 거슬러 버티는 것은 원칙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이런저런 고집일 뿐이다.
권력의 원천은 '국민'이지 '대통령'이 아니다. 아마도 박 대통령은 이를 숙지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5년 살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이다. 사진은 박 대통령과 우 민정수석. /더팩트DB, 서울신문 |
삼국지연의에서 조조(曹操)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세상 사람을 저버릴지언정, 세상 사람이 나를 저버리게 할 수 없다." 그래도 그는 군심(軍心)도 민심(民心)도 알았다. 자기가 타던 말이 보리밭을 밟게 되자 "군법에 따라 내 목을 쳐라"고 말했다. 물론 상투를 자르는 것으로 대신했지만, 말(言) 못하는 말(馬)이 저지른 잘못임에도 자신을 치죄(治罪)한 것이다.
울면서 패장 마속의 목을 벤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주인공 제갈량도 스스로 승상에서 물러나 관직을 낮췄다. 마속을 잘못 기용한 자신의 죄를 물을 것이다. 인사는 만사(萬事)라고 했다. 그래서 자신이 임명한 관리가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 인사에 최종 결재한 자신도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군왕무치(君王無恥)란 말이 통했다. 군왕은 아무런 잘못이 없으니, 사과할 일도 없다는 뜻이다. 흉년이 들거나 역병이 돌면 재상들이 삭탈관직됐다. 임금은 유덕한데, 모시는 재상들이 부덕해서 하늘이 노했다는 것이다. 영의정의 다른 말이 '흉년 모가지'였다.
하지만 현대의 대통령은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라 봉사하는 자리이다. 따라서 '무치(無恥)'가 아니라 '무한책임(無限責任)'을 져야 하는 자리이다. 권력의 원천은 '국민'이지 '대통령'이 아니다. 아마도 박 대통령은 이를 숙지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5년 살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이다. 이 짧은 기간에 역사에 남을 업적을 세우고 싶을 것이다. 헌데, 일락서산(日落西山)이다. 마음이 급하다.
그럴수록 서두르면 안 된다. 대통령은 홀로 고독하게 달리는 마라톤 주자가 아니다. 바통을 주고받는 릴레이 주자다. 누구나 좀더 빠르게 달려서 다음 주자에게 바통을 넘기고 관중의 환호를 받고 싶을 것이다.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통을 안전하게 넘기는 것이다. 바통을 떨어뜨리거나 넘어져버리면 경쟁자에게 곧바로 추월당한다. 국내적으로 본다면 같은 당이 한 팀, 국제적으로 본다면 여야가 한 팀이다. 끝없는 릴레이 경주에서 우리의 주자는 지금 어떤가. 이 경기는 주말부터 열리는 '리우 올림픽'보다 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