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영의 정사신] 이정현의 '서번트 정치', 상황에 따라 다른 건 아니죠?
입력: 2016.07.05 05:00 / 수정: 2016.07.05 08:02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이 최근 2014년 청와대 홍보수석 당시 세월호 참사 보도와 관련, KBS 보도국장과의 통화 녹취가 공개되며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배정한 기자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이 최근 2014년 청와대 홍보수석 당시 세월호 참사 보도와 관련, KBS 보도국장과의 통화 녹취가 공개되며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배정한 기자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조선 4대 왕 세종대왕은 누구나 인정하는 성군으로 꼽힌다. 후대가 세종을 성군으로 평가하는 데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가장 으뜸은 백성을 대했던 그의 '애민(愛民)'의 마음이다.

세종대왕 하면 떠오르는 게 바로 '훈민정음' 창제다. 세종의 정치는 '소통'으로 시작해 소통으로 끝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글을 만든 것 역시 백성들과의 소통을 위해서였다. "우리의 말이 중국의 문자와 서로 맞지 않고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마음대로 뜻을 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훈민정음의 서문은 적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세종은 신하들과의 '소통'을 무엇보다 중히 여겼다. 세종은 왕위에 오른 후 "의논하는 정치를 하겠노라"라고 신하들에게 말한 것을 보아도 그가 얼마나 소통에 중점을 두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세종은 모든 일을 신하들과 소통했다. 세종의 소통은 신하들에게 주인 의식을 심어주었고, 이런 신하들의 마음이 세종을 조선 최고의 임금으로 기록할 수 있게 했다. 세종 시대의 3대 정승(황희, 맹사성, 허조)으로 꼽히는 허조는 "비록 나라의 임금은 세종이셨지만, 나는 이 나라의 주인이었다"고 말했다. 즉, 신하들이 나라의 주인처럼 일 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세종은 신하들이 자신의 업무에 충실하고 성과를 낼 수 있는 리더십을 발휘했다고 볼 수 있다.

세종은 또 "임금은 백성을 위해 존재하며 백성은 하늘의 밥이다. 단 한 명의 백성이라도 하늘처럼 섬기고 받들어라"고 신하들에게 일렀다. 왕은 물론 신하들 모두 백성에게 헌신하는 정치를 하라는 가르침이다.

이런 세종의 리더십은 현대에 와서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서번트 리더십은 '하인의 리더십'으로 풀이되지만, 국내에서는 '섬기는 리더십'으로 사용된다. 학자 로버트 그린리프가 1970년대 처음 주창한 서번트 리더십은 '다른 사람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는 하인이 결국은 모두를 이끄는 리더가 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정현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인 순천에서 시민과 눈 높이를 같이하는 서번트 리더십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정현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이정현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인 순천에서 시민과 눈 높이를 같이하는 서번트 리더십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정현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정치권에서도 최근 서번트 리더십 실천에 나선 의원이 있다. 공교롭게도 최근 구설에 오른 이정현(3선, 전남 순천) 새누리당 의원이다. 그는 지난달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저는 순천에서 서번트 리더십을 실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말뿐 아니고 발로 뛰는 정치가 서번트 리더십입니다. 부르는 것이 아니고 시민을 찾아가 듣는 것이 서번트 리더십입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잠바에 면바지 입고 함께 막걸리를 마시면서 언제나 시민과 눈높이를 같이하는 것이 서번트 리더십입니다. (중략) 한마디로 국민이 주인이고, 국민이 권력자고 국민이 무섭고, 국민이 두렵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들어 모시는 것이 서번트 리더십입니다. (중략) 순천에서의 서번트 정치를 전국에 펼쳐 보이고 싶습니다"고 밝혔다.

이 의원의 시도가 매우 신선한 것은 아니다. 과거부터 정치인들이 늘 해왔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그의 의지가 어떻게 정치로 현실화될 것인지 궁금하게 한다.

그의 글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을 꼽자면 정치인들의 인사치레일 수도 있지만, "국민이 주인이고, 국민이 권력자고 국민이 무섭고, 국민이 두렵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들어 모시는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 글을 최근 세월호 관련 내용과 대비하면 과연 진심인가 싶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이 의원이 2014년 4월 청와대 홍보수석 당시 세월호 관련 보도 압력 정황 때문이다.

언론노조가 지난달 30일 공개한 이 의원과 KBS 보도국장의 통화 내용을 보면 "뉴스 편집에서 빼달라" "다시 녹음해 만들어 달라" "(대통령이) 오늘 KBS를 봤으니, 내용을 바꿔 달라" 등 압박했다. 또, 이 녹취에는 욕설도 함께 포함됐다. 이 의원의 행위를 두고 야권과 언론단체에서는 사실상 보도 개입이라고 비판했다.

이정현 의원은 여당 의원으로는 최초로 호남에서 재선했다. 그의 밝은 미소와 서글서글한 인상과 자전거 유세가 순천시민의 마음을 얻었다. 3선 고지에 오른 이 의원은 새누리당 당 대표에 도전장을 던졌다. /더팩트DB
이정현 의원은 여당 의원으로는 최초로 호남에서 재선했다. 그의 밝은 미소와 서글서글한 인상과 자전거 유세가 순천시민의 마음을 얻었다. 3선 고지에 오른 이 의원은 새누리당 당 대표에 도전장을 던졌다. /더팩트DB

녹취가 공개되며 구설에 올랐지만, 당사자인 이 의원은 지난 2일 "홍보수석의 역할이라고 생각했고 그때 저는 거기 충실히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왜? 국민이 정확한 사실을 알아야 하니까"라고 밝혔다. 이 의원은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이벤트 정치, 이미지 정치가 얼마나 국민의 비웃음을 사는지 정치인만 모르는 것 같습니다. 국민은 하늘입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여당 의원으로는 최초로 호남에서 재선했다. 그의 밝은 미소와 서글서글한 인상과 자전거 유세가 순천시민의 마음을 얻은 것이다.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순천을 찾아 취재했을 당시 순천 시민 대부분은 이 의원의 순박한 모습이 좋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을 정도다. 순천에서 재선하며 3선에 오른 이 의원은 당 대표에 도전장을 던졌다. 호남 정치인 출신으로 당 대표에 나서 지역 구도를 깨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녹취 내용이 공개되면서 그를 향한 시선들은 급랭하는 분위기다. 순천의 진보단체는 "어린학생들이 죽어가고 온 국민이 통곡하는 시기에 이정현 국회의원은 대통령 심기나 살피고 있었던 것"이라며 그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벤트 정치, 이미지 정치가 얼마나 국민의 비웃음을 사는지 정치인만 모르는 것 같습니다. 국민은 하늘입니다"라는 말에 자승자박하는 꼴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때는 그럴싸한 말로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는 정치가 통하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2016년에는 이런 정치가 통하지 않는다. 유명인은 물론이고 개인조차 자신의 행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상황에 따라 섬기는 대상이 달라지는 것은 '서번트 정치'가 아니다.

cuba2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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