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영의 정사신] 새누리당의 치열한 '박 싸움'. 발등 찍는 '믿는 도끼'
입력: 2016.06.21 05:00 / 수정: 2016.06.20 21:44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20대 국회 개원식에서 연설을 마친뒤 새누리당 의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임영무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20대 국회 개원식에서 연설을 마친뒤 새누리당 의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임영무 기자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임금이 나라를 잘 다스리려면 반드시 신하들이 패거리를 모아 붕당(朋黨)을 만들지 못하게 하고, 이권을 나누어주되 적절하지 못하면, 도낏자루를 쥐여주는 것과 같은데, 그 까닭은 언젠가는 그들이 그 도끼로 이쪽을 치기 때문이다."

한비자(韓非子) '양각(揚搉)'편에서 나오는 일부분이다. 뜻을 보자면 신하들이 패거리를 만들게 놔두면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힐 수 있다 정도이다. 갑자기 한비자의 한 구절을 꺼낸 이유는 최근 새누리당의 모습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성(姓) 앞에 '친'을 붙인 계파와 그렇지 않은 계파 간 싸움이 점입가경으로 흘러가고 있는 탓이다.

새누리당 내에는 크게 친박과 비박으로 나뉜다. 친박에는 또 '진박'과 '신박', '낀박'이 있고, 비박에는 '비박'과 '짤박'이 있다. '박 터지게' 참 많기도 하다. 이들 계파간 갈등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들 계파 간 갈등이 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교섭단체 연설에서부터 비롯했다.

이후 유 의원은 친박의 사퇴 압박을 견디다 못해 원내대표에서 내려왔고, 지난 4월 13일 선거를 앞두고 탈당했다. 유 의원의 탈당 역시 친박의 공천 불가가 이유다. 그런데 이번엔 복당이 또 문제다.

김희옥 새누리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가운데)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열린 혁신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김광림(오른쪽) 정책위의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새롬 기자
김희옥 새누리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가운데)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열린 혁신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김광림(오른쪽) 정책위의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새롬 기자

새누리당은 지난 10일 '2016 정책 워크숍'에서 계파 청산을 국민에 알렸다. 그러나 계파 청산을 알린 지 불과 일주일 만에 다시 계파 갈등을 빚고 있다.

새누리당은 당시 "계파 청산을 통해 대통합의 정치를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민생과 경제를 살리는 20대 국회를 구현하겠다. 국민의 총의를 모아 박근혜 정부의 성공과 정권 재창출을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다짐했다.

또 "지금 이 순간부터 계파라는 용어를 쓰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를 옥죄어왔던 분열과 작은 정치를 넘어 '대통합의 정치'를 실현해 나가겠다"면서 "민생·경제·외교·안보 등 집권당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실천해 나가겠다"며 "말뿐인 약속이 아니라 결과와 행동으로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다.

새누리당은 "각자가 기득권을 내려놓고 오직 국민만 바라보고 한마음 한뜻으로 변화해 나가겠다"며 "국민이 함께 해주면 우리는 성공할 수 있다"라며 '계파 청산 낭독문'을 다 같이 외쳤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지난 10일 오후 경기 과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연구원에서 열린 2016 정책 워크숍에서 계파 청산 낭독문을 발표하면서 결의하고 있다./신진환 기자
새누리당 의원들이 지난 10일 오후 경기 과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연구원에서 열린 2016 정책 워크숍에서 계파 청산 낭독문을 발표하면서 결의하고 있다./신진환 기자

20대 국회를 시작하며 국민에게 약속해놓고 또 그 약속을 휴짓조각처럼 내팽개친 것이다. 집권 여당의 이런 계파 갈등은 결국,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잃게 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의 대국민 신뢰를 무너뜨리기도 한다.

새누리당 친박과 비박의 갈등이 박근혜 정부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박 대통령에게 친박계의 행동은 국정 운영에 부담일 뿐만 아니라 국민이 보기엔 '트러블 메이커'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지금으로부터 수천 년 전 한비자와 그의 후학들의 충고가 2016년 지금에도 딱 들어맞는 격이다. 박 대통령의 실수(?)라면 첫 번째는 측근들이 패거리를 모아 붕당 즉, 친박을 만들게 한 것이고 두 번째가 측근들을 청와대에 인선해 권한을 나누어 준 것이다.

친박의 잇따른 계파 갈등은 결국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득이 아니라 독이 될 뿐이다. 박 대통령 역시 측근들을 감싸고 그들에게 권력의 한 축을 준 것은 한비자의 구절처럼 "도낏자루를 쥐여주는 것과 같은데, 그 까닭은 언젠가는 그들이 그 도끼로 이쪽을 치기 때문이다"가 딱 들어맞게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치열한 '박 싸움'에 의원 배지를 달아준 국민만 고통을 받지 않을까하는 노파심이 기우에 그치길 바랄 뿐이다.

cuba2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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