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희의 P-STORY] '신박·뼈박' 조경태·김재원의 정치 비법
입력: 2016.06.15 05:00 / 수정: 2016.06.14 20:16

지난 4·13 총선 당시 더불어민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당적을 바꾼 조경태(왼쪽) 의원은 13일 친박계의 지원사격으로 기획재정위원장에 선출됐으며,  박근혜의 입으로 통하는 김재원 전 새누리당 의원은 공천 탈락 후 유학 준비를 하다 지난 8일 청와대 정무수석에 임명됐다./더팩트DB
지난 4·13 총선 당시 더불어민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당적을 바꾼 조경태(왼쪽) 의원은 13일 친박계의 지원사격으로 기획재정위원장에 선출됐으며, '박근혜의 입'으로 통하는 김재원 전 새누리당 의원은 공천 탈락 후 유학 준비를 하다 지난 8일 청와대 정무수석에 임명됐다./더팩트DB

[더팩트 | 오경희 기자] 초등학생 시절, 매주 월요일 아침이면 전교생이 모인 운동장에서 교장 선생님의 지루한 훈화를 들었다. 담임 선생님은 정중앙에 선 교장 선생님의 얘기를 경청할 수 있도록 아이들을 일렬종대로 세웠다. 살다 보니, '줄 똑바로 서!'란 선생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허튼소리가 아니었다.

우리 사회에서 성공은 '줄서기(권력이 있는 사람이나 기관 등에 붙어 친분을 맺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와 맞닿아 있다. 누가 더 '짧고 튼튼한 줄'을 잡느냐가 가름한다. 무엇인가를 이루고자 할 때 줄을 서야 하고, 그 줄이 길다는 것은 진입장벽이 낮은 대신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줄서기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삶을 개척하는 경우도 여럿이다. 그러나 철학자이자 교육자인 아들러가 '인간은 사회적 존재'라고 했듯, 인간은 끊임없이 상호교류하며 조직과 집단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지위를 확보해 나간다. 사회적 지위와 역할에 따라 계층이 나뉘며 계층 간의 장벽이 높을수록 불평등한 사회라고 말한다. 동일 계층 내에서도 파벌과 서열이 있다.

인간 사회뿐만 아니라 개미, 벌 등 이른바 사회성 곤충은 여왕을 중심으로 전체주의 사회를 이룬다.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지난해 11월 15일 자 '말벌 여왕의 탕평책'이란 제목의 칼럼에서 "이들 국가에선 철저한 번식과 분업으로 여왕벌 또는 여왕개미만 알을 낳고 일벌과 일개미는 평생 일만 하며 여왕의 자식들을 돌본다"고 설명한다.

새누리당 20대 국회 당선인 워크숍이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가운데 조경태 당선인이 행사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배정한 기자
새누리당 20대 국회 당선인 워크숍이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가운데 조경태 당선인이 행사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배정한 기자

최 교수는 또 "흥미롭게도 유전적으로 다양한 일벌들이 낳은 수벌들과 고루 교미한 여왕은 살해당할 확률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옛날 왕정 시대에 왕족이나 신하들이 왕을 살해하는 것과 흡사한 현상이 곤충 사회에서 벌어지는 것도 흥미롭지만, 왕권을 유지하기 위해 '계파'를 고루 등용하는 '탕평책'이 말벌 사회에서도 통한다니 신기하다"고 밝혔다.

그의 말처럼 정치에서도 '계파(系派, 사상이나 신념, 행동 따위가 일치하여 모인 사람들의 집단)'가 존재한다. 정권 따라, 당 따라 계파도 여러 갈래로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한다. 우리나라 최초 여성 대통령인 박근혜 정부의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만 보면, 계파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친박(親朴)' 대 '비박(非朴)'. '친박'이란 박 대통령의 정치적 이념을 따르거나 측근이었던 정치세력을 의미하며, 친박의 반대 세력을 '비박'이라 일컫는다.

'친박'도 분화를 거듭한다. 2015년 11월 박 대통령이 '진실한 사람들'을 언급하면서 탄생한 진박(진실한 친박)부터 진진박(진짜 진실한 진박), 조롱박(조롱받은 친박), 뼈박(뼛속까지 친박), 짐박(짐이 되는 친박), 찐박(진한 친박), 몰박(몰락한 친박), 신박(새로운 친박), 짤박(잘린 친박) 등 다양한 용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지난 4·13 총선 과정에서 공천 갈등과 총선 참패로 친박의 위기의식은 고조됐지만, 당을 장악하는 힘은 유효한 듯하다. 단적으로 총선 당시 더불어민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당적을 바꿔 '신박'으로 떠오른 조경태 의원이 국회 '알짜배기' 상임위인 기획재정위원장으로 선정된 이면엔 '친박의 힘'이 작용했다는 평가다. '배신의 정치'에 대한 '보은(?)'으로 봐야 할까.

박근혜 대통령이 20대 국회 개원식이 열리는 13일 오전 개원 연설을 하기 위해 여의도 국회에 도착해 김재원 정무수석의 응접을 받으며 본청에 들어서고 있다./임영무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20대 국회 개원식이 열리는 13일 오전 개원 연설을 하기 위해 여의도 국회에 도착해 김재원 정무수석의 응접을 받으며 본청에 들어서고 있다./임영무 기자

20대 국회가 국회의장직을 놓고 원 구성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던 시점에서 지난 8일 급물살을 탄 데에도 친박계 맏형인 서청원(7선) 새누리당 의원이 있다. 친박 당권 주자인 원유철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5선) 중심의 포럼 창립총회에서 서 의원이 '야당에 양보하라'고 선언하자마자, 정진석 현 원내대표(4선)가 이를 곧바로 공식화했다.

'진박'에 이어 '뼈박'으로 통하는 김재원 전 의원(재선)은 20대 총선 공천에서 탈락한 뒤 중국외교학원 수학을 준비했으나, 지난 8일 전격적으로 신임 청와대 정무수석에 임명됐다. 검사 출신인 김 수석은 17대 국회에 입성해 박근혜 대통령의 17대 대선 경선 캠프 대변인, 경선룰 협상 대리인 등을 지낸 최측근이다.

정치 활동 기간 '박근혜의 입'을 자처한 김 수석은 세월호 유가족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며 야당으로부터 '세월호 조사 방해꾼'이라는 비난을 받는 등 입방아에도 많이 올랐다. 야당에서도 김 수석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4선)는 지난 10일 김 수석을 만나 "(김재원 수석은 박 대통령에게) 맹목적 충성을 하는 분, 맹충이"라고 뼈 있는 농담을 건넨 것으로 전해졌다.

박근혜 대통령과 대척점에 선 후 지난해 새누리당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난 유승민 무소속 의원이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법학관에서 열린 경제위기와 정치의 역할 특강을 위해 강의실로 들어서고 있다./문병희 기자
박근혜 대통령과 대척점에 선 후 지난해 새누리당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난 유승민 무소속 의원이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법학관에서 열린 '경제위기와 정치의 역할' 특강을 위해 강의실로 들어서고 있다./문병희 기자

반면 친박의 대척점에 선 이들은 치명상을 입었다. '짤박' 유승민 무소속 의원(4선)은 지난해 '국회법 개정안'을 놓고 박 대통령에 반기를 들었다가 새누리당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했고, 결국 탈당해 20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됐다. '비박'계 김용태 의원(3선)은 지난달 17일 새누리당 혁신위원장에 선임됐지만, 친박계의 반대로 이를 추인할 전국위원회가 무산되면서 사퇴했다.

김용태 의원은 당시 "새누리당에 계파는 '친박'밖에 없다' 계파란 사람들 무리에 들어가서 이득을 봐야 하고 대장과 그 아래 서열구조, 운영원리가 있다"며 "의사결정이 이뤄지면 과실을 나눈다. 계파 안과 밖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당 혁신비대위 출범과정에서 김 의원만큼 진땀을 빼야 했던 정진석 원내대표는 지난 10일 "경기도 과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열린 20대 국회 첫 의원 연찬회에서 "계파 문제는 이제 정치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 정치부터 바뀌지 않는 한 '인생 줄서기론'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ar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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