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의 술자리 인문학] 20대국회 개원, 즐거움과 권력은 나눌 때 커진다
입력: 2016.06.13 10:50 / 수정: 2016.06.13 15:40

우상호 더불어민주당·정진석 새누리당·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왼쪽부터)가 원 구성 협상 타결 후 웃고 있다. /더팩트DB
우상호 더불어민주당·정진석 새누리당·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왼쪽부터)가 원 구성 협상 타결 후 웃고 있다. /더팩트DB

[더팩트 | 박종권 편집위원] 자음접변은 종종 듣는 이를 헷갈리게 한다. 예컨대 '맛나다'는 '만나다'로 발음된다. '먹물'은 '멍물'이다. 두 자음이 직접 충돌하면서 동화(同化)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비록 발음은 같아도 앞뒤 맥락 속에서 금세 구별할 수 있다.

그러면 '독락(獨樂)'과 '동락(同樂)'은 어떨까. 발음은 같은데 뜻은 정 반대이다. 독락은 홀로 즐거움을 누린다는 뜻이고, 동락은 함께 즐거움을 나눈다는 뜻이다. 발음이 같다 보니 우스꽝스런 일도 벌어진다. '독락'이라 써야 할 현판에 버젓이 '동락'이라 써 넣는 것이다. 그것도 제법 글줄깨나 안다는 이들이 말이다.

경북 경주시에 '독락당(獨樂堂)'이 있다. 보물 제413호이다. 조선 중종 때 문신 이언적이 지었다. 당호를 '독락'으로 한 것은 홀로 즐거움을 경계하기 위함이다.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고 늘 주장했던 그이다. 천하 사람과 함께 즐기면 여유가 있지만, 자기 혼자 즐기자면 부족한 법. 독락(獨樂)을 넘어 중락(衆樂)을 지향하는 뜻으로 당호를 지은 것이다.

박지원의 '연암집'에도 '독락재기(獨樂齋記)'가 보인다. 개성에 사는 최진겸의 서재에 남긴 글인데, 요(堯)임금과 화봉인(華封人)의 고사를 들어 "즐거움을 독차지하는 것은 재난이다"고 설명한다. 그 내용은 이렇다.

20대 국회의원들이 개원 국회 본청을 나서고 있다. /임영무 기자
20대 국회의원들이 개원 국회 본청을 나서고 있다. /임영무 기자

순행을 나선 요(堯)임금이 화(華)지역에 든다. 그러자 지역경비를 담당하는 봉인(封人)이 나와 축원한다. "부디 수(壽)를 누리고, 부(富)를 쌓고, 대 이을 아들(男子)을 많이 낳으시기 바랍니다." 이름하여 '화봉삼축(華封三祝)'이다. 이 셋은 당시로서는 인생의 큰 소원이자 '천하의 지극한 즐거움'이다.

그런데 요(堯)임금이 이런 축원을 사양한다. 이유는 "오래 살면 욕 되는 일이 많고, 부유하면 할 일이 많으며, 아들이 많으면 걱정 또한 많다"는 것이다. 결국 지극한 즐거움은 덕을 쌓는 바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조선의 정조도 수원에 화성(華城)을 세웠는데, 바로 이 고사에서 '화(華)'를 따왔다고 한다.

사실 '독락' 대신 '동락'이라고 해서 크게 틀린 것은 아닐 수도 있다. 홀로 즐기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나, 함께 즐기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나 같은 말 아닌가. 그럼에도 굳이 '동락'을 쓰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권력의 피 냄새가 느껴져서 그럴지도 모른다.

바로 "어려움은 함께 할 수 있지만, 부귀는 함께 누릴 수 없다."는 고사가 있는 것이다. 춘추전국시대 월왕(越王) 구천(句踐)에 대한 범려(范蠡)의 평가인데, 동고(同苦)는 가능하나 동락(同樂)은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범려는 '토사구팽'을 피해 서시(西施)와 홀연 떠나버린다. 자신의 충성심과 업적만 믿고 미련을 버리지 못한 문종은 결국 자결하고 만다.

정세균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이 지난 9일 의장석에서 본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효균 기자
정세균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이 지난 9일 의장석에서 본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효균 기자

어디 구천만 그렇겠는가. 모든 권력자의 속성이 그렇지 않을까. 절대권력은 절대로 '동락(同樂)'하지 않는다. 권력의 단맛을 홀로 '독락(獨樂)'하려 한다. 본디 즐거움은 나누면 배가 되고, 괴로움은 나누면 반이 되는 법이다. 권력도 마찬가지다. 권력도 분점할 때 건강하게 강력해지는 것이다.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하고, 중국 진시황도 3대를 넘기지 못했다.

하지만 이를 깨닫지 못하고, 역사로부터도 배우지 못하는 것은 혹시 '발음' 때문인가. 역사는 '독락'을 경계하라고 가르치지만, 권력은 '동락'을 경계하며 위험하다고 인식한다. 역사는 '동락'의 길을 제시하지만, 권력은 '독락'의 길만 찾는다. 그래서일까. 21세기 민주주의 시대에도 여전히 ‘제왕적 권력’을 추구하는 것 말이다.

정세균 신임 국회의장이 '협치(協治)'의 길을 모색하고 나섰다. 협(協)을 파자(破字)하면 '힘 력(力)'자 셋이 합쳐진 모습이다. 권력기관 셋이 모인 형상, 바로 삼권분립이다. 그런 의미에서 '협치'는 삼권분립을 명시한 헌법정신으로 돌아가자는, 독치(獨治)의 모습을 보여 온 청와대에 던지는 묵직한 화두로 보여진다.

다시 '독락'을 짚어보자. 맹자가 제나라 선왕에게 물었다. "홀로 누리는 즐거움과 함께 누리는 즐거움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즐거운가(獨樂樂 與人樂樂 孰樂)." 이에 사람들과 함께(與人), 많은 사람들과 함께(與衆) 누리는 것이 좋다고 답했다.

그렇다. 즐거움을 독차지 하면 재앙이 오고, 함께 누리면 세상의 큰 즐거움이 이뤄지는 것이다. 권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혹여 누군가는 '사람들과 함께'라는 뜻의 '여인(與人)'을 '여당 사람'으로 잘못 해석한 것은 아닐까. 썰렁한 농담이지만, 말하고 보니 서늘하다.

ps.team@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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